나에게 닿는 길

무주 이야기2_목담

2024.03.14 | 조회 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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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무주에서의 환대가 낭만적이어서 깊은 산속 잘 지어진 펜션 같은 곳에서의 체험 정도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몽글몽글한 감성은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것일 뿐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폐가를 최소한으로 수리한다는 것은 전기를 사용할 수 있고, 물이 나오고, 비가 새지 않고, 보일러가 돌아간다는 것 정도를 의미한다. 벽지도 낡았고, 문짝도 오래되었으며, 위풍이 세서 처마 쪽으로 비닐을 두세 겹씩 쳐 놓아야 겨울을 날 수 있다. 여름에 에어컨이 없는 건 당연지사다.

생태주의자와 같이 생활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생활을 영위하는 방법, 즉 먹거리를 조달하고, 입고 쓸 것들을 만들고, 아껴 쓰고, 가급적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며, 만들더라도 지구에 잘 환원하는 방법들을 생각하는 삶이 생태적인 삶의 방식이다. 후배와 같이 있으면서 이는 단순히 습관이나 태도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러 가지의 생활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먹거리의 일부를 밭에서 얻고, 음식물은 먹을 만큼만 만든다. 음식물 쓰레기는 마당에 모아 썩혀 두었다가 퇴비로 만들어 밭으로 돌려준다. 육류를 먹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육류 단백질이나 지방 류의 음식 쓰레기는 처리하기가 번거롭고 시간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기타 생활 쓰레기는 마당에서 가끔씩 소각한다.

그렇다고 후배가 완전 ‘자연인’의 삶을 사는 건 아니다. 아직 많은 부분 ‘마트’에 의존한다. 난감한 건 여기서 발생하는 비닐봉지다. 포장 용기가 줄어들기는커녕 갈수록 늘어나니 그것이 답답한 노릇이다.

내가 여기 머무르면서 가장 쉽지 않았던 것은 휴지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후배 역시 어느 구석인가 휴지가 있는 것을 알게 되면 자꾸만 쓰게 되기 때문에 과감하게 휴지를 없애고, 다회용 천으로 바꾸었다. 다만 아직 큰일을 볼 때는 제외다.

책상 위 한 켠에 크기가 다른 여러 장의 다회용 천들이 수건처럼 놓여 있다. 여기 있는 동안에는 무심코 손을 뻗어 휴지를 돌돌 말아대던 습관에 제동을 걸어야 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어렸을 적에는 손수건에 손 닦고 코 풀고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초등학교 입학식 때 손수건을 가슴에 달아주던 일들은 우리 세대가 공유하는 추억이었다. 그때의 화장지는 아껴 써야 하는 물건이었다.

휴지 없이 지내는 동안, 감기가 걸려서 콧물이 줄줄 흐르지 않는 일상에서는 사실 휴지를 쓰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천 휴지 한 두 장 정도면 하루 동안 내가 쓰는 휴지를 대체해서 충분히 생활할 수 있었다. 부엌에서는 행주를 쓰고, 방바닥은 걸레를 쓰듯이 한두 장의 손수건으로 휴지를 대신하면 되었다.

물론 화장실에서 소변용 천 수건을 사용하는 것은 큰 난관이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대략 난감하고, 쉽지는 않았다. 막상 사용해 보니 감촉도 좋고, 건강에도 좋고, 사용할 만했다. 어쩌면 물리적인 거부감보다는 심리적인 거부감이 더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런 거부감보다 더 근본적인 건 천 휴지는 매일 노동을 들여 세탁하고 관리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는 것이다. 간편함, 편리함을 포기하고 그에 따른 ‘노동의 수고로움’을 들여야 한다는 것. 이것을 당연한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는 삶에 대한 관점이 달라져야 하는 일이다.

우리가 그동안 누려왔던 ‘편리함’은 지구에 대해서는 매우 폭력적인 삶의 방식이었다. 노동을 조금 ‘덜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자원의 낭비와 비용들이 얼마나 많을까? 손으로 돌리는 것이 불편하여 손으로 터치하는 편리함을, 인간들은 누려야만 행복해지는 걸까? 손으로 터치하는 노동조차 불편하여, ‘손가락 모션’으로 대체하기 위해 기술 개발을 하고, 신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나은 삶’일까? 우리 모두 더 많은 상품을 팔기 위한 자본의 논리에 컨베이어 벨트처럼 빨려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지금 우리는 인간으로서 가장 ‘편리한 시대’를 사는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더 이상의 ‘편리함’에 대한 추구를 지구는 감당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구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무분별한 편리함을 포기하고, 그만큼의 노동을 들이고,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 생태계를 파괴하는 시간을 늦추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인간은 지금보다 훨씬 더 불편해져야 한다.

먹거리를 재배하기 위해 매일 아침 마당 밭을 돌보는 노동을, 옷을 만들어 입기 위해 바느질하는 노동을, 천 휴지를 쓰기 위해 매일 빨래하는 노동을 하는 후배가 그래서 더 값지게 느껴졌다.

저녁이 되자 후배는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재미있는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나를 마당으로 불러냈다. 쓰레기를 소각하는 일. 이른바 ‘불멍’이다. 겨울밤에 불멍이라니! 다시 낭만으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재활용으로 사용할 수 없는 종이 쓰레기와 생활 쓰레기를 태운다. 마당 한 켠에 가득 쌓아두었던 쓰레기들이 드럼통 안에서 한 줌의 재로 변해간다. 그 많던 쓰레기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어떻게 자연으로 돌아간 걸까? 놀랍고도 신비롭다. 이 재들을 밭에 뿌리면 땅에도 좋고, 작물도 잘 자란다고 후배는 말해주었다.

마당 밭을 돌보는 노동으로 하루를 시작했던 후배는 쓰레기를 태워 재로 만드는 노동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남은 열기가 한참 동안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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