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는 우리의 애인이자 불륜 상대다. 오늘날 우리는 옆에 사람을 두고 노골적으로 휴대전화와 바람을 피우며, 어찌 된 일인지 이러한 부정을 다 같이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여기 있지만 여기 있지 않으며, 함께이지만 혼자다."(노리나 허츠, <고립의 시대> 중)
바야흐로 스마트폰의 시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자신이 지나치게 휴대폰을 보는 건 아닌지 죄책감이나 죄의식을 느끼곤 했다. 이를테면, 자신이 '휴대폰 중독'이 아닌지 의심하며, 휴대폰 사용을 자제하려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항상 들고 다니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지하철에서만 봐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타서부터 내릴 때까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화장실이나 복도, 엘리베이터 등 언제 어디에서나 스마트폰을 자연스럽게 보고 있다.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스마트폰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스마트폰은 이제 확고부동한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노리나 허츠는 이렇게 우리 삶의 관심이 스마트폰으로 지속적으로 빼앗기는 것이 우리를 더 '외롭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카페에 가면, 커플들이 서로를 앞에 두고 각자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일에 열중하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가족들이 외식하는 자리에서도, 저마다 자기 휴대폰을 들여다보기에 바쁘다. 같이 있지만 같이 있는 게 아니다. "함께이지만 혼자다."
그러나 사랑은 시간과 정성, 달리 말하면 '정확한 관심'을 축적할 때만 지속된다. 우리는 무엇이든 시간을 들여 관심을 가질 때만 그것을 사랑할 수 있다. 집안에 새로운 화분을 놓았다면, 그 화분에 자주 관심을 가지며 물을 주고, 잎을 닦아주고, 새로 핀 꽃에 관심을 가져나갈 때만, 우리는 그 화분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화분을 그냥 방치해둔다면, 그 화분을 사랑할 다른 방법은 없다.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 사람에게 실제로 시간을 쓰고, 그 시간 동안 정확한 관심을 부여하면서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듣고, 함께 무언가를 해나갈 때 사랑이 유지된다. 함께 있어도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고, 서로에게 관심도 없다면, 그걸 '사랑하는 상태'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때로 우리는 서로 함께 있으면서도 각자 책을 읽거나, 따로 관심있는 것들을 들여다보는 식으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그 속에서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지만, 수시로 스마트폰에만 정신을 빼앗기는 건 다른 문제다. 서로를 마주보며 이야기를 해야하는 시간이나 자리에서도, 문자 메시지나 SNS에 더 관심이 기울어 있고, 그런 시간들로만 하루가 가득 차있다면, 서로를 제대로 본 시간이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육아에서는 형식적으로 아이 곁에 있으면서 스마트폰 하는 것보다, 아이랑 집중에서 놀아주는 30분이 훨씬 중요하다. 그만큼 깊이 아이랑 교감하고, 공감하며, 서로를 깊이 인식하기 때문이다. 연인간의 사랑이나 부부 사이의 사랑에서도, 핵심은 얼마나 서로의 말을 경청하고 서로에게 집중하냐일 것이다. 우리 시대가 외로움의 시대라면, 그 시대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곁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사랑은 시간이고 집중이다. '정확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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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사랑의 인문학'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1일에 발행하지 못하고 10일에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기다려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감사드립니다.
* 매달 1일 '사랑의 인문학'
글쓴이 - 정지우
'청춘인문학',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너는 나의 시절이다' 등 여러 권의 책을 썼습니다. 뉴스레터, 글쓰기 프로젝트, 각종 토크, 모임 등을 만들면서 계속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쓰며 사는 삶을 살아가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현재는 변호사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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