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행복의 진정한 비밀을 발견했어요, 아저씨. 바로 현재를 사는 거죠. (...) 전 지금부터 집중적인 삶을 살려고 해요. 매 순간을 즐기고, 그러면서 제가 즐기고 있다는 걸 아는 거죠. 사람들 대부분은 삶을 산다기보다는 그저 경주하고 있을 뿐이에요."(<키다리아저씨>, 허밍버드)
<키다리 아저씨>에서 제루샤(주디)는 키다리 아저씨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행복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디는 어느 날, 친구들과 세상을 거닐면서 행복의 비결을 터득한다. 그것은 현재에 집중하고, 현재를 사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흔히 말하는 '현재를 즐기는 욜로(YOLO)'와는 묘하게 다른 관점이 녹아 있다. 그 점은 즐김을 '아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한 때 유행했던 '욜로'는 주로 현재에 흥청망청 소비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었다. 현재의 행복을 뒤로 미루지 말고, 인생은 한 번 뿐(YOU ONLY LIVE ONCE)이므로, 실컷 현재를 즐기면서 살라는 것이 욜로의 '강령'이었다. 그래서 먹고 싶은 거 먹고, 여행하고 싶으면 떠나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신나게 카드 긁으며 살라는 게 욜로의 태도였다.
그러나 주디가 말하는 '현재를 사는 것'은 그와는 다르다. 오히려 주디는 세상을 거닐면서 세상의 사소한 것들에 감탄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요한 건 크나큰 즐거움이 아니라 작은 것에서 커다란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거예요." 그 뒤에는 한 걸음이 더 필요하다. 그러한 즐거움을 '알고 확신하는 것'이 말이다.
"저는 결코 자기가 행복한 줄 모르는 여자아이들을 많이 알아요. 그 감정에 너무 익숙해져서 감각이 무뎌진 거예요. 하지만 전 인생의 매 순간마다 행복하다는 걸 완벽하게 확신하죠. 아무리 불행한 일이 있더라도 이러한 확신을 잃지 않을 거예요. 저는 그런 일들을 재미있는 경험으로 여길 거고, 그 기분이 어떤 건지 안다는 걸 기쁘게 생각할 거예요."
주디에게 행복은 자신의 행복을 알고 확신하는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그녀의 태도는 행복을 외부의 소비에서 찾는 근래의 욜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작은 순간들을, 심지어 고통스럽고 불행한 경험마저도 그것을 행복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승화'에 가깝다. 그녀에게 행복의 비결은 마음의 힘과 관계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키다리 아저씨>의 이러한 대목들을 읽으며, 아이와 보내는 어느 순간들을 떠올렸다. 지난 주말, 아이랑 둘이서 공원에 나가 아무도 없는 오후에 공을 찼다. 날이 쌀쌀하다 보니, 아이들을 공원에 데리고 나온 부모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나가자고 하는 아이에게 못 이겨 나가서 20점 내기 축구를 하면서, 낙엽 위로 공을 굴리고, 패딩 속의 열기로 땀이 찰 때까지 달렸다. 지는 해 아래로 아이가 멀리서 웃으며 달려오는 걸 보는데, 나는 내가 행복하다는 걸 알았다.
내가 행복하다는 걸 알기 전까지, 나는 행복한 줄 몰랐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나는 내가 행복하다는 걸 완벽하게 확신하기 시작했다. 이 시절, 공을 차고 달리기만 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웃는 아이가 있고, 그 아이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나의 몸과 시간이 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완벽하게 속해 있는 이 주말의 섬과 같은 우리의 관계가, 그 자체로 행복이라는 걸 알았다. 행복이란, 과연 주디의 말대로였다. 행복은 행복을 인식하는 마음의 힘에 있었다.
무한하게 웃는 어린 아이의 시절을 지나고 나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가 '행복'이 된다. 며칠 전, 김풍 작가와 나는 나른한 오후에 목적 없이 늘어져 앉아 행복에 대해 이야기했다. "요즘 행복하세요?" 그는 행복이란 허상 같다고 말했다. 나도 동의했다. 행복이란, 감정도 아니고 어떤 이상적인 개념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그는 "그냥 이게 행복이지."하고 말했다. 그랬다. 행복이란 그냥 그런 것이었다. 행복은 우리가 인식하는 순간 거기 있고, 우리가 찾으면 없는, 그런 것이다. 행복이 있어라, 라고 한다면, 그것은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 '선한 이야기 읽기' 글쓴이 - 정지우
작가 겸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분야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며, '세상의 모든 문화' 뉴스레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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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한 이야기 읽기' 코너는 원래 12. 27. 발행 예정이었으나 필진 사정으로 일정이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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