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꽤 오랜 기간 나의 꿈은 작가였다.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여러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좋아할 때 희열을 느꼈다. 드라마 작가를 꿈꾸기도 했었는데 스타 작가가 아니고서야 생계 유지도 빠듯할 거란 현직 작가의 인터뷰를 읽고 꽤 좌절했던 기억이 난다. 생계에 대한 고민 끝에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고, 마케팅을 하게 됐지만 여전히 이야기를 만들고 생생하게 글로 세상을 만들며 독자들을 매혹하는 작가에 대한 선망은 남아있다. 하지만 작법은 물론이고 소설의 기본기도 없는 내가 소설을 쓴다는 건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
나처럼 소설가의 삶을 선망하고 있거나, 지금이라도 소설에 도전해보고 싶지만 어떤 마음으로 소설을 써야할 지 막막한 사람들에게 <서울국제작가축제>의 <질주하는 세계>편은 깊은 울림을 줄 거라 생각한다. 김언수 작가와 메가 마줌다르 작가의 대담을 통해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치열하게 고민한 두 소설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전세계에 판권이 팔리며 뉴욕 타임스와 영국 가디언으로부터 최고의 스릴러로 주목받은 김언수 작가와 단 한 권의 소설로 '21세기의 찰스 디킨스' '차세대 줌파 라히리'라는 찬사를 받은 메가 마줌다르 작가의 대담의 일부를 기록했다.
소설의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는 원천에 대하여
메가 마줌다르 작가에게 소설 쓰기란 스스로가 몰두하는 질문을 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모든 사람이 각자에게 중요한 질문이 있다. 기후 변화, 정치 이슈, 주거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들일 수도 있다. 다만 그 질문을 어떻게 드러내고 표현해야 할지 수많은 방법들이 있을테지만 작가는 소설이라는 매개체를 찾았다. 자신이 몰두하는 큰 질문을 세분화해 세 명의 인물이 각각 작가 대신 질문을 하게 하는 것이 메가 마줌다르 작가가 소설을 시작하는 방법이다. 소설을 쓰고 싶지만 소재와 스토리, 인물에 대해 아무것도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을 구체화하는 것도 좋은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글이든 글감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렵다. 사실에 기반한 취재여도 쉽지 않은데, 상상 속의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 소설이라면 더욱 깜깜해진다. 한때는 천재적인 상상력과 날카로운 관찰력, 유독 독특한 경험들을 가진 사람들만이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김언수 작가의 답변은 다소 낯설었다. 그는 아이디어도, 관념도, 비법도 소용 없다고 답한다. 1년간 새벽부터 하루 종일 글을 써도 버려지는 소설이 너무나 많았지만, 결국 완성한 장편 소설은 17일 만에 썼다고 한다.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는 것보다 중요한 건 소설 속 세계를 마치 꿈을 꾸듯 생생하게 체험하는 것이라는 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체계적으로 사실 조사를 하고, 스토리의 뼈대를 잡고, 인물을 섬세하게 정립하는 것보다 생생하게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니. 대담 내내 체험을 강조하는 작가의 말에 궁금증이 생겼다. 도대체 그럼 체험은 어떻게 할 수 있는거지?
소설을 쓸 때 어떤 방식으로 설계하는지
소설을 쓰기 위해서 체험이 가장 중요하다는 김언수 작가는 체험에 관해 조금 더 상세하게 부연해준다. 설레는 여행길 처음 외국 공항에 도착해 숙소로 향하는 길은 유독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왜 그럴까? 적어도 여행에서는 그 순간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상에서는 내가 있는 시간과 공간에 온전히 집중하기 보다는 머릿속에 수많은 고민과 관념들과 싸우고 있다보니 불과 일주일 전 일도 흐릿해진다. 하지만 꿈에 그리던 에펠탑을 보았을 때, 기다리던 콘서트를 갔을 때만큼은 그 순간에 완전히 몰입한다. 김언수 작가에 의하면 생각에 빠져있지 않고 현실에 모든 감각을 깨워 집중하는 것이 바로 ‘체험'이다. 그렇게 체험으로 얻게 되는 것들이 소설의 기반이 되고, 또 소설을 쓰면서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소설이 완성된다고 한다. 영상을 보면서 작가가 말하는 체험은 곧 몰입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저런 잡념과 계획과 의문을 지우고 그 자체로 경험할 수 있도록 작가가 완전히 몰입해야 소설 속 세상이 완성이 된다.
특수성과 보편성은 닿아있다고 생각하는지
“소설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이 인도적 특수성이 많아보이는데 전세계의 보편적 문제와 닿아있다고 생각하나요?” 뉴욕에서 더 오래 생활했음에도 어릴 적 인도 사회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낸 메가 마줌다르 작가에게 사회자는 묻는다. 작가는 자신이 자란 인도 사회의 다채롭고 풍부한 질감이 문학 작품에서 잘 다뤄지지 않아서 써보고 싶었다고도 답했다. 그러면서도 보편성이라는 것은 특수성을 아주 깊이 파고 들어가다보면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야기를 더욱 세밀하고 구체적이고 복합적으로 쓰려고 하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쉬운 아이디어를 거부하는 것. 단순한 판단에 저항할수록 더 거대한 문제의식에 다다를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말을 듣고 소설 뿐만 아니라 모든 글쓰기의 글감을 찾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를 파고들다보면 마주하는 복잡하지만 보편적인 메시지를 이끌어내는 것. 또는 그 반대로 보편적인 메시지에 구체적인 상황들을 더하고 더해 특수한 소재로 풀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만의 이야기를 세계로 확장하거나, 모든 인류의 이야기를 나만의 상황으로 가져오는 것이 모든 글쓰기의 기본기가 아닐까.
한 시간이 넘는 대담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군더더기 없는 질문과 깊이있는 답변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무엇보다 “소설 쓰기로 생계가 가능한가?”와 같은 직설적이지만 누구나 궁금할 질문부터 “인간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지", “미래의 독자에게 어떻게 이해되고 싶은지”와 같은 질문에 두 작가는 솔직하게 답한다. 출근 전 짧은 시간을 내 소설을 쓴 메가 마줌다르 작가와 온갖 잡일을 하면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생계로 지쳤던 김언수 작가의 생생한 이야기는 소설가로서의 삶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힌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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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서울국제작가축제 뉴스레터는 서울국제작가축제를 주최한 한국문학번역원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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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메이
매달 14일 세상의 모든 문화 뉴스레터에서 <독일에서 살게 될 줄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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