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서울에서 살아가는 청년이 카페에 찾아왔었다. 그의 이름은 영탁, 소설가 지망생이다. 우리는 ZOOM에서 합평회를 몇 차례 함께 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동문이었다. 각자의 글을 밑줄 그어가며 보았기 때문에 조금씩 드러낸 속마음을 아는 사이라고 해야 할까. 합평회가 마무리된 것은 오래된 일이었지만, 익숙한 눈빛이었고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그날은 마침 손님도 적어서 우리는 같은 자리에 앉아서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 만나서 나누는 말은 대개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푸념이었다. 글이 잘 안 써진다. 소재가 없다. 빈 종이 앞에서 막막하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허공에서 흩어 사라질 연기 같은 말이지만, 나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은 듯 그런 말을 주고받았다. 나는 가끔 술과 담배에 기대어 글은 쓴다고 말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운동과 책이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운동은 하지 않으면 통증이 생기기 때문에 하는 편이다. 오래 앉아 있어야 글이 길게 나아가기 때문에 필요한 체력을 키운다고 해야 할까. 누워서 글을 쓸 수는 없으니 말이다. 주로 걷거나 무거운 것을 들거나 한다. 영탁도 가지런한 몸을 보니 운동을 하는 것 같았다.
책은 연료라고 해야 할까. 재료라고 해야 할까. 자극이라고 해야 할까. 나의 낡은 백팩에는 늘 책이 들어있다. 그는 어떤지 물어보았다. 그에게도 책이 중요한 부분이었다. 다만 근래에 너무 많은 책을 읽어서 그런지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책장 한쪽 편에는 읽어야 할 목록이 붙어있고, 탑처럼 쌓여있는 책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읽고도 타지를 돌아다니면서 글감을 찾는 그는 간절하게 길을 찾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 예술가 지망생에게 밥 한 끼 못 사주는 상황이 미안해서, 카페 옆 서점에 들러서 책 한 권을 선물했다.
그와 작별하고 생각해보니, 나도 한때는 책을 쌓아놓고 읽었던 적이 있었다. 입대 전 휴학하던 기간이었다. 정말 무수한책들을 읽었는데, 의무는 없었고 곧 사라지게 될 자유라서 그랬던 것 같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 많았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허겁지겁 문장을 탐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나도 이런 책들을 읽었다고 떳떳하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하다. 그래서 나는 이런저런 오래된 책들을 빌려서 읽었던 시절이었다.
이런 독법에 브레이크를 걸었던 것은 <상실의 시대>의 한 구절 때문이었다. 그 소설의 등장인물 나가사와는 주인공에게<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었다면 나와 친구가 될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구절이 있다. 속으로 과연 그럴까 싶기도 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 책을 세 번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해서 휴가를 나왔다가, 귀대하면서 <위대한 개츠비>를 챙겨서 들어갔다.
한 권의 책을 이어서 여러 번 보는 것은 나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리스트를 따라서 여러 책을 두루 읽는 것은 정해진 일정에 따라서 여러 도시를 순방하는 느낌이라면,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은 한 도시에 여러 밤을 보내는 것과 비슷했다. 새로운 풍경에 압도되어 두리번거리거나, 그 마음 들키지 않기 위해 ‘여행이란 별거 아니군’ 하며 너스레를 피우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곳에 새롭게 이사 온 주민처럼 그 도시를 차근차근 알아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두 번째 볼 때는 첫 번째 볼 때 놓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해 줬다. 세 번째 볼 때는 그전에 밑줄 그은 문장이 그렇게 빛나게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아무런 흔적이 없는 문장이 더 큰 감명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 이후로 어떤 책이든 한 번만보는 경우는 거의 없게 되었는데, 덕분에 나는 책을 빌리는 것보다는 사서 읽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읽은 책의 권수보다 적은 책이라도 얼마만큼 온전하게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주인공의 부친도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이용하여 세상 모든 책을 두번씩 읽고, 디킨스는 세 번씩 읽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카페에서 일하면서, 혹은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책을 읽는나에게는 역시나 이런 방식의 독서가 유용하다. 나의 독해력이 그렇게 훌륭한 편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나에게는 어떤 책이든 여러 번 읽을수록 생각의 길이 조금씩 뚫린다.
그 사이로 바람도 통하고, 그 작가의 영향을 받은 신선한 문장들이 민들레 홀씨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나는 그것이 손에 닿는다면 조심스럽게 잡아 구석에 심고 물을 줄고, 정성을 다한다. 그렇게 된다면 뭔가 이루어질 것 같아서 어두운 빈방에서 웃는다. 우리에게 온전히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글이 꿈 아니겠는가.
서울의 달은 나도 오래전에 보아서 잘 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방에서 책과 책 사이를, 생각과 생각 사이를 헤매며머리를 긁적이거나 코를 만지는 영탁의 모습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움츠려 앉아 자신의 세계를 발산하려는 그의 등이 팽팽하다. 손에 땀이 배고 이따금 한 쪽 어깨가 꿈틀거린다. 그럴 때마다, 조금씩 자라나는 문장이 어쩐지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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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김해에서 작은 카페를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 이 년 동안 에세이를 연재했고, 지금도 틈이 있으면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무엇을 구매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작은 의미를 찾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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