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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에 자꾸만 올라오는 미국 90년대 졸업 사진 Yearbook 퍼레이드를 보며 애써 참아왔다. 잠깐의 재미를 위해 6달러나 되는 돈을 써야 한다고? 라는 생각이 나를 붙잡았다. 매일매일 올라오는 페친들의 사진을 보며 과연 내 모습은?이라는 궁금증을 떨쳐내지 못하고 며칠 후 EPIK 앱에 12장의 사진을 올리고 결제 버튼을 꾸욱 누르고말았다. 약 세 시간을 기다리니 60장의 사진이 떴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농구부 컨셉이나, 드럼 스틱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이, 딱 봐도 교포 스타일로 태닝된 내 얼굴이 낯설면서도 신기했다. 아, 이래서 다들 커피 몇 잔 값을 내고 몇 시간을 기다리는구나 싶었다. 소셜미디어에 엄선된 사진을 올리고는 “예뻐요”라는 뻔한 칭찬을 들으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남편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신기하지? 90년대 미국 졸업앨범 스타일이래!”라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 사이보그라 불릴만큼 극 T인 그는 사진을 훑어보더니 “이건 네가 아니잖아, 너무 어색해.”라고 말했다. 온라인상의 상부상조 칭찬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샐쭉했다. “아니 뭐 재미로 하는건데 거참 김 새게 하네.”라고 투덜거리는 내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이거 AI 완전 구형모델로 하는거야. 요즘은 훨씬 자연스럽게 더 좋은 사진 뽑아낼 수 있는 툴이 있어.” 데이터 사이언스를 전공했고 AI 모델의 알고리즘을 연구하는 그의 말에 “그럼 더 예쁜 사진 만들어줘!” 라며 그의 도전 의지 불꽃에 살랑살랑 바람을 불어넣어봤다.
남편은 “그냥 예쁜 사진” 말고 컨셉이 있는 프롬프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의 첫 주문은 “부업 작가” 였다. 저녁을 먹은 후 서재에 들어간 그는 한밤중에 내게 문자로 사진 몇 장을 보내왔다. 책이 가득한 배경에서 책을 들고 있는, 펜을 쥐고 있는 사진에서는 진짜 “작가” 필이 느껴졌다. 소셜미디어의 반응도 뜨거웠다. 평소 글을 올릴 때 와는 두 세 배의 “좋아요” 숫자와 꽤 많은 댓글이 달렸다. 무슨 앱이냐고 , 당장 구매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운 댓글을 남편에게 보여줬다. 우쭐할 줄 알았던 그의 반응은 역시나 팩트 그 자체였다. ”내가 사용하는 AI tool은 그냥 사진을 집어넣고 돌리는 게 아니라 여러가지 프롬프트를 넣어보며 너처럼 나오는 사진이 나올때까지 프롬프트 내용을 바꿔 넣으며 반복해야 해. 그래서 내가 모르는 사람 사진은 만들 수 없어.”
Chat-GPT, 미드저니, Dall-E 등 생성형 AI의 시대에 중요해진 단어, 프롬프트. 좋은 질문, 명확한 디렉션을 던져 더 나은 결과물을 뽑아내는 것이 얼마 남지 않은 인간의 영역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실제로 프롬프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을 듣고나니 다른 ‘프롬프트’가 만들어 내는 나는 또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다. “Diverse한 환경에서 일하는 나를 만들어 줘”라고 말했더니 게임캐릭터, 신화 속 주인공, 렘브란트 스타일의 초상화에 담긴 내 사진이 도착했다.
빵터졌다. 한참을 웃다가 이렇게 말했다. “아니, 내가 말한건 글로벌 환경에서 일하는 사무직인데 이게 뭐야.” 남편은 이렇게 대꾸했다. “처음 프롬프트랑 지금 프롬프트랑 다른데? 다양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너, 맞잖아.”
아 맞다, 내가 남편을 사이보그라고 부르는 이유를 잠시 까먹고 있었네,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원하는건 아니었지만, 짤 부자가 되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에 대한 열띤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남편은 매일 밤 새로운 사진들을 생성해서 내게 보내주었다. 이번엔 가을 겨울 여행 컨셉이었다. “와, 여행 안가도 여행 사진이 나오네? 돈 굳었네?” 라고 감탄하다가 몇 장의 사진에서 멈춰섰다.
“어휴 이건 너무 글래머스럽잖아. 내가 언제부터 베이글녀였어?” 라고 따지듯 물으며 이번엔 무슨 프롬프트를 썼냐고 물어봤다.
남편은 대답하기를 주저했다. 몇번의 추궁 끝에 그의 우물거리는 대답을 겨우 들을 수 있었다. AI가 만들어내는 사진들이 다 너무 뽀샵 돌려깎기를 거친 의느님 작품스러워서 진짜 내 얼굴과 닮아보이는 사진을 만들기 위해 다음의 프롬프트를 사용했다는거다.
번역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 이 잔인한 단어들이라니. 그런데 이상했다. 중년의 동그란 얼굴을 가진 뚱뚱한 아줌마 사진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는데 사진들은 아무리 봐도 30대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남편의 설명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AI 이미지 생성 tool이라는건 기계가 한땀한땀 사진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많은 이미지들을 수집해 일종의 데이터 셋을 구성하고, 스타일을 정의하는 Data 표지를 만들어 “이런 스타일의 사진을 만들어줘” 라는 프롬프트와 함께 어떤 사람의 사진을 입력하면 그대로 만들어준다는거다.
처음엔 단순히 "OO스타일의 사진을 만들어줘" 라고 주문했는데 너무 동안이고 갸름한 턱선의 내 모습들이 생성되었고, 그 모습이 어색해 보여서 진짜 나와 닮아보이게 만들기 위해 ‘살집 있는’,’나이든’ 같은 단어들을 사용했어야 했다는 그의 고백을 들으며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중년 사진을 주문했는데 왜 이렇게 젊고 뽀사시한 사진이 나오느냐는 나의 2차 심문에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다. “일단 기계가 학습할 수 있는 4,50대 중년 사진이 별로 없어. 그나마 올라와 있는 사진들도 다 진짜 같지 않고 무언가 필터나 가공을 거친 거라, AI는 40대 여자의 얼굴이 이렇게 생겼을거라 생각해. 그리고, 진짜로 사실적인 사진을 만들어내면 그 모델 아무도 안쓸걸?”
모델? 모델이 뭔데? 라고 묻는 내게 그는 비전공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을 해주었다. 본인이 사용하고 있는 AI 이미지 생성 tool인 Stable Diffusion은 오픈 소스(공개된 코드) 중심의 프로그램이며, 여러 유저들이 만들어 낸 각기 다른 모델, 쉽게 예를 들면 "XX컨셉의 아바타"를 만들어내는 세트가 있다는거다. 종이인형 옷입히기 놀이의 한 판, 'XX공주 옷'과 비슷하달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진을 한 번에 담은 모델은 없고, 모델마다 특화된 사진들, 그러니까 “애니메이션” “판타지” “미소녀” “아이돌” 등의 사진들을 재료로 학습하고, 모델별로 학습된 원본 사진의 스타일에 가까운 사진들을 생성해낸다는거다. 아기들과 2-30대 사진은 진짜 ‘실사’에 가깝게 생성되지만, 중년의 경우엔 학습할 사진도 별로 없고, 실제로 이중턱과 뱃살이 가득한 사진을 생성해내면 모두가 충격에 빠질 것 같아 애초에 나이든 사람들의 실제적인 모습을 그려내는 모델은 아무도 만들지 않는다는 그의 추가 설명을 들으니 “나이가 들었나보다, 꽃 사진이 가득하네” 라며 자조섞인 말을 중얼거리던 나의 중년 친구들의 한탄이 생각났다.
‘진짜 나’ 보다는 ‘멋있어 보이는 그럴듯한 나의 사진’을 뽑아주는 사진관을 찾아다니는게 당연한 것 아닌가.
‘있어빌리티’를 장착한 한국식 증명사진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미국에서 찍은 신분증 사진을 보며 늘 실망하곤 했다. 특히나 DMV 창구에서 찍은 운전면허증 사진은 최악이다. 이런 사진을 내 여권이나 비자에 쓸 순 없어! 라고 외치지만 신분증에 붙은 사진과 내 실물 간 간극에 의아해 하는, “그러니까 이 사진이 너란 말이지?” 라는 질문을 차마 하지 못하고 신분증과 내 얼굴을 번갈아보는 사람들의 의아한 표정을 보며 부끄러움을 멋적은 미소로 대신했던 기억도 난다.
기계가 만들어낸 세상에 대해 우리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다. ‘세상의 모든 사진’을 재료로 학습해서 ‘사람의 편견’ 같은건 배제한, 정교한 ‘진짜 세상’을 그려내야 한다는 그런 기대 말이다. AI기술을 비판하는 목소리 중 가장 큰 것은 “왜 기계가 편견어린 말과 이미지를 생성하느냐”는 것이다. AI에게 직접 물어보진 않았지만, AI도 조금은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저는 이미 세상에 널려있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열심히 공부하고, 그럴듯해보이는 결과물을 뽑아냈을 뿐이라고요.” 라고 볼멘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학습해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물처럼 보여주는 AI 기술에 “편견없는 세상을 그려봐라” 라고 명령하는 것, 그런 생각조차도 어쩌면 결국 우리의 편견이 아닐까?
황진영
미국 수도에 있는 한 국제기구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우리’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공저 <세상의 모든 청년>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신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에 세 편의 글을 담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화 - [사이에 서서]를 통해 '어쩌면 우리일 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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