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관과 구직자_사이에 서서_황진영

인터뷰 흑역사를 딛고 '욕심나는 사람'의 캐릭터를 얻기까지

2023.09.26 | 조회 1.01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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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사진: Unsplash의Tim Mossholder
사진: Unsplash의Tim Mossholder

어렵게 얻은 기회였다. 서류 전형, 필기 시험, 1차, 2차 그리고 최종 면접까지 열심히 준비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적힌 문장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교육학’을 전공한 나는 이 기관에 딱 맞는 인재라고, 열심히 나를 홍보하고 있었다. 언론에 보도된 최근 홍보 기사를 줄줄 읊으며, 이런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기관이라면, 이렇게 가족친화적인 기관이라면, 청춘을 바칠 가치가 있다고, 나 자신을, 면접관들을 설득시켰다. 적극적인 나의 태도에 호감을 표시하는 면접관들이 많아진다고 속으로 신나있을 때 쯤 나온 질문은 나를 얼어붙게 했다. 

“교육대학을 졸업했는데 교사 대신 이 기관에 지원한 이유가 뭐죠? 교사를 꿈꾸는 학생들이 들어가는 학교가 교대 아닌가요?”

이런 질문은 ‘필살 인터뷰 뽀개기’ 나 ‘공준모 카페 면접 후기’에 없었다. 당연히 내가 준비하고 달달 외웠던 ‘면접 대비 시나리오’에도 없었다.  그러나 면접관들 앞에서 대학 입학도, 임용고사 불합격도, 결국 취업 준비 전선에 뛰어들게 된 것도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꽤나 오래전부터 이 기관 입사를 위해 달려왔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난감함에 말문이 막힌 나에게 임용고사 응시여부, 합격여부를 물어보는 면접관이 미웠다. 당황하지 않은척, 자신감을 잃지 않은 척하려 했으나 아무 소용없는 노력이라는걸 나도 알고, 그들도 알았을거다. 카운터 펀치를 연속으로 얻어맞고 나서 쓰러지지 않기 위해 정신을 차리는 파이터의 마음으로 정신을 차리고 한 말은 지금까지 인터뷰에서 획득한 모든 점수를 한번에 날려버렸다. 

“실패를 극복하는 것,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 제가 부모님께 물려받은 소중한 자산입니다.”

이 말을 내뱉을 때만 해도, 면접관들이 내가 “극복하고자 하는 실패” 가 내게 임용고사 재도전 의지가 있다고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 분위기가 급격히 반전되자 내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던 면접관이 내가 잘 준비했던 부분인 “우리 기관이 하는 일”에 대한 질문으로 화제를 돌리며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려했으나 이미 말려버린 페이스는 회복되지 않았다. 기관에 입사하고자 하는 나의 열정은 이미 진정성을 잃어버린 후였다. 아쉬운 마음으로 면접장을 나섰지만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순 없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확인한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당연했지만 억울했다.

몇주동안 자다가도 벌떨 일어나 머리를 벽에 찧었다. 하필 그 타임에 생각나버린 ‘주워들은 말’을 내뱉어 애써얻은 기회를 날려버린 내 자신을 탓했고, 애써 포장한 나라는 상품에 있는 결함을 발견해낸 면접관이 원망스러웠다. 돌이켜보면 진로 변경이 그리 흔하지 않은 학교를 다녀놓고, 이 질문을 예상하지 못했다니, 나의 준비 부족이 분명하다. 그래, 변명의 여지가 없는 거지 라고 말하며 다음 면접에 임할 땐 말끔하게 손을 봐야지, 라고 다짐했다. 완벽해! 라고 생각한 다음 면접에서 또 다른 결함이 들추어졌다. 씁쓸한 마음으로 면접장을 나서며  그 결함을 메우는 새로운 시나리오를 쓰고, 외우고, 자연스럽게 내뱉는 과정을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직장인이 되어있었다.


사진: Unsplash의Christina @ wocintechchat.com
사진: Unsplash의Christina @ wocintechchat.com

맡았던 업무 중에 취업지원사업이 있어 면접관의 자리에 앉을 기회가 꽤 있었다. 사업 참여 희망자 중 어떤 사람이 이 프로그램에 끝까지 남아 취업에 성공할지를 판단해야 했고, 어떤 기관이 위탁 사업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를 판단해야 했다. 원어민처럼 생기지 않았지만 느닷없이 영어 질문을 던져 돌발 영어 질문에 얼마나 잘 대처하는지를 평가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부서를 옮겨 선정사업을 맡았을 때는 “내가 왜  이 상을 받아야 하는지”를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CEO들에게, ‘당신의 가치를 증명하라’는 미션을 주었다. 덜렁 의자만 놓인 구직자에 비해 테이블 위에 놓인 채점표와 서류를 눈으로 훑어보며 준비된 질문을 던지는, 면접관으로서의 내가 익숙해질수록 과거의 ‘구직자’였던 내게 무엇이 부족했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를 나열하기보다는 내가 해냈던 일을 바탕으로 이 곳에선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를 알려줬어야 했다. 모집 공고에 짧고 애매하게 기술된 담당 업무가 실제로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눈이 있었다면, 그래서 ‘입사하면 최소한의 교육으로 빠르게 실무에 투입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말이다.

구직 기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취업에 대한 열망이 커지는데, 이런 열망은 입사하고자 하는 기관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더욱 커진다. 그러나 ‘내부자’가 되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는 정보의 gap이 있다. 내가 이 기관에 대해 얼마나 잘 숙지했는지를 자랑하기보다는 혹시 모자란 부분이 있다면, 입사 후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데 내가 가진 모든 열정을 쓰겠다고 말했더라면, 나의 면접 실패기는 조금 더 얇아졌을까.


입사 후 약 10년차가 될 즈음 나는 다시 구직자가 되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미국에서, 내 이력서에 적힌 학교가 어떤 정도의 위치를 점하는지, 내가 다녔던 직장이 어떤 일을 하는 기관인지, 내가 했던 프로젝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열심히 일할 준비’가 되어있는 나를 어필해야 했다. 경력이 늘었지만, 내 ‘결함’은 더 늘었다. 한마디만 떼도 금방 들통날, 뻔히 보이는 영어라는 커다란 구멍을 무엇으로 메워야 하나 막막했다. 

사진: Unsplash의Evangeline Shaw
사진: Unsplash의Evangeline Shaw

‘이런 나라도 받아줄 곳’을 찾느라 여기저기를 바삐 돌아다녔다. 남편의 유학은 최소 5년이었고, 5년동안 '아내와 엄마'로만 살기엔 ‘직장인으로서의 나’가 내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컸다. 아이와 남편의 적응을 돕는다는 내 역할은 몇달 지나지 않아 급격히 축소되었다. 둘은 모두 자신이 속한 자리에 한 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이제는 내 차례였다.

내가 속해야 할 곳, 그 자리를 찾기 위해 자존심같은건 모두 내려놓았다. 교육학을 전공했으니 초등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말에 동네 초등학교를 모두 돌아다녔다. 어린이집에도 이력서를 냈다. 이번엔 교육 대학을 졸업한 후 교단에 선 시간이 너무 짧다는게 내 결함이었다. 다른 기회를 열어봐야했다. 동네 취업 박람회를 기웃거렸다. 오랫동안 취업 박람회 부스를 기획하거나, 타 기관 주최 취업 박람회 부스를 채우는 취업 컨설턴트의 입장에 서 있었기에 구직자 모드로 전환하는게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작든 크든 취업 행사가 있다고 하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갔다. X 행사에서 만났던 담당자를 Y 행사에서 또 만났다. 취업 행사의 ‘단골 손님’이 되었다. 내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고, 수많은 자리 중에 어떤 자리를 먼저 공략하면 좋을지를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 생겼다. 매번 수십장씩 프린트 해 돌렸던 이력서 중 하나가 돌고 돌아 V대학 인사팀 단기근무 담당자에게 전달되었다. 전화 스크리닝 인터뷰 일정이 잡혔다. 다시 시나리오를 짰다. 

면접관의 입장일 때, 누군가를 걸러내야 할 때 비로소 깨달았던, 내게 부족했던 부분들을 다시 힘겹게 기억에서 끄집어냈다. 숭숭 뚫려있는 구멍들을 모두 매끄럽게 메우진 못했지만, 인터뷰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채워나갔다. ’적당한 사람을 구할 때까지’라는 조건이 붙어있었다는 나의 첫 미국 직장 입성 이후에도 나는 여러 번의 이력서를 썼다. 임시직에서 파트타임으로, 파트 타임에서 정규직으로, 고용형태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나의 필요성’을 피력하기도 했고,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커졌을 땐 대학 내 다른 부서에 몰래 지원하기도 했다. 남편의 취직 기회가 생기면 해당 도시에서 내가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함께 지원했고, 학위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이주한 새 도시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 끝없이 서치하고, 지원하고, 면접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마치 오디션에 들어간 배우처럼, 내가 이 자리에 딱 맞는 최고의 후보자임을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면접관들에게 피력했다. 활용할 게 있으면 뭐든지 활용했다. 

면접 단골질문인 “자신의 장점을 설명해 보세요.” 라는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오그라든다. “내가 제일 잘났고, 잘 나간다” 는 말은 할 수 없지만, 수십차례의 면접 경험을 통해 이런 말쯤은 아주 자연스레 할 수 있다.

“제가 나고 자란 곳에서는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누군가에게 피력하는 것’보다는 나를 낮추고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사회생활에 필요한 덕목이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지난 n년간의 미국 직장 생활을 거치는 동안 동료들이 제게 해준 말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라고 하며 동료들이 내게 붙여줬던 별명들을 언급하거나, 단순 루틴 업무를 성실해 수행해나감으로 인해 또 다른 업무를 맡게 되었다거나, ‘내 업무’는 기본으로 잘 해내고 조직 내 업무 흐름을 파악해 갑자기 생긴 인사 공백을 성실히 메웠다는 등의 스토리를 1분, 2분, 3분, 면접장의 분위기에 따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 면접관의 자리에서 바라봐도 ‘당장 데려다 쓰고 싶은’ 사람이라는 캐릭터를 얻은 셈이다. 

현재 내가 일하는 기관은  연차가 쌓이면 자동 승급된다는 규칙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승진을 위해서는 ‘빈 자리’ 가 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의사결정권자들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새로운 포지션을 만들도록 설득해야하고, 해당 모집 공고가 뜨면 '자소설'을 열심히 써 면접 대상자가 되기를 기도해야 하며, 면접에서 다른 어떤 후보자보다 내가 이 자리에 적임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확신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를 뽑는 기회가 잦은만큼 인터뷰 패널로 초대되는 경우도 흔하다.

사진: Unsplash의Daniel McCullough
사진: Unsplash의Daniel McCullough

다음에 내가 앉아야 할 자리가 면접관일지, 면접대상자일지는 모르겠다. 어떤 자리에 앉게 되든, 내 맞은편에 앉아 있을 사람의 마음을 떠올릴 수 있기를.


황진영

미국 수도 있는 한 국제기구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우리’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공저 <세상의 모든 청년> 프로젝트 참여했고, 신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에 세 편의 글을 담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화 [사이 서서]를 통해 '어쩌면 우리일 수 있었던' 사람들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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