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피아노_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이야기_영원

철학자로 살아가는 두 가지 방향에 대하여

2024.09.17 | 조회 8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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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때로는 그 고민들이 나로 하여금 현실을 외면하게 만든다. 

몸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몸은 현실이다. 정신적인 고민들이 현실보다 상위 범주에 있다고 굳게 믿었을 때엔, 몸과 정신이 분리된 채로 다른 차원의 세상을 살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고민을 시작했던 최초의 이유란, 현실을 더 정확히 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무엇이 이 세계에 정말로 ‘있는’지, 이 세계를 윤리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즉, 우리가 던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 세계’에 관한 질문들이다. 

현실을 더 정확히 보기 위해 던진 질문들이 오히려 타인과 나 사이의 간극을 좁힐 수 없게 만들었고, 급기야 나는, 현실에 발을 붙여 살고 있음이 당연한데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직관이 강하게 들 때가 있었다. 그 때엔 홀로 어둠과 싸우곤 했다. 해가 뜨고 사람들을 관찰하러 밖에 나가면 다시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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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김진영의 책, 『아침의 피아노』를 소개하고자 한다. 암 투병 중에 쓴 그의 세상을 향한 사랑일기라고 볼 수 있겠다. 

돌보지 않았던 몸이 깊은 병을 얻은 지금, 평생을 돌아보면 만들고 쌓아온 것들이 모두 정신적인 것들뿐이다. 그것들이 이제 시험대에 올랐다. 그것들이 무너지는 나의 육신을 지켜내고 병 앞에서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이제 나의 정신적인 것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자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19장

 

아이를 역까지 데려다준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풍경을 바라본다. 아침 세우가 세상을 적신다. (…) 방금 아이가 묻던 말이 생각난다. 신기해 빗방울은 왜 동그랄까. 나는 대답했었다. 바보야 물이 무거우니까 떨어지면서 아래로 맺히는 거지. 그것도 몰라? 누가 그걸 몰라. 그래도 물방울이 신기해. 너무 예쁘잖아…… 문득 차라투스트라의 한 문장: “인간은 가을의 무화과다. 인간은 무르익어 죽는다. 온 세상이 가을이고 하늘은 맑으며 오후의 시간이다.” 무르익은 것은 소멸하고 소멸하는 것은 모두가 무르익었다. 니체는 그 순간을 ‘조용한 시간’이라고 불렀다. 조용한 시간 – 그건 또한 거대한 고독의 순간이다. 사람은 이 난숙한 무화과의 순간에 도착하기 위해서 평생을 사는가.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94장

 

오, 세월이여, 지나간 날들이여, 나의 기쁨들, 즐거움들, 사랑들, 행복들이여. 그리고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들이여. 이제 나는 조용한 시간으로 돌아와 너희들을 다시 그리워하고 추억한다. 내가 너무도 사랑하였고, 지금도 오늘 여기인 것처럼 내 마음속에서, 내 눈앞에서 찬란히 빛나는 너희들, 오, 그토록 아름다웠던 것들이여.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199장

 

저자는 삶의 끝자락에서 기쁨, 즐거움, 사랑, 행복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저자가 평생에 걸쳐 쌓아온 정신적인 것들이 현실을 지켜내는 방법이었다. 보통의 철학자들이 사용하는 방법과는 사뭇 다른 것들에 나는 또한 생각을 하게 된다. 김진영은 암의 존재론-예를 들면, 이것이 정말로 실재하는 가 등-을 탐구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세상과 타자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탐구했다. 그 끝에서 자신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찾아냈고, 이 또한 한 인간의 삶이 오후의 시간이 되어 무르익었기 때문이라 서술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철학을 하면서도 삶에 밀착되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 본다. 그리고 이렇게 철학을 한다면, 현실을 더욱 ‘정확히’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동안 나는 어떤 질문을 던져왔는가. “이 대상이 실재하는가?”, “어떤 방법으로 지식을 획득해야 명증한 지식이라 불릴 수 있는가?” 등, 시작은 아무리 ‘현실의 대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함이었을지 몰라도, 그를 통해 얻어지는 답은 항상 앎에 관한 것들이었다. 내가 철학과 예술에 정신을 쏟은 결과로, 몸과 정신이 따로 놀았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대상의 있음에 대한 질문은 대상을 ‘대상’으로, 그러니까 ‘나’라는 존재 밖의 무언가로 한정해버린다. 이런 질문에 명증한 답을 찾으면 찾을수록 ‘나’ 밖에 있는 것들이 무한히 많아진다. 그러나 이것이 진짜 세계인가? 주체와 객체가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을 어떻게 삶이라 말할 수 있을까. 

질문을 바꿔서, 대상의 있음에 대한 질문을 버리고 대상을 대하는 감정에 대한 질문으로 전환한다면, 대상이 나에게 어떠한 기쁨, 희망, 사랑 등을 불러일으킨다면, 이는 나와 대상의 연결이다. 이는 나의 연장이자 대상의 연장이다. 더 이상 대상은 나 밖의 내가 아닌 무언가가 아니다. 대상은 나고, 나는 대상이다. 주체와 객체가 무너진 주관이야말로 진짜 현실, 진짜 삶이란 게 무엇인지 제대로 볼 수 있다. 이것이 보다 더 정확한 삶에 대한 묘사다. 김진영은 이를 해냈다. 평생에 걸친 철학적 탐구의 대가로 삶이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이제는 나또한 그의 방법론을 따를 차례이다. 연결에 집중할 것. 대상의 존재유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상과 내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느냐이다. 나는 현실에 발 붙여서, 삶을 보다 정확히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철학과 예술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유일 것이라 믿는다. 

 

임종의 날 아제는 새벽 발코니의 창문을 열고 텅 빈 파리를 향해 외쳤다: “여기 외젠 아제가 죽는다!”라고. 병중의 말기 김현은 새벽에 일어나 어두운 거울 속을 들여다보며 외쳤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라고. 그런데 이 두 외침 사이에 차이가 있을까. 그건 하나의 사실에 대한 반어적 동어반복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아침 산책길 서늘한 곳에서 작열하는 세상을 향해서 외친다 : “나는 사랑한다!”라고.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233장

 

그리고 연결의 방식을 정확히 들여다 볼 줄 아는 사람은, 분명 세상을 사랑하게 될 것임을 또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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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이야기 '

글쓴이 - 영원 

음악 공부를 하고있는 대학생입니다. 이유있는 예술을 하는 것이 꿈입니다. 

브런치 https://brunch.co.kr/@d8aec389643a40f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channel/UC-78Z2dXevYPh4j0BMAhX-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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