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는 아니고 봄바람_카페 인사이드_정인한

2021.05.12 | 조회 1.05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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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어린 시절에는 나도  밖으로 싸돌아다니는 타입의 소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집에는 비디오도 없었고 패밀리 게임기도 없었다. 그렇다고 책도 많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심심하면 밖으로 나가는  말고는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이사를 자주 다녔던  시절 나는 주택 바깥채에 주로 살았고. 친한 친구들도 형편이 비슷했다. 

친구를 만나기 전에 주인집 문을 통과하는 것이  번째 미션이었다. 당시에는 안채 마당에 커다란 개를 키우는  하나의트랜드였지 싶다.  시절을 생각하면 왕왕하고 사납게 짓던  녀석들의 소리가 기억난다. 착하지, 반복해도 빳빳하게 세우고 있던 꼬리와 날카로운 이빨이 떠오른다. 대부분 녀석의 기세에 눌려서 대문을 피해서 에라 모르겠다, 담을 넘은 날이많았던  같다.

막상 친구  앞에서 서면 개구진 표정을 지우고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이어서 똑똑 안녕하세요. 아줌마, 동현이 있어요? 영호 있어요? 이렇게  물어보곤 했다. 운이 좋은 날은  집에서 간식을 먹으며 패밀리 게임을 하기도 했고, 친구가 빌려놓은 최신 비디오를 같이 보기도 했다. 그런 것이 없으면 같이 놀자 하고 밖에 나가면 되었다.

종목은 그날 기분에 따라서 달랐지만,   있는 것들이 많았다. 전봇대를 본부로 삼아서  놀이를 한다든지, 공이 있으면 축구를 해도 되었고, 오래된 달력이 있으면 딱지를 접어서 그것으로  시간이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재미있는놀이는 골목을 벗어나서 떠나는 짧은 여행이었다.

사실 나는 수시로 멤버가 유동적으로 변하는 탐정단의 비밀 요원이었다. 기지로 가는 길에 공병을 주워서 슈퍼에 팔면 같은 것을 공평하게 나누어 씹을 수도 있었다. 목적지에 닿으려면 학교 담벼락을 따라서 오랫동안 걸어야 했다. 그러다가문방구 앞을 지나가면 뽑기나 오락 한판의 유혹에 빠지려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대게 순간의 짜릿함보다 우정과 껌의영속성을 추구하는 우리는 현명한 비밀 요원이었고, 입구에서 파는 떡볶이의 치명적인 유혹도 이겨내는 우리는 듬직한비밀 요원이었다.

우리는 어떤 높은 산을 등반하는 군인들처럼 뚜벅뚜벅 걸어 다녔다. 살고 있는 동네의 끝까지 씩씩하게 걸어 다녔다.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밑이 우리의 목적지였다.  넓은 수변은 행정구역의 경계이기도 했고, 우리가 걸어서   있는 세상의 끝과 같은 장소였다.

거기에  군데 땅을 파면 우리의 보물상자가 있었다. 주로 철제 약통 같은 것을 구해서 거기에 소중한 것들을 모아놓곤했었다. 거기에는 운동장에서 우연히 주운 레고 피규어도 있었고, 금색으로  고무 딱지도 있었고, 가스가 많이 남은 라이터, 작게 만들어진 해적판 만화책, 쇠로  베이링 구슬, 구멍난 동전 같은 것들이 있었다. 

 보물을 가지고 어떤 놀이로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여튼 우리는 친구들과 모여서  다리 밑에서 속닥거리면서  많은 시절을 보냈다. 어른 몰래 불을 지펴 무엇을 구워서 먹기도 했고, 티격태격하다 싸움을 하기도 했고, 뜬금없이영원한 우정을 맹세하는 서약을 하기도 했다.

오늘은 한산한 카페에 앉아 있으니 이런 그림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것은 아마도, 오늘이 오월의 어느 날이라서 그런 같다. 창밖의 짙어진 나뭇잎이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처럼 밖으로 오라 오라 손짓한다. 카페를 운영하는 지금은 유년기에 즐겼던 짧은 모험은 불가한 일이 되었다. 아무리 심심해도 예고 없이 갑자기 문을 닫고 어디론가 가는 것은 불가한 일이다. 손님이 없으면 무료한 날도 있지만,  마음을 아무도 모르게 덮어 놓는   되는 것이 바리스타의 기본 소양이다.

카페 주인만큼 여행을 가기 어려운 직업군이 있을까. 프렌차이즈에서 연중무휴를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으니, 작은 카페는 대개 따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이날도 열고, 어버이날도 열고, 스승의 날도 연다. 소셜네트워크를 보면누구나  번쯤은 가는  흔한 여행도 어린 시절의 떡볶이만큼이나 그림의 떡이다. 카페가 낭만적인 밥벌이인 것은 맞지만, 나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손님을 위한 것에 가깝다.

그럼에도 낭만이 있다면, 우리는  공간을 지키는 지기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손님들이 작고 불편한 테이블에앉아서 웃고 숙덕거린다. 사람도 별로 없는데 소곤거리는 것을 보니 누구도 알면  되는 이야기이지 싶다. 일순간 이곳도누군가에는 비밀기지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하교하기 전에,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잠시 현실을 벗어날  있는 공유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나를 지배하면 기분이  나쁘지 않다. 떠나고 싶은 어떤 날은  느낌에 의지해서 일하는 날도 있다. 그러면어느 순간 나는 어떤 드라마 속의 이름 없는 배역을 맡은 사람이 되고, 주연과 조연을 위한  모든 동작에 절도가 생긴다. 그렇게 되면, 오월의 나뭇잎처럼 팔락거리는 가슴도 약간은 잦아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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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김해에서 카페를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   동안 에세이를 연재했고, 지금도 틈이 있으면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무엇을 구매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작은 의미를 찾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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