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일상 발견가의 탄생 _ 김혜진

2023.04.16 | 조회 1.31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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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작은 레이더가 있다. 꽤 성능이 좋은 편이라 가끔 주변인들이 물리적인 레이더가 정말 달린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래 레이더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 나도 가끔 그렇게 생각하니 말이다. 나는 이 레이더로 아주 사적이고 소소한 것들을 캐치한다. 아직 거창한 무엇을 찾지 못한 것이, 작은 것에 에너지를 너무 소모한 탓은 아닌가란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소소한 것들에 레이더를 세운다.

레이더의 첫 발견은 꽃게 된장찌개를 통해서 였다. 음식을 하는이라면 누구나 주력으로 내세우는 메뉴가 있을 것이다. 엄마에게는 그중 하나가 꽃게 된장찌개였고, 나는 그 꽃게 된장찌개를 꽤나 많이 먹었다. 수년간 단련된 노련함으로 나는 된장찌개에서 삐죽 튀어나온 다리 모양만으로 어느 부위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꽃게 된장찌개에 들어가는 꽃게는 보통 네 등분을 한다. 집게발이 있는 위 두 부분과 집게발이 없는 아래 두 분분으로 나뉘는데, 살이 가장 많은 부위는 아래 다리 쪽 몸통 부분이다. 뒤적일 필요도 없이,  3초 스캔 후 젓가락으로 정확하게 살이 가장 많은 아래 다리 쪽 몸통을 집어낸다. 그리고 여유 있게 쫍쫍 그 살들을 먹는다.

내가 처음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3초 스캔을 위해 젓가락을 든 채 멈춰 있는데 엄마가 "안 먹어? 뭐해?"라고 물었다. ", 찾고 있어." "?" ? 뭘 찾고 있었던 걸까? 그때 나는 내가 살이 가장 많은 부위를 찾고 있으며 그것을 한 번에 찾아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엄마도 알지 못하는 그 미묘한 차이를 내가 알고 있다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 소소한 능력을 알아차리곤 공공연하게 친구들에게 떠들고 다녔다. 친구들은 별게 다 능력이라며 비웃었지만, 함께 치킨을 먹는 자리에서 숨겨진 날개를 단번에 집어내는 나를 보고 나름 쓸모 있는 능력이라 인정해 주었다.

이 능력은 누군가를 찾는데도 유용했다. 친구들과 야구장에 간 날이었다. 사람들이 파도가 되는 야구장에 갔다가, 썰물처럼 빠지는 인파에 밀려 같이 온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카톡으로 광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아가는데 A를 먼저 만났다. 사람들에 떠밀려 서로를 또 잃을까 자석처럼 찰싹 붙으며 A가 말했다. "다른 애들은 어디 있데? 이러다 우리 서로 못 만난 거 아냐?" 하지만 A의 말이 무색하게 바로 C가 보였다. "저기, 저기 C 있네!" "어디? 어디 있다는 거야?" "저기 저쪽에, 가자!"라며 A의 손을 잡고 사람들을 헤집고 나아갔다. 역시 C는 정말 그곳에 있었다. 이번엔 B를 찾아야 했다. "! 저기 있다!" 저 멀리 B의 빨간 모자가 보였다. "어디?" A C B가 보이지 않는지 목을 쭉 빼고 오른쪽 한번, 왼쪽 한번 고개만 갸웃거렸다. "내가 데려오게." 나는 정확한 목표물을 향해 나아갔고 마침내 B까지 찾아냈다. 그렇게 모두 만났을 때 친구들은 예전 치킨 박스에서 날개를 찾았던 때처럼 나의 능력을 인정해 주었다.

안다. 피식 웃고 넘어갈 '별게 다 능력'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 능력은 일상에서도 꽤나 유용했다. 사실 나는 길치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방향치가 맞겠다. 어느 건물에 한참을 머물다가 갑작스레 바깥세상을 만나면, 어느 쪽으로 들어왔는지 뱅글뱅글 머릿속 버퍼링이 생긴다.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이는 1 1초가 급박한 순간 '죽느냐 사느냐'에 버금가는 고민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하늘은 나에게 방향감을 가져간 대신 기민한 레이더를 주었다. 어디로 가야할 지 헤매며 늦어진 시간은 목적지 주변에서 바로 그곳을 찾아내는 레이더로 상쇄되었다. 그래서 지각은 아슬아슬하지만 늘 면했다.

하지만 능력은 혼자보단 누군가 알아줘야 맛이다. 신혼 초 신랑과 초행지에서 우리는 내비게이션과 안내 지도를 번갈아 보며 맛집을 찾아가고 있었다. 맛집이 소개된 블로그에서는 간판이 작아 그냥 지나칠 수 있다는 주의가 적혀 있었다. 그렇다. 이때 빛을 발한 것이 나의 레이더다. 나의 기민한 레이더는 빠른 속도로 목적지를 찾아냈으며, 우리는 그날 최고의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음식을 먹으며 레이더의 소소한 예전 활약상들을 자랑스레 들려주었다. 신랑도 역시 '별게 다 능력'이란 듯 피식 웃었지만, 그 후로 차를 타고 함께 어디를 갈 때면 나에게 "ooo 이래. 잘 찾아봐."라며 미션을 던졌다. 그럼 나는 덥석 그 미션을 받아들이고 자랑스럽게 미션을 클리어했다. 어쩌면 나의 그 허세를 신랑이 이용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일상에서 레이더는 정확한 목표물을 찾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가끔 목표물이 없을 때도 레이더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깜박였다. 너무 사소하여 무용하다 여길 그런 발견들이지만, 그 발견이 나에게는 무엇보다 유용했다. 그렇게 레이더에 잡힌 깜빡임은 무채색이 될 뻔한 하루를 유채색으로 만들어 주곤 했다. 겨울의 끝자락 꽃망울을 터트린 홍매화의 연분홍 봄을 발견했고, 비 오는 날 집 없이 홀가분하게 다니는 작은뾰족민달팽이의 여름을 발견했고, 이제 막 붉게 물들기 시작한 조그만 당단풍잎의 가을을 발견했다. 레이더를 통해, 무성한 나무에서 작은 박새들의 수를 가늠할 수 있었고,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의 깊이를 어제의 하늘과 비교할 수 있었고, 비가 온 다음날 무당거미의 거미줄에 맺힌 다이아몬드보다 더 반짝이는 물방울을 보고 감탄할 수 있었다. 이렇듯 나의 레이더는 변화를 빠르게 감지하고 그것을 나에게 알려줬다.

아이가 생기고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밀 능력인양 조심스럽게 아이에게도 레이더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한참을 쪼그려 앉아 함께 꼬마흙개미의 집을 찾아냈고, 비 온 다음날 길을 헤매는 지렁이를 발견하곤, 꺅꺅 소리를 질러가며 흙으로 데려다 주었고, 솜사탕처럼 풍성해진 민들레 꽃씨를 찾아 제일 먼저 후 불어주기도 했다. 이런 작고 소소한 발견들은 아이는 물론 나의 눈도 반짝이게 했다.

작년 가을에는 금목서에 별처럼 작은 꽃이 가득 피었던 어느 날, 금목서 꽃의 향기를 아홉 살이 된 아이에게 알려주었다. 아이는 정말 대단한 발견을 한 것처럼 동그랗게 눈을 뜨고는 못 견디겠다는 듯 숨을 들이쉬며 어깨를 들썩였다. 마침 등굣길이라 길에서 마주친 친구에게 마구 달려가더니 금목서에 대해 종알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그 반짝이던 눈빛이 꼭 나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이제 아이는 가을이면 금목서 향기를 구별할 수 있을 것이며, 금목서 꽃을 단번에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것에 생각이 닿자, 비밀친구가 생긴 듯 즐거워졌다.

이제는 작고 작아 떠들고 다니기엔 민망한 이런 능력을, 나는 비밀스럽게 사용한다. 다 큰 어른에게는 더 이상 자랑할 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레이더가 작동할 때 옆에 누군가 있으면, 어른이든 아이든, 그에게 내가 발견한 것을 살짝 알려준다. 꽃이 폈다고, 방금 나비가 지나갔다고, 하늘의 구름이 너무 예쁘다고 말이다.

말괄량이 삐삐는 스스로를 발견가라고 말했다. "세상은 물건들로 가득 차 있어. 누군가는 그것들을 찾아내야 하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발견가야." 녹슨 드럼통을 발견한 삐삐는 외쳤다. "우와! 이런 물건은 처음 봤어! 정말 대단한 발견이야!" 언제나 즐거운 일을 찾아냈던 삐삐처럼, 나도 작은 레이더로 발견가가 되어본다. 오늘도 역시나 즐거운 일이 가득하다고, 뚜두두두 레이더를 가동하고, 일상에서의 경이로움을 발견한다.

이렇게 일상의 발견가가 된다. 누가 아는가, 발견의 레이더를 갈고 닦다 보면 거대한 무언가를 발견할지도 말이다. 생각만으로 입꼬리가 쓱 올라간다. 그게 무엇이든, 잔뜩 기대해본다.

 

* 글쓴이 - 김혜진 (로로)

일상의 소소한 발견에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읽고 쓰고 표현하며 살아갑니다. 김씨 4명이 한집에 살고, 그 중 엄마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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