뗄레야 뗄 수 없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삶
“아직 9시도 안되었구나...” 엘리는 새삼 놀라 혼잣말을 했다. 동쪽 하늘 낮게 떠오른 해가 베란다를 비추고 있었고 창밖을 보니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파티가 끝나면 보통은 늦은 밤이기 마련인데 싱그러운 아침이라니.
메타버스에서 방금 끝난 해외 교사들의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 탈중앙 자율조직)모임 1주년 파티에는 다양한 타임존이 존재했다. 커뮤니티 설립자인 베티의 뒤에는 깜깜한 밤하늘이 그윽하게 드리운 창문이 보였고 어느 나라인지 알 수 없는 참가자의 화면은 한 낮의 햇살이 가득했다. 그래서 이렇게 다들 모일 때면 Good morning!, Good Night!의 인사를 동시에 하기도 한다. 오늘과 어제가 공존하는 오묘함을 뒤로 하고 컴퓨터를 전원을 끈다. 그러고 나면 잠시 멍한 채로 다른 시간과 공간의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치 다른 차원의 세상에서 지금의 현실로 돌아오는 같다. 때론 작은 컴퓨터 속안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그 안에 존재하는 느슨한 연대감이 꿈은 아니었을 까 하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다.
코로나 팬데믹(Pandemic) 속 통역사 엘리의 삶 (in 2022)
1주년 기념 행사가 끝이나고 노트북 전원을 끄고나서는 엘리도 지난 1년을 돌아보았다. 작년 그녀의 삶은 무척이나 분주했다. 8:30-5:30 까지는 회사에서 일을 하거나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며 사내 통번역사로 일했고, 퇴근 후 5일 중 이틀 이상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며 웹 3.0 관련 수업이나 스터디를 찾아갔다. 다양한 분야에서 그녀처럼 새로운 트렌드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온 사람들과, 이 분야에서 어느 정도 몸담고 있었던 사람들과 함께 모였다. 철학이 등장하기도 했고, 윤리가 등장하기도 했다. 때론 시끄럽게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그것으로도 모자라면 독서모임을 하며 지식을 파헤치고, 알 수 없는 기술적 내용이 서술된 문서를 읽고 물으며 새로운 것들을 알아갔다. 하루밤 사이에 새로운 꽃이 피어나듯 사건들이 펼쳐지고, 관련 기사가 보도되기도 전에 생생한 이야기들을 먼저 알아갈 때면 짜릿한 희열감을 느껴지기도 했고, 그녀의 지적 허영심이 채워지는 것 같기도 했다.
오늘 만해도 누가 시킨것도 아니고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새벽 단잠을 포기하고 출근할 때 보다 일찍 일어나 메타버스속의 행사에 참석해서 영상회의가 주는 피로감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하품을 하며 건조해진 눈에 인공눈물을 넣으며 그녀는 싱긋 웃음을 지으며 생각한다.
‘도대체 어쩌다가 어쩌다가 웹 3.0 이라 불리는 미지의 불모지 같았던 세계에 이끌리듯 매료되었을까?’
코로나로 확연히 줄어든 통역
지난 1 년이 훌쩍 넘도록 엘리는 국내 한 대기업 사내 파견 통번역직으로 근무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통번역 에이전시의 연락을 받아 이력서를 제출하고 선발되어 근무했다. 그 이전에는 지방에 위치한 공기업에서 영문에디터로 근무하며 국제협력 업무와 통번역 업무를 같이 병행했다. 공기업의 경우는 선발공고가 나면 지원 원서를 제출하고 통번역 평가와 면접 등의 과정을 거친다. 통번역 직군은 기관당 1명만 뽑는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대규모로 선발해서 팀을 운영하는 기업도 소수 존재한다) 고로, 1등을 해야 선발된다. 그녀는 그녀의 직군에 여러모로 혹독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척이나 일하고 싶었던 기관의 입사전형에서 2등 예비합격자로 표기된 합격자 발표 공고문을 보고 한참을 희망고문에 시달리다 결국 떨어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합격자가 입사를 포기하거나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바래야 하는 시간은 참 애타고 잔인하다.
공기업과 사기업을 거치는 그 기간은 코로나가 전 세계를 뒤덮은 시간이었다. 엘리는 두 기관을 거치는 동안 만큼 통역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항공로가 막히면서 꼭 필요한 회의는 영상회의로 대체되었고, 네트워킹을 위한 부대적인 행사는 모두 취소 되었다. 그녀 이전의 에디터가 남기고간 수첩 속 해외 출장 중 있었던 통역 노트테이킹을 보며 마임이 일렁거렸던 기억이다.
코로나는 전반적인 통역 수요 감소를 초래했다. 효율과 비용절감을 우선 시하는 기업 측면에서는 영상회의가 비용을 절감시키는 효율적인 대안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그녀는 코로나가 회복된 후에도 코로나 이전만큼 통역 수요가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직감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운이 좋은 편이라며 지금의 상황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프리랜서로 전향해 본격적으로 활동하려던 2020년 초 어느날. 그녀는 통역 에이전시로부터 온 메일을 확인하고는 절망했다. 예정되었던 귀빈 수행통역, 동시통역일정이 모두 취소되었다. 하루 아침에 할 일도, 갈 곳도 없어지면서 먹고사는 문제를 처음으로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다. 거대한 불안감이 그녀를 휩쌓았다. 베테랑 동시통역사들도 일자리를 잃고 막막한 상황이라는 기사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통역업은 그렇게 코로나의 여파를 직격탄으로 맞은 업종 중 하나가 되었다. 엘리도 프리랜서로의 생활과, 원하는 분야를 선택하는 사치를 포기하고 에이전시에서 소개해준 IT 회사에 다시 들어간 것이다. 일단 폭탄은 피한 셈이다.
확연히 달라진 업무 환경과 형태
공공기관 에디터로 근무할 당시에는 방역지침에 따라 삼일 출근하고 하루는 재택을 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5일에 한번 재택근무를 하기도 했다. 그 뒤 IT회사에서 일할 때는 국내 코로나 감염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같은 사무실 직원들도 돌아가면서 코로나를 앓기시작했다. 밀접 접촉자로 재택 근무를 연속적으로 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엘리는 갑작스레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코로나 이후의 그녀의 커리어에 분명히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업무 환경과 모습도 완전히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디지털화로 노트테이킹만 하며 통역을 하던 때와는 다르게 ZOOM을 비롯한 화상통화 툴에 익숙해져야 했다. 게다가 대기업의 IT 계열사였던 그녀의 근무지는 보안상의 이유로 업무용 개인 노트북을 들고 회의실로 이동하여 회의에 참석하고 프린트물 출력이 안되는 페이퍼리스(Paperless) 환경이었다. 그니까 복사기, 프린터기, 팩스기 등의 출력물을 생성하는 기기들이 존재하지 않아 노트북 내의 기능만을 이용해야 했다. 컴퓨터보단 수첩에 적는 것이 익숙하고, 문서는 출력해서 줄을 그어가며 읽던 엘리에게는 쉽지않은 챌린지였다. 회의 중 단축기 활용에 익숙해하지 않는 그녀를 약간은 답답하게 바라보는 듯 했던 개발자의 눈빛은 그녀의 오기를 불러 일으켰다. 같은 같은 사무실에 있으면서도 핸드폰과 사내 메신저를 통해 소통하는 분위기는 계약이 만료될 쯤 겨우 적응이 되었다. 컴퓨터 전문가들과 일하기 위해 진화하듯 적응해 나가야 했다. 적응하고 나니 회의 할 때마다 수십장씩 출력하던 종이와 회의 준비하던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 환경보호에도 긍정적인인 움직임이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서류를 찾느라 애를 쓰는 수고도 없어졌다.
‘통번역이 필요한 업계는 어디일까?’
번역이 주가 되는 업무가 계속 되었고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통역 수요는 얼만큼 회복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잘못한 것도 없이 호되게 혼이 나고 있는 듯한 엘리는 본능적으로 앞으로 통번역이 필요한 분야가 어디일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래야만 했다. ‘위기에 처해 생존하기 위해 진화하는 동물이 이런 모습일까….’ 늘어난 개인시간에는 신문과 뉴스를 살피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확진자, 사망자 기나와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침체 등과 같은 우울한 기사속에서 그녀의 눈길을 끄는 타이틀이 나타났다.
미국의 한 디지털 아티스트의 ‘Everydays : The First 5000 Days’란 NFT 작품이 명성있는 경매장인 크리스티에서 한화로 약 700억이 넘는 금액으로 사상 최고가에 낙찰 되었다는 뉴스였다. 믿기지가 않았다. 그녀는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미쳐버렸다고 확신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가격은 지금까지도 납득하기 힘들만큼 과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NFT는 Non fungible Token의 약어로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라고 하는데, 그 한국말 조차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글로벌 기업들도 하나둘 씩 NFT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미래의 산업이라는 기사들로 도배 되기 시작했다. 인재들과 자본이 움직임을 보여주는 글로벌 기사를 보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 이 분야에서 통번역이 필요할수도 있겠구나!'
그 때 엘리는 바로 움직였다. 관련 강의가 있는지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 통번역의 기본은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이다. 알아야 들리고, 알아야 읽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언어로 변환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통역사들이 몇 시간의 동시 통역을 위해서 일주일이상 관련 분야의 지식과 용어를 공부하는 이유이다. 언제 끝날 지 모르겠지만 회사를 다니며 공부해두면 분명 활용할 만한 곳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찾아 처음으로 듣게된 온라인 강의는 뒤통수를 세게 때리처럼 충격적이었다. NFT가 궁금해서 강의를 신청했는데 Web1.0, Web2.0, Web 3.0 이라니. 블록체인이라니. 지갑이라니. 코인이라니. 이에 더해 온통 알 수 없는 단어들과 개념이 두 시간동안 쏟아져 내렸다. 해킹에 대비하는 법이라니. 도무지 짐작도 하지 못했던 내용들을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 밤이 영상기록물 처럼 뇌리에 박혀 있다. 신대륙 혹은 새로운 은하계의 존재를 알게 된 기분일까.
Allie's Web3 life
생각을 이어가며 되짚어 보다 보니 이제서야 엘리는 다시 현실의 차원으로 돌아온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면 노트북속에서만 존재하는 세상이지 않은가? 컴퓨터 전원을 켜야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조금, 아니 상당히 이상한 면이 있다. 밖은 여전히 이른 아침이다. 코로나와 타격을 입은 통역의 영역을 확장하려고 뛰어들었는데 지금 그녀 생활의 많은 부분이 웹3.0에 맞닿아 있는 것도 문득 새삼스럽다. 블록체인 미디어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 탈중앙 자율조직)의 기여자로서 영문기사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거버넌스 코인을 보상으로 받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국인 멤버들과 함께하는 매주열리는 보이스 회의에도 참석중이다. 그녀가 즐겨 읽으며 정보를 파악해왔던 블록체인 리서치 기관에서 협업 파트너쉽을 제안받아 새로운 시도를 같이 도모중이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컴퓨터 속안만의 세상은 아니다. 엘리는 멤버쉽 형태의 NFT를 가지고 있다. 평생 1+1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카페와 펍에서 핸드폰속의 전자지갑을 열어 NFT를 보여주고 홀더 혜택을 받아 커피 한잔가격으로 다른 디저트나 또 한잔의 커피를, 또 한잔의 하이볼을 무료로 누린다. 갑자기 투명잔에 새빨갛고 달달한 히비스커스 하이볼이 생각났다. 한 잔은 내가 마시고, 한 잔은 같이간 친구에게 선물하듯 쏘는 즐거움도.
세상이 다 막혀버린 듯한 코로나 시절 엘리는 어느 때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했다. 인종, 종교, 나이, 직업에 관계없이 공통의 관심거리를 중심으로 만나 자유롭게 모여 소통한다. 영어 교육에 관심있는 엘리는 새로운 트랜드를 교육에 접목시키고 싶어 하는 해외 교사들의 커뮤니티를 발견하자마자 바로 참석했다. 재미와 흥미만 있는것은 아니다. 작년 말에는 해킹으로 적어도 한 달치 월급 만큼의 경제적 가치를 지닌 가상자산을 날리기도 했다.
그녀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한, 두꺼운 돌문으로 닫혀있는듯한 그 세계를 영어덕분에 상대적으로 빠르게 흡수했고, 다차원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작은 컴퓨터 안의 세상은 무한정이었다. 통역기회는 많이 줄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그녀는 24시간 우주 차원으로 넓어진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소통하며 탐험할 수 있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흥미롭고, 때로는 엄청나게 위험하고, 어떤 잠재된 무언가를 가진 듯한 이분야를 다른 사람들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어와 언어사이에서 브릿지 역할을 해왔던 직업적 소명도 있었다. 알아야 선택을 할 수도, 피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엘리는 비밀박스를 여는 마음으로 약간은 비밀스럽기도한 그들만의 리그를 드러내기로 한 것이다. 이중 생활에 가까웠던 그녀의 경험들을 펼치면서.
Let’s dive into Allie’s Web3 journey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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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순수국내파 통역사로 먹고살기’를 썼습니다. 영어와 한국어로 세상과 세상, 언어와 언어사이의 소통을 도우며 살아갑니다. 그 가운데에서 새로운 탐험과 경험을 즐기고, 그 재미가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도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이들과 학생들이 재미있게 영어를 익히도록 하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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