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4년째 현실 벽타기 게임을 하고 있는 이유_게임과 삶의 연대기_김종화

2022.06.11 | 조회 1.17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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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요즘 무슨 게임 하세요?” 게임을 좀 한다는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들이 만나면 종종 나오는 질문이다. 질문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이 질문은 어떤 ‘비디오’ 게임을 하느냐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마도 질문자는 어떤 특정 게임이나, 특정 플랫폼(PC, 콘솔, 모바일)이나, 특정 장르의 게임이 답변으로 오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특히나, 게임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곧 공부와 같기에, 너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있냐라는 의미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대답을 하기에는 조금 망설여지지만, 솔직하게 내가 최근 몇 년 간 가장 많이 한 게임은 클라이밍이다.  

게임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무슨 클라이밍이냐고 의아해하실 수도 있지만, 사실 모든 스포츠는 게임이다. 클라이밍은 몸을 써서 플레이하는 물리 게임이다. 세부적으로 볼더링, 스피드, 리드 클라이밍으로 나뉘며, 각각 퍼즐/액션 게임, 레이싱, 밸런싱/지구력 게임이라고 볼 수 있겠다. 몇 년 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서 클라이밍이 큰 인기를 얻으며, 전국적으로 수많은 실내 볼더링 암장이 생겨났고, 나 역시 이때쯤부터 시작했다. 볼더링으로 시작해서, 인공 외벽, 자연암벽까지 차근차근 장르를 넓혀가며 4년째 이 운동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길게는 수십 년씩 벽을 타는 분들이 수두룩한 이 바닥에서 명함도 내기 어려운 수준이지만, 적어도 게임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이 운동의 매력을 글로 정리할 정도는 해보지 않았나 싶다. 

클라이밍의 기본 룰은 매우 심플하다. 가장 대중적인 실내 볼더링(3~5미터의 비교적 낮은 높이에서 줄을 매지 않고 정해진 홀드를 밟고 올라가는 클라이밍 장르)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시작 지점의 홀드(손과 발을 이용해 잡고 디딜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자연적, 인공적 사물들)를 잡고 시작해서, 같은 색의 홀드만을 잡고 밟으며 올라가서 탑 홀드에 양손을 모으고 3초간 유지하면 된다. 처음 볼더링을 접해보는 사람도, 쉬운 문제라면 곧바로 풀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초심자에게 큰 매력 중 하나이다. 그런데 올라갔으면 어떻게 내려오냐고? 그냥 뛰어내리면 된다. 모든 실내 볼더링은 두께 약 30cm의 두툼한 매트를 깔아 두고 하기 때문에, 정말 이상하게 떨어지지 않는 한 웬만하면 다치지 않는다.  

흔한 볼더링 암장의 모습. 스티커의 색은 난이도를 나타낸다. 난이도 기준은 암장마다 다르다.
흔한 볼더링 암장의 모습. 스티커의 색은 난이도를 나타낸다. 난이도 기준은 암장마다 다르다.

간단명료해 보이지는 룰이지만, 그 룰이 만들어내는 플레이는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결코 간단하지 않다. 어떤 홀드가 어떤 벽에 어떤 각도로 배치되어 있느냐에 따라 풀이 방법과 난이도는 무궁무진해진다. 실내 볼더링의 경우, 형형색색의 인공 홀드를 사용하며, 각 홀드는 어떤 식으로 잡는 것이 좋을지에 따라 저그, 포켓, 슬로 퍼, 핀치, 언더 그립, 크림프 등으로 나뉜다. 굳이 어려운 용어를 외울 필요는 없다. 그저 각양각색의 홀드를 어떤 식으로 잡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며, 효과적으로 힘을 사용할 수 있는지만 형태를 보고 인지적으로 유추해 내면 된다. 같은 홀드라도, 이어지는 전/후 동작에 따라 최적의 잡는 방법이 달라진다. 클라이머는 벽을 오르며 홀드를 왼손/오른손으로 잡을지, 어느 정도 각도로 잡을지, 어느 부분을 잡을지를 계속 생각하고, 시도하며, 틀리면 수정해간다. 이는 마치 퍼즐을 푸는 것과 유사한 경험이다. 그래서 나는 볼더링을 몸으로 하는 물리 퍼즐 게임이라 말한다. 

하지만 퍼즐 게임처럼 딱 정해진 정답이 없다는 것 또한 클라이밍의 매력 중 하나이다. 수많은 종류의 홀드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루트(시작부터 끝 지점까지의 경로)를 어떤 식으로 올라갈지는 문제마다 다르며, 같은 문제라도 신체조건(키, 팔 길이, 몸무게, 근육량)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 마다도 저마다 달라진다. 누군가는 같은 문제를 홀드 하나하나 손과 발로 밟아가며 풀었다면, 누군가는 멀리 점프해서 갈 수도 있고, 누군가는 손만을 이용해 가버릴 수도 있다. (물론, 후자의 경우 자신에게 너무 쉬운 문제일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 열심히 풀고 있는 문제를 저런 식으로 쉽게 풀어버리는 것은 ‘뭐야 저거’, ‘재수 없다’ 정도의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머리를 쓰는 퍼즐 게임인 동시에, 소위 피지컬로 밀어 버릴 수 있는 액션 게임이기도 한 것이다.

사람과 직접 경쟁하지 않는다는 점도 클라이밍의 큰 매력이라 할 수 있다. 게임은 플레이어 간의 대결 구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크게 PvP (Player vs Player), PvE(Player vs Environment)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 직접적으로 플레이어와 대전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후자보다 경쟁을 요하는 경우가 많다. 플레이어 간에 직접 대결하는 대부분의 스포츠와는 다르게, 클라이밍은 기본적으로 PvE 게임이다. 인공 암벽이라면 세터(벽에 홀드를 배치하여 문제를 내는 사람. 게임으로 치자면 레벨 디자이너)가 낸 문제와, 자연 암벽이라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환경 그 자체와 대전하는 방식이다. 물론, 클라이밍 대회의 경우 다른 선수들과 경쟁적으로 플레이할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어쨌거나 다른 이가 어떻게 하는지에 상관없는 자신과의 싸움에 가깝다. 그래서 클라이머들 간에는 경쟁적이 되기보다는, 서로의 플레이에 감탄하고 북돋아주는 분위기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클라이밍이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너무 무리하게 운동하거나,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은 경우 다칠 위험이 따르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도 실내 볼더링을 하며 여기저기 쓸리고 부딪혀서 팔다리 피부가 거의 성한 곳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도전하게 되고, 수십 번의 도전 끝에 한 번 성공했을 때 짜릿한 성취감에 이 운동을, 게임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다. 어쩌다 보니 클라이밍 전도사가 된 것 같은 글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것의 매력을 하나의 글에 다 담기는 모자랄 것 같다. 이번에 게임의 룰적인 관점에서 클라이밍의 매력을 이야기했다면, 다음에는 플레이적인 관점에서 왜 클라이밍에 몰입하고 계속하게 되는지, 볼더링과 리드 클라이밍의 차이, 자연 암벽을 오르는 경험에 관해서도 써보려고 한다. 그전에 혹시나 조금이라도 관심이 생긴다면, 근처의 암장에 친구와 일일 체험을 가보아도 좋을 것 같다.

 

 

*매달 11일 ‘게임과 삶의 연대기’

글쓴이 - 김종화

독립 게임 개발사 대표와 게임 회사 직원을 오가며 게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부유한 자연인으로 살며, 삶을 담아내는 게임을 만들어가기를 꿈꿉니다.

브런치: https://brunch.co.kr/@ludosmith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Ludo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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