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있는 병이 보고 싶어서 무작정 밖에 나왔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해가 안 갔지만
마음은 보이지 않는 소리이기에
아직 소란스럽지 않은 밤거리는 저주를 걸었다
덕분에 시간이 더디게 흘러서
나는
뚜껑도 닫지 않은 병 하나를 손에 쥔 채
앞만 보며 걸었다
누가 마시다가 만 병들이 나무 밑에서 기대고 있었다
나는 밤이 밖으로 꺼내게 만든 인형으로 변해갔다
내 손에게도 병은 무참히 버려졌다
그러나 발밑으로까지 병은 다시 굴러왔다
그 병을 줍자마자
처음 보는 병 하나가 눈치를 살살 보며 내게 접근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큰 사람이어서인지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갈수록 축적되었다
그 곳으로 우연히 가다보면
병은 이미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병 앞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은
나의 이름을 외치면서 팔을 뻗었고
우리 모두 하나가 된 것처럼
서로 머리를 자연스레 조종하는데
머릿속에 아무것도 든 게 없는 사람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걸 알아갈수록
나는
저절로 몸을 흔들거렸다
잠깐이라도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는지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마음을 밖으로 꺼내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뚫고 널리 퍼져나갔다
내가 감추고픈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
나를 더욱 안아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목청이 뚫리는 순간이 와도
나는 살아있었다
병이 점점 쌓여질수록
다시 혼자가 되어 돌아가는 이 길에서
아직도 몸이 비틀거리지만
여전히 나를 비스듬히 피해가는 사람들의 등을 보며
나는
머리가 더 커지도록 조용히 입을 꾹 다물었다
털어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야 될 것 같지만
누구에게나
마음은 쌓아가기 위한 걸음걸이니까
두 발로 기어가는 시간이 와도
나는 결코 쓰러지질 않을 것이다
아직 살아있으므로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