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랑해야하는 이유를 찾지 못해 평생을 분노하며 살아왔다.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찾기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나의 생각만 알 수 있다. 타인에 공감을 한다고 쳐도, 내가 그 사람이 될 수는 없기 때문에 완벽히 이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 중에서도 나는 깊이 없는 사람에게 특히나 화를 많이 내며 살았다. 나는 그들보다 아프게 사는데, 그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게 너무 답답했다. 세상의 부조리한 모습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진리를 찾고 싶다는 내 앞에서 그들은 복잡하게 사는 나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말을 들을 때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집에 홀로 돌아와 적막한 새벽에 침대에 누우면, 한없이 밝은 그들의 목소리가 내 가슴을 찔렀다. 나는 그대로 장문의 카톡을 남기곤 했다. 연락처를 차단했다. 이게 나와 그들의 마지막이었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 이유는 그런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개인이 바뀌면 사회가 바뀌게 되어 있는데, 개인이 전혀 깨닫지 못한다면 나만 평생 아프게 살 테였다. 바보 같았다. 멍청해보였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멍청함을 싫어했다. 사람을 사랑해야하는 이유는 없었지만 미워해야하는 이유는 이처럼 충분했고, 나는 그 간극을 견디지 못하고 사랑을 잃었다. 개인에게 분노했고, 화를 참지 못했고, 그렇게 점점 인연을 끊어버리는 사람들만 늘어났다.
이런 내가 한없이 건방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 것은 바로 짐자무쉬의 영화 <커피와 담배>였다. 영화는 옴니버스식이다. 매번 대화가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이 나와서, 체크무늬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운다. 둘이 함께 들어오거나 함께 나가는 경우는 잘 없다. 각자 걸어와 의자에 앉아서,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한 뒤에, 또 각자 들어왔던 문으로 따로 따로 나간다. 이게 다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샴페인>에서는 말러의 가곡이 나온다. 테일러라는 남자는 말러의 <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을 <I lost track of the world>라 소개한다.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음악을 잘 듣지 못한다. 이것은 테일러만의 환상이다. 테일러는 곧 숨을 거둔다. 공장에서 일을 하다 잠시 쉬는 시간에, 말러의 가곡이 환상 속에 울려 퍼지던 순간, 깊은 잠에 빠진다. 테일러는 깊은 잠에 빠졌지만, 나는 며칠간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이유모를 눈물이 계속해서 흘렀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며칠간의 눈물은, 끅끅대며 숨넘어가게 울었던 그 시간들은, 잠 못 이뤘던 어둔 밤들은 소용돌이처럼 나를 빨아들여 초점 없는 광활한 우주로 던져버리고야 말았다. 그곳에서 나는, 사람을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았다. 미워하지 말아야만 하는 이유를 찾았다.
처음에는 쓸쓸함에 몸부림쳤다. 각자 걸어와 각자 나가는 것은 사람의 인생과도 같았다. 마지막에 나온 말러의 음악은 인생에 있어서 길이란 환상이라고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사람은 홀로 태어나 홀로 죽는다. 함께하는 이들이 있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결국 삶의 본질은 외로운 것이다. 잠시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울 때, 함께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그 시간이 끝나면 다시 철저히 혼자가 된다. 영화에서 인물의 대화가 완벽히 통한 적이 없듯 나를 완벽하게 이해해 줄 사람도, 나의 생각과 완벽하게 일치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각자는 각자의 인생만 살 수 있을 뿐이다.
‘나는 혼자구나, 나는 혼자 태어나서 평생을 이해받지 못한 채로 혼자 쓸쓸히 죽겠구나.’
삶에 있어서 사람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고 굳게 믿어왔지만, 그게 필요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애초에 없던 것이라는 진실을 마주했던 그 순간만큼은 내가 너무 불쌍해서, 너무 안타까워서, 두 팔로 어깨를 감싸 안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최대한 동그랗게 만 채로 한없이 흐느꼈다.
그런데, 원래 이런 것이 사람의 삶이라면, 나만 이렇게 불쌍한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엄마도 혼자다. 아빠도 혼자다. 동생도, 친구도, 심지어는 내가 인연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들도 혼자다. 연민이라는 감정이 물밀 듯이 나를 찾아왔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불쌍했다. 그렇게 다들 이해받고 싶어서,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줄만한 여러 가지 방법을 실행에 옮기며 살아가는데, 어떠한 노력을 한들 그들이 혼자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안타까워서 숨이 막혔다.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모두의 문제였다. 공통의 아픔을 겪는 사람은 서로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나는 모든 사람과 공통의 아픔을 겪고 있었다. 그걸 23년간 전혀 알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헛살았다. 나는 그토록 되기 싫었던 가짜가 되어버렸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따뜻한 척하는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있었다. 철저한 가짜, 모순덩어리. 남들보다 고민을 더 많이 하고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바보취급하며 살아왔던가. 갖고 태어난 것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말자고 말하고 다니면서, 예민한 기질을 타고났다는 사실을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다. 내가 정말로 사람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사람과의 인연을 끊은 거라면, 적어도 시위에 한번이라도 참여했어야 했다.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절대 권력이 있다면 학교에 대자보라도 붙였어야 했다. 개인의 삶에 찬찬히 침투하는 악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 이 답답한 사회를 바꾸고 싶다고 말을 하고 다니면서, 한없이 나약한 개인에게만 화풀이를 했다. 내 화풀이는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는 개인도, 구조도 바뀌는 것 하나 없이, 나만 홀로 편안해지니까 말이다. 정말로 사람을 위하는 삶을 살려면, 한없이 밝은 개인을 탓할 것이 아니라, 사람을 해치는 자들을 미워했어야 했다. 계몽주의 사상에 찌들어버린, 사람을 계몽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마음속으로 나누어 바보취급하며 살아온 이기주의자. 내가 걸어온 길을 먼 발치서 돌아보니 이보다 엉망진창일 수는 없었다.
지난 세월을 통째로 드러내버리고 싶다.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두고 떠났던 모든 것들에 무릎 꿇고 사죄하고 싶다.
미안해, 미안해,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당신들 잘못인줄 알고 모질게 내쳤지만, 사실 제가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섞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함께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멈춰 서서 담배는 한 대 같이 피울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정말로 소중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홀로 태어나 홀로 죽는 사람들을 더 사랑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너무 답답해서 결국엔 그들과 인연을 끊는다고 할지라도, 그게 미워하는 마음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미움의 방향을 절대 악으로 틀었다면, 사람의 자유를 서서히 없애버리는 존재에 분노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때 같이 길을 걸었던, 잠시 멈춰 서서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웠던 얼굴들이 하나둘 씩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그들을 품고 싶은데, 꼭 안아주고 싶은데, 이토록 외로운 삶을 견뎌내 주어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라도 해주고 싶은데, 그러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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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26일 -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이야기 '
글쓴이 - 영원
음악 공부를 하고있는 대학생입니다. 이유있는 예술을 하는 것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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