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인격 같은 나, 어떤 사람인걸까_어느 심리학자의 고백_이지안

2023.10.11 | 조회 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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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내향적인’, ‘관계지향적인’, ‘직관적인과 같이 내 성격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좋았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행동하는 이유를 찾아주는 것 같았고, 두루뭉술하던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분명하게 정리되는 느낌도 속 시원했다. ‘내향적이라는 딱지 하나로 왜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그렇게 불편한지, 활달하고 사교적인 사람들과는 다르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한꺼번에 설명 받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부지런히 성격 검사로 나의 유형을 찾고 타인에게 나를 이해시킬 때 이러한 형용사를 즐겨 쓰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감정적이다, 이성적이다, 충동적이다, 게으르다, 자존감이 낮다...’ 등의 말들은 지금의 나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을까. 성격은 복잡한 인간을 효율적으로 개념화하고 예측하기 위해 비교적 일관적인 패턴을 찾아내서 설명하는 말이다. 이처럼 개인의 패턴을 규정한 단어나 이미지는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가인 자기 개념(self-concept)이 된다. 이러한 효율적인 개념 때문에 스스로를 통합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미지 출처_I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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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중인격 같아요.”, “성격이 극단적으로 왔다 갔다 해요. 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우리를 묘사하는 단일한 단어를 찾다 보면 이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순한 사람인데 어떨 때는 뾰족하게 화를 내기도 한고, 살갑고 다정하다가도 어디서는 냉담하고 무심한 모습으로 앉아있기도 하다.

나 또한 어떤 자리에서는 주도적이고, 어떤 상황에서는 있는 듯 없는 듯 몸을 사린다. 굳이 분류하자면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모임 인원이 네 명이 넘어가면 눈에 띄게 말 수가 줄어들고 에너지가 금세 방전되곤 한다. 잘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곳은 특히 피하는 편이다. ‘파티문화가 활발한 미국이나 유럽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무척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내향적이라는 설명에 맞지 않는 에피소드도 제법 있다. 대학 시절 교환학생으로 지낼 때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동문들의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동문 모임을 꾸리기도 했다. 기차를 타고 동문들이 많이 모여 있는 도시로 찾아가 낯선 선후배들과 타지 생활이나 교환학생 신분의 고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에너지가 달리거나 긴장했던 기억보다는 즐거웠던 감정이 생생히 남아있다. 그때의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오늘 하루만 해도 모순적인 행동으로 가득 차 있다. 모임에 가서는 별말 없이 남들이 하는 말을 내내 듣고 있는 조용한 사람이다가도, 집에 돌아와서는 남편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쏟아놓는다. 충동적으로 십만 원이 넘는 여행 숙소를 결제해놓고 만원 남짓의 보조가방 앞에서는 한없이 신중해진다. 어떤 영역에서는 남들이 뭐라 해도 고집스레 꿈쩍도 하지 않다가도 또 어떤 문제에 있어서는 사람들의 의견에 팔랑귀처럼 흔들리기도 했다.

이것은 모두 나
이것은 모두 나

한창 유행하고 있는 MBTI 성격검사는 부먹찍먹처럼 너는 사고형이다’, ‘직관적인 사람이다같은 꼬리표를 달아주기 위한 검사가 아니다. 그럼에도 절대적인 이름표처럼 갖다 붙이고 상대를 거칠고 뭉툭한 틀에 가두는 경우가 많다. ‘역시 T스러워같이 그 틀에 맞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F스러운정보는 무시해 버리는 식이다. 나와 상대를 잘 이해하기 위해 시작한 검사인데, 결국 개인을 단편적으로 재단하고 오해석하게 만든다.

MBTI 검사의 바탕이 된 융(Carl Gustav Jung)의 성격 유형론은 오히려 양 극단에 있는 성격의 통합을 강조한다. 융은 서로 반대되는 특성인 직관과 감각, 그리고 사고와 감정이라는 기능과 내향형, 외향형이라는 두 가지 태도의 조합으로 유형을 나누었다. 지나치게 한 쪽의 성격만 고수하려 할 때, 무의식 속에서 반대의 성향이 억압된다. 내향적인 사람이 내향적인 면에만 집착할 때, 외향적인 면이 발현되지 못하고 무의식에 억압되어 열등한 기능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억압된 기능은 타인에게 투사되어 성격이 반대되는 사람을 비난하거나 질투하게 되기도 한다. 융은 열등한 기능을 살리고 발전시킬 때 성격이 통합되면서 온전한 성격으로 성숙해나갈 수 있다고 보았다.

이미지 출처_I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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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충동적이다”, “나는 의존적인 사람이다같은 자기개념에 갇혀있을 때의 문제는 내가 이럴 줄 알았어.”라고 쉽게 귀인해 버린다는 점이다.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에도 나에 대한 컨셉에 충실한 방향으로 해석해버리는 것이 우리다. 유독 자기 개념과 일치하는 일들은 굵직한 기억의 발자국을 남긴다. 과거를 회상할 때 내가 생각하는 나와 겹치는 일들만 더욱 또렷이 생각나 스스로 자기 개념을 더욱 공고히 한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우리는 친구를 사귈 때 좋은 점을 칭찬해 주는 사람보다 내가 가진 자기 개념과 비슷한 평을 해주는 사람과 더 가까워진다고 한다. 나의 해석과 상대의 평가를 덧씌울수록 나는 더욱 그러한 내가 된다.

몇 번 꾸준히 해내지 못한 경험으로, 그리고 주변의 피드백을 주워 담아 나는 끈기가 없다는 말에 갇혀 지내는 친구가 있었다. 조금이라도 실천해 보겠다는 다짐이 흐트러질라치면 나는 역시라고 단정짓곤 했고, 두꺼운 책을 완독하거나 식물을 키우는 것 같은 장기 프로젝트 앞에서는 나는 이런 거 못해라며 지레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노력을 꾸준히 들여야 하는 운동이나 일기와 같은 일에는 뒷심을 내지 못해 성과가 변변찮긴 했다. 하지만 주말마다 근교로 출사를 나가곤 했고 격주로 있는 동호회 모임도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었다. 스스로 흥미를 갖고 있는 일은 누구보다 꾸준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불행한 사람이다또는 우울한 사람이다와 같은 자기개념도 마찬가지다. 우울한 기분에 한창 빠져있는 내담자들은 흔히 자기 삶을 이런 개념으로 일반화한다. 스스로 나는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말을 믿어버리면, 우연히 찾아간 카페에서 먹은 와플의 맛이나 예상치 못한 친구의 선물을 받았을 때의 따뜻함, 예능을 보면서 깔깔거렸던 기억은 저만치 희미해져 버린다. 우울하다는 굵직한 감정 덩어리들 사이로 찰나의 행복했던 감정들을 밀어 넣어 버리는 것이다. 결국 우울하다는 뿌연 안개 같은 감정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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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적이라든지 의존적이라거나 하는 자기 개념은 언어로 된 명제에 불과하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내가 만나는 사람에 따라, 그날의 나의 기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오늘은 좀 더 외향적인 또는 내향적인 나, 좀 더 다정한 또는 무심한 내가 된다. 자기 개념에 나를 가두기보다, 낡고 오래된 자기 개념과는 다른 신선하고 반질반질한 면을 꺼내어보면 좋겠다. 때로는 충동적이고, 신중하고, 이기적이고, 이타적인 사람으로 실험하듯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새로운 행동을 하다 보면 유전자의 움직임마저 바꿀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게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감각해 보는 것이고 그 상황에서 내 생각에 가장 좋음직하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한계 지어놓은 나를 다소 벗어나더라도 가보는 거다. 그러다 보면 무의식에 눌러 있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성향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나만 고집했다면 알지 못했을 나를 만나고, 보다 균형을 갖춘 통합적인 인간에 가까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 후성유전학(epigenetics)에서는 환경이나 우리의 선택 및 행동이 세포 안의 유전정보를 바꾸고 후대에 물려주게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참고문헌]

이부영 (1999). 그림자. 한길사.

Suh, E. M. (2002). Culture, identity consistency, and subjective well-being.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3(6), 1378-1391.

 


* 글쓴이_이지안

여전히 마음 공부가 가장 어려운 심리학자입니다. <나를 돌보는 다정한 시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를 공저로 출간하였고, 심리학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며 상담을 합니다.  

캄캄한 마음 속을 헤맬 때 심리학이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심리학을 통과하며 성장한 이야기,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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