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때로는 그 고민들이 나로 하여금 현실을 외면하게 만든다.
몸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몸은 현실이다. 정신적인 고민들이 현실보다 상위 범주에 있다고 굳게 믿었을 때엔, 몸과 정신이 분리된 채로 다른 차원의 세상을 살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고민을 시작했던 최초의 이유란, 현실을 더 정확히 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무엇이 이 세계에 정말로 ‘있는’지, 이 세계를 윤리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즉, 우리가 던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 세계’에 관한 질문들이다.
현실을 더 정확히 보기 위해 던진 질문들이 오히려 타인과 나 사이의 간극을 좁힐 수 없게 만들었고, 급기야 나는, 현실에 발을 붙여 살고 있음이 당연한데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직관이 강하게 들 때가 있었다. 그 때엔 홀로 어둠과 싸우곤 했다. 해가 뜨고 사람들을 관찰하러 밖에 나가면 다시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철학자 김진영의 책, 『아침의 피아노』를 소개하고자 한다. 암 투병 중에 쓴 그의 세상을 향한 사랑일기라고 볼 수 있겠다.
저자는 삶의 끝자락에서 기쁨, 즐거움, 사랑, 행복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저자가 평생에 걸쳐 쌓아온 정신적인 것들이 현실을 지켜내는 방법이었다. 보통의 철학자들이 사용하는 방법과는 사뭇 다른 것들에 나는 또한 생각을 하게 된다. 김진영은 암의 존재론-예를 들면, 이것이 정말로 실재하는 가 등-을 탐구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세상과 타자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탐구했다. 그 끝에서 자신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찾아냈고, 이 또한 한 인간의 삶이 오후의 시간이 되어 무르익었기 때문이라 서술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철학을 하면서도 삶에 밀착되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 본다. 그리고 이렇게 철학을 한다면, 현실을 더욱 ‘정확히’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동안 나는 어떤 질문을 던져왔는가. “이 대상이 실재하는가?”, “어떤 방법으로 지식을 획득해야 명증한 지식이라 불릴 수 있는가?” 등, 시작은 아무리 ‘현실의 대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함이었을지 몰라도, 그를 통해 얻어지는 답은 항상 앎에 관한 것들이었다. 내가 철학과 예술에 정신을 쏟은 결과로, 몸과 정신이 따로 놀았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대상의 있음에 대한 질문은 대상을 ‘대상’으로, 그러니까 ‘나’라는 존재 밖의 무언가로 한정해버린다. 이런 질문에 명증한 답을 찾으면 찾을수록 ‘나’ 밖에 있는 것들이 무한히 많아진다. 그러나 이것이 진짜 세계인가? 주체와 객체가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을 어떻게 삶이라 말할 수 있을까.
질문을 바꿔서, 대상의 있음에 대한 질문을 버리고 대상을 대하는 감정에 대한 질문으로 전환한다면, 대상이 나에게 어떠한 기쁨, 희망, 사랑 등을 불러일으킨다면, 이는 나와 대상의 연결이다. 이는 나의 연장이자 대상의 연장이다. 더 이상 대상은 나 밖의 내가 아닌 무언가가 아니다. 대상은 나고, 나는 대상이다. 주체와 객체가 무너진 주관이야말로 진짜 현실, 진짜 삶이란 게 무엇인지 제대로 볼 수 있다. 이것이 보다 더 정확한 삶에 대한 묘사다. 김진영은 이를 해냈다. 평생에 걸친 철학적 탐구의 대가로 삶이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이제는 나또한 그의 방법론을 따를 차례이다. 연결에 집중할 것. 대상의 존재유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상과 내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느냐이다. 나는 현실에 발 붙여서, 삶을 보다 정확히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철학과 예술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유일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연결의 방식을 정확히 들여다 볼 줄 아는 사람은, 분명 세상을 사랑하게 될 것임을 또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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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이야기 '
글쓴이 - 영원
음악 공부를 하고있는 대학생입니다. 이유있는 예술을 하는 것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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