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에테르, 우리의 에테르_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이야기_영원

릴리슈슈와 드뷔시, 찰나와 영원 사이

2023.11.28 | 조회 1.6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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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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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는 말한다 
처음 에테르를 음악으로 만든 사람은
‘드뷔시와 에릭사티’라고
그러나 오해는 금물이다
릴리의 에테르는 
누군가의 영향으로 생긴 게 아니다

릴리슈슈의 모든 것 중

 

(*Debussy – Arabesque no.1을 들으며 감상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에테르(aether)는 빛의 파동설의 부산물로 파동이 진행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매질 중 광파동의 매질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신조어다. 나중에 조지프 존 톰슨과 맥스웰 등이 발전시켜 빛과 전자기 현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으나, 결국 에테르가 존재하지 않음이 밝혀졌다.」 - 위키백과

에테르(aether)의 어원은 아무래도 aeterna에서 왔을 것이다. 파동을 채우는 물질, 혹은 빛 그 자체의 은유 정도로 쓰이는 현재의 용법과 다르게, 라틴어 aeterna의 뜻은 ‘영원한’, ‘불멸의’이다. 에테르는 존재하지 않음이 밝혀졌다고 함은 즉, 영원하며 불멸의 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밝혀냈다는 의미와 같다. 에테르가 ‘파동을 채우는 물질’임은, 사람들은 파동-빛, 소리 등은 영원할 것이라 지레짐작 했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영화 <릴리슈슈의 모든 것>에서, ‘진정한 에테르’는 릴리 슈슈의, 드뷔시의, 그리고 에릭사티의 <음악>에만 존재한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까? 음악은 파동이다. 동시에 빛과 같이 울려-퍼진다. 그러니까, 나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만 영원하다고 인식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보이는 것들은 다 죽는다. 생명체는 모두 언젠간 죽는다. 사물도 마찬가지로, 사용하다가 망가지면 폐기한다. 그것이 사물의 죽음이다.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서, 불멸은 어디에도 없다. 소멸할 것들을 몽땅 파괴하고 나면, 감각과 현상만이 남는다. 빛의-분산, 소리의–울림 같은 것들 말이다. 이는 찰나이자 영원이다. 빛은 찰나지만, (인간의 인식으로) 빛은 영원하다. 소리는 찰나지만, 소리는 영원하다. 나에겐 이것이 파동과 파동을 전달하는 매개체와, ‘영원’이라는 뜻을 모두 다 갖고 있다하는 에테르다. 이것이 에테르다. 이것이 세계를 채우고 있다. 감각과 현상만이, 우리 사는 세계를 채우고 있다. 

영화 <릴리슈슈의 모든 것>
영화 <릴리슈슈의 모든 것>

 

에테르가 세계를 채우고 있다. 
절망은 빨간 에테르, 희망은 파란 에테르, 영원과 침묵, 거기에 하얀 ‘글라이더’를 날린다. 

릴리슈슈의 모든 것 중

에테르가 사람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다는 믿음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갖고 있었다. ‘오케스트라’라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해 본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다 함께 내는 소리 하나가, 울림 하나가 모든 사람의 표정을 똑같이 만들어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 날. 그 마법 같은 찰나는 나를 음악의 길로 등 떠밀었다. 같은 인간이라면, 분명 공유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 믿었다. 에테르를 처음 느꼈던 순간이다. 바보 같게도, 나는 에테르가 사람들을 모두 함께 구원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린 시절 나는 에테르를 믿었기에, 신을 믿은 것과 다름없다.

(*아래 문단에는 영화 <릴리슈슈의 모든 것>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와이 슌지의 영화 <릴리슈슈의 모든 것>에서, 유이치도, 호시노도, 츠다도, 그리고 이름이 불리지 않은 수많은 릴리슈슈의 팬들도, 릴리슈슈를 사랑했고, 에테르를 사랑했다. 그러나 유이치는 호시노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츠다는 호시노의 몸종이 된다. 이름이 불리지 않은 수많은 릴리슈슈의 팬들은 릴리슈슈의 콘서트에서 호시노를 깔아뭉개고, 유이치는 릴리슈슈의 콘서트에서 호시노를 칼로 찌른다. 같은 에테르를 공유한다고 믿은 사람들마저 서로 다른 삶을 산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닿을 수 없다. 에테르를 통해서도 말이다. 영화의 뒷부분에서 유이치는, 호시노를 칼로 찌르고, 죽이고, 그러니까 자신의 세계를 한 번 깨트리고 밖으로 나왔을 때, 모두가 연결될 수 없음을 분명 깨달았을 것이다. 이제 유이치에게 ‘같은 에테르’란 없다. 나는 다른 것을 느끼고, 타인은 또 다른 것을 느낀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다른 정신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이치는 이를 깨달았기에 살아갈 수 있었다. 나의 에테르는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것. 그리고 이걸 아는 것만이 내 안의 에테르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영화에서 다루지 않은 이야기를 하나 하고자 한다. 나는 ‘같은 에테르’를 계속해서 느낄 수는 없지만, 살아가면서 타인에게 닿을 수 있는 ‘찰나의 순간’은 존재한다고 믿는다. 릴리슈슈의 팬 카페에 올라온 내용들은 한 사람이 썼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같은 정신을 공유한다. 그들은 릴리슈슈의 노래 중 적어도 찰나의 순간에는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 뒤에는 달랐을 수 있다. 그 전에도 달랐을 수 있다. 그러나 그 1분, 아니 1초라도 그들에게 같은 에테르가 흘렀다면, 그 순간은 찰나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영원으로 와 닿을 수 있다. 내가 11살 때 느낀 순간의 에테르 때문에 아직까지도 음악으로 인한 구원을 믿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같은 것은 없지만, 찰나의 순간에 침묵하게 만들 수는 있다. 같은 것은 없지만, 찰나의 순간에 모든 사람의 표정이 같을 수는 있다. 그것이 타인과 연결되어있는, 아주 희미한 빛 한 줄기다. 그리고 그것은 에테르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에테르는 파동을 채우는 물질이다. - 위키백과

에테르는 영원(aeterna)이다. - 라틴어 어원

에테르가 존재하지 않음이 밝혀졌다. - 위키백과

에테르가 세계를 채우고 있다. - 릴리슈슈의 모든 것

 

존재와 무 사이의 에테르, 찰나와 영원 사이의 에테르.

그러나 음악이 채우는 우리 몸의 진동은, 다른 세상을 잠시나마 느끼게 해 준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의 우리 몸이 느끼는 울림을 유물론으로 환원하면 분명 다른 이름들이 있겠지만, 나는 그냥 이것을 에테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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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이야기 '

글쓴이 - 영원 

음악 공부를 하고있는 대학생입니다. 이유있는 예술을 하는 것이 꿈입니다. 

브런치 https://brunch.co.kr/@d8aec389643a40f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channel/UC-78Z2dXevYPh4j0BMAhX-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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