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원평 작가가 쓴 <서른의 반격>의 첫 부분은 보통 사람이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인물이 대통령의 자리에 당선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사실 그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12.12 군사 반란에도 가담했으므로 보통 사람은 아닌 듯싶은데, 당선되었으므로 그것을 믿는 사람이 제법 있기는 했던 것 같다. 당시 정치 지형 때문에 결과가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지만, 하여튼 소설은 그 시절에 태어난 세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88년도에 나는 유치원에는 가지 못했고, 태권도 도장을 다녔다. 그것은 아마도 그 해 열었던 서울 올림픽과 무관하지않을 것 같다. 텔레비전을 틀면 각 나라가 공정한 규칙 안에서 경쟁을 하는 모습이 생방송으로 혹은 재방송으로 나왔다. 결국 당시 개도국이었던 우리나라는 4위를 달성한다. 잊은 지 오래되었지만, 시대에 드리웠던 그림자와 무관하게 나도 그시절 제법 큰 꿈을 꾸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도 언젠가 열람실 칸막이에 붙여 놓았던 ‘하면 된다’ 식의 꿈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가정 형편도 조금씩 나아지는 듯했다. 보일러의 연료가 연탄을 거쳐 석유를 거쳐 가스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의 바탕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부모의 희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시에 이농민이었던 아버지는 주말 없이 밤낮으로 일만 해야 했었다. 여섯 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가서 밤 열한 시가 되어서 집에 오는 일이 허다했다. 공장이 자주 바뀌는 듯했지만, 철야 작업을 하는 날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특별한 기술을가지지 못했던 아버지는 쉽게 부릴 수 있는 노동자였다.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한 푼이라도 집으로 더 가져오기위해서라면, 그는 생산 체제에 몸을 완전히 구겨 넣어야 했을 것이다.
어머니도 각박한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서 부업을 했었다. 집안일이 끝나면 쉬는 것이 아니라, 방 한편에서방석을 깔고 앉아 홀치기라는 작업을 했었다. 그것은 기모노 원단을 염색하기 전 어떤 패턴을 넣기 위한 작업이었는데,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그 일을 오랫동안 했던 모습이 기억에 선명하다. 그런 가족의 그늘 덕분에 나는 학교를 다니고 겨우 보통의 어른으로 자랄 수가 있었다.
대학교를 진학할 때는 어떻게 하든 ‘in 서울’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방의 고등학교의 어설픈 범생인 나는그렇게 특별한 존재가 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었다. 그 때문에 지방 사범대학교에 진학했다. 내가 어떤 신을 믿고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한다면 꿈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단순한 믿음이 유효했다. 그 시절 유행했던 <연금술사>의 문구처럼 전 우주가 도와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산산이 부서지지는 않았지만, 많은 상처가 생길 수밖에 없는 꿈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은 1988년과 크게 다른 것이 없지 싶다. 사실은 조금이라도 더 특별해야 겨우 보통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그래야 주말에 산책을 즐길 수 있고, 저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을 수 있다. 때때로 노후를 잊고 시간을 편하게 흘려보낼 수 있다.
1989년생 선해, 그는 내가 아는 청년 중에서 특별한 축에 속하는 사람이다. 뽀얀 미인 같은 얼굴에 군살 없는 근육형 몸매를 가지고 있다. 단골이라 관대하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특유의 아우라 덕분에 몇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는인스타그래머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나와 비슷하게 작은 카페를 조용히 운영하고 있다. 그는 카페 운영의 모든것을 거의 혼자 감당하는데, 그 이유가 신선했다. 괜찮은 대우를 해줄 수 있을 때까지는 혼자서 일을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삼 년 동안 카페에서 일했다. 그 시절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다소 떨리는 느낌이었다. 오전 열 시에 출근해서 오후 열 시에 퇴근하지만, 받게 되는 월급 수준이라든지, 그 시간 동안 벌어들이게 되는 놀라운 수준의 매출에 관한것이었다. 몸에 문신을 자유롭게 새길 권리는 있을지언정, 시스템에 몸을 구겨 넣어서 간신히 낭만을 유지하고 세대의 이야기였다. 예전에는 시골에서도 인근 도시로의 이주민이 많았다면, 지금은 모든 것이 서울로 집중되기 때문에 열악한 처우에도 청년은 넘쳐날 것이 뻔했다.
다들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큰 사람이 되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을 청년들이다. 선해도 더 젊었을 시절에는 먼바다를건너 어떤 나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경험했다. 말은 통하지만 제자리걸음인 고향에서의 삶과,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백지에서 시작하므로 나아가는 듯한 타향의 삶 중에 어떤 것이 더 막막할까. 다른 대륙의 어떤 광활한 농장에서 배웠을 고독이랄까, 그런 것이 언뜻 보이는 것 같았다. 우수에 찬 그의 눈을 보면서 어쩌면 특별함에 대한 시대의 기준이 너무 높아져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서른의 반격>을 읽는 중이다. 서른을 훌쩍 넘어 대기업의 계열사에 인턴으로 합격한 주인공을 응원하면서 천천히 책장을 넘기는 중이다. 바라건대, 그 결과가 뻔하지 않았으면 한다. 결국, 어떤 자리에 올라서 올챙이 시절을 잊는 타협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힘겹게 특별한 사람이 되어 보통의 삶을 살아간다는 내용은 서글프다.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것도마찬가지다.
비 오는 날 선해와 나는 혁명을 꿈꾸는 시민군처럼 텅 빈 카페에 앉아서 진한 커피를 마셨다. 보통 사람이 어떻게 세상의주인이 될 수 있을까. 기적일까, 사랑일까, 노력일까. 도시의 모퉁이에 겨우 자리를 잡고 사는 우리가, 겨우 이만큼의 카페를 움직이는 우리가, 세상을 향한 반격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을까. 정답이 없는 대화였기 때문에,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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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김해에서 카페를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 이 년 동안 에세이를 연재했고, 지금도 틈이 있으면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무엇을 구매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작은 의미를 찾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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