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자유의 시간

반짝이는 이벤트가 아닌 일상의 단단함을_사유와 자유의 시간_강동훈

손웅정 감독 사인회를 준비하며

2024.06.13 | 조회 1.03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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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400권 부탁드립니다!!”

호기롭게 내뱉었지만 이내 후회했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숫자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는 생각으로, 보낸 메시지의 전송 취소버튼을 재빠르게 찾았지만, 눈앞에서 방금 읽음이라는 알림을 확인했다. 뱉은 말을 주워 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어버렸다.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만, 크레타라면 완판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요!”라는 배려와 존중, 기대와 응원이 뒤섞인 답장이 왔다. 오랜만에 승부욕이 발동했고, 이번 기회라면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목표라고 판단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흥민이 절대 월드 클래스 아닙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손웅정 감독이 최근 펴낸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의 사인회를 위해 크레타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약 한 달 전 출판사 관계자로부터 손웅정 감독님, 6312시에 부산 크레타에서 사인회 진행 가능할까요?”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처음에는 잘못 보낸 문자라 생각했다. 인지도가 있는 분들의 사인회를 지역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고, 진행하더라도 주로 대형서점에서 개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4, 김영하 작가의 게릴라 사인회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런 기회가 겨우 1년 된 동네서점에 또다시 찾아온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너무너무 감동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입력하는 손의 떨림은 멈출 줄 몰랐고, 머리는 보이지도 않는 사람을 향해 꾸벅꾸벅 인사를 전했다.

손웅정 감독 사인회 모습
손웅정 감독 사인회 모습

언제나 큰 기회는 더욱 큰 스트레스와 함께 찾아온다. 손웅정 감독의 동네서점 사인회는 총 3곳에서 진행되었다. 대전의 다다르다’, 서울의 오키로북스’, 그리고 부산의 크레타’. 크레타를 제외한 두 서점 모두 10년 이상 지속해서 운영 중이며, 책과 동네서점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서점과 함께 소개된다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었지만, 그 이유로 근심과 걱정이 더욱 커졌다. 비록 환경과 조건은 다르지만, 사인회를 위한 사전 준비, 당일 운영 프로세스, 사인회를 찾아주신 손님과 도서 판매량 등 모든 것이 비교될 것이기 때문이다. 두 서점 못지않게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왕이면 더 잘하고 싶었다. 그렇게 욕심과 욕망으로 가득 찬 400부가 발주되었다.

충분한 홍보시간이 확보되었던 만큼 몸과 손을 열심히 움직였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의 카페를 돌아다니며 포스터를 붙였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곳에는 열심히 홍보 협조를 요청했으며, 검색으로 확인 가능한 풋살, 축구 동호회는 모두 연락을 돌렸다. 한 명이 소중했기 때문에, 아들이 겨우 두 달 다니고 그만뒀던 축구교실 감독에게도 연락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이 귀한 시간을 내어 멀리 부산의 독자들을 찾아주신 손웅정 감독과 출판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의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알 수 없는 불안이 나를 계속 괴롭혔다.

손웅정 감독 사인회 모습
손웅정 감독 사인회 모습

처음에는 준비한 400권을 다 판매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라 생각했다. 괜히 부린 욕심 때문에 서로가 민망해지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출판사 측에서 사인회 진행 후 남는 수량은 반품할 수 있게 배려를 해주었다. 덕분에 판매 수량에 대한 집착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찾지 않고서는 사인회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평소보다 예민한 내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아내는 홍보 포스터 부착을 위해 나가는 나와 길을 함께 나섰다. 옆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 한 것이다. 그 덕분에 대화하면서 불안감의 이유를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요즘 구름 위를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에요. 하늘을 나는 것 같아서 기분은 너무 좋은데, 막상 생각해보면 내가 원해서 올라온 것 같지는 않아요. 내 힘으로 올라온 것도 아니고요. 누가 나를 구름 위로 올려놓고, 거기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유심히 지켜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한 번 올라와 보고 싶었던 곳인 건 분명해요. 그래서 더 욕심이 나요. 여기서 내려가고 싶지 않아요. 계속 여기에 있으려면 더 열심히 움직여야 하는데, 지금 수준에서는 이것도 벅차거든요. 결국, 내려갈 수밖에 없는데, 그 순간을 잘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계속 거기에 있고 싶어 욕심을 더 부리게 될까 봐 걱정도 되구요.”

손웅정 감독 사인회 모습
손웅정 감독 사인회 모습

북토크, 사인회와 같은 이벤트의 힘은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서점 운영에 큰 역할을 한다. 짧은 시간에 가장 높은 참가자의 만족도를 이끌어 낼 수 있으며, 매출도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30회 정도의 이벤트를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느낀 것은 누군가로부터 빌려 온 하루라는 점이다. ‘크레타의 행사니까 참여를 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팬이라는 이유로 참여한 비율이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처음 1년은 이렇게 이벤트의 힘에라도 기대어 열심히 존재를 알려야 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작은 서점이 지속하기 위해서는 이벤트에 기대지 않은 일상의 단단함이 필요하다.

크고 작은 이벤트를 계속해서 진행하다 보면 서점의 일상에 다양한 거름을 주면서 더욱 단단하고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하지만 거름도 과하게 주면 오히려 독이 되는 것처럼, 지금 크레타에 생겨나는 이벤트가 성장 속도에 알맞은 수준인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을 때 다가오는 실망감은 더욱 크기 때문이다. 1년이라는 시간이 쌓이면서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과 실제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느끼는 시기였다. 이번 사인회가 이런 고민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한 것 같다.

사인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손웅정 감독님은 모든 참가자에게 강렬한 악수를 건내었고, 뜨겁게 안아주었으며, 웃으며 사진을 찍어주셨다. 평일 낮이라는 시간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150명의 참가자가 다녀갔으며 책은 300권 이상 판매되었다. 비록 400권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아쉬움은 남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는 성취감이 있었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손웅정 감독 사인회 모습
손웅정 감독 사인회 모습

책에는 김민정 시인과 손웅정 감독의 대화 중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어쨌든 행복도 내가 꿈을 향해 뭔가 시도를 해야 가질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감정인 거잖아요. 한다, 그 한다는 거요.”

“그게 용기죠. 사전에는 다른 풀이겠지만 제가 내린 정의는 그래요. 용기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일단 앞으로 가고 보는 거, 그거요. 지금 우리들 중에 사면초가에 놓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건 다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용기 있는 사람은요, 일단 가기부터 해요. 그리고 용기 있는 놈한테는요, 길이 생겨요.”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p. 125

크레타를 시작하며 책만 팔아서 월세를 낼 수 있는 서점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달성 가능한 목표라 생각하지 않았다.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세워야 근처에라도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목표를 초과 달성 중이다. 일련의 크고 작은 이벤트들은, 다른 것에 눈 돌리지 않고, 오로지 책만 바라보고 나아가겠다는 마음에 대한 선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용기 내어 자신의 길을 걷다 보면, 손웅정 감독의 말처럼 없던 길도 생기고, 길을 헤맬 때면 옆에서 응원해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사람도 생긴다. 책을 읽지 않고 사지 않는 시대지만 책방지기를 꿈꾸는 사람은 줄어들지 않는 것 같다. 누군가는 내가 가꿔나가는 서점에 와서 용기를 얻어 갈 수 있길 바란다.

 


 

* 사유와 자유의 시간

골목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면서, 책과 사람이 만나 펼쳐지는 소소하지만 진솔하고, 일상적이지만 이상적인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 글쓴이 - 강동훈

부산 전포동에서 '크레타'라는 작지만 단단한 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읽게 만드는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책을 잘 파는 서점인이 꿈이자 목표입니다.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bookspace.cr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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