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각 9시에 맞춰 일제히 줌 화면이 켜졌다. 스무 명의 낯선 이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머리가 희끗한, 이 집단의 리더가 있다. 우리는 앞으로 나흘 동안 매일 7시간씩 꼬박 만나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이른바 ‘집단상담’이다.
심리상담사는 보다 건강한 상담자가 되기 위해, 또 상담기법을 익히기 위해 선배 상담가에게 개인상담 혹은 집단상담을 받는 경우가 많다. 역시나 이번 상담도 절반 이상이 상담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적게는 갓 스무 살이 된 사람부터 60대가 넘은 분까지 연령도 다양하다.
‘지금 여기서 느껴지는 마음과 몸 상태를 이야기해보세요.’ 리더는 이 말로 매 세션을 시작했다. 상담 기법마다 집단상담에서 집중하는 것은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집단상담은 상담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일상에서 반복되는 나의 고질적인 문제, 자주 빠지는 감정, 자꾸만 삐끗하게 되는 관계 같은 것들이 이 공간 내에서 모두 재현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느끼는 이 방의 분위기, 유독 의식되는 누군가의 시선이나 말투, 떠오르는 궁금증 같은 것들이 나의 정서 패턴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상담가이기 때문에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무래도 익숙하고 편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상대가 이야기를 던질 때마다 이 사람은 어떤 맥락에서, 무슨 의도로 이 말을 꺼냈을까 분석하게 된다는 점이 오히려 그 순간 온전히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또 그렇게 분석될까봐 두려워져 이야기를 꺼내기 머뭇거리게 되기도 한다.
감정 상태를 잘 모르겠다는 우리에게, 리더는 ‘신체 반응’에 열중해볼 것을 권했다. 얼굴이나 어깨 긴장 상태, 경미한 두통이나 복통, 열감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면 배가 아파오기도 했고, 상대의 말이 신경 쓰이면 머리가 지끈거리는 게 느껴지기도 했다. 심장이 조금 더 빨리 뛰거나 몸이 흔들리는 것 모든 감각이 살아났다. 감정이나 생각으로 알아차리기 전에 몸이 먼저 내게 사인을 주고 있었다. 감각에 귀 기울일수록 감정을 보다 빨리 포착할 수 있었다.
한 사람 두 사람 나른하거나 긴장되는 몸 상태, 모임에서 기대하는 바에 대해 말을 꺼냈다. 얼마 전 큰 병을 이겨낸 집단원에 대한 위로와 반가움을 전하기도 했고 집단상담이 낯선 이들에 대한 격려도 쏟아졌다. 서로의 호의에 호의로 화답하는 말이 이어졌다.
“지금 이 분위기가 너무 지겹고 답답해요. 집단상담까지 와서 왜 다들 좋은 말씀들만 하는지 모르겠어요.”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H가 툭, 하고 말을 꺼냈다.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일상에서라면 누군가가 나서서 넉살 좋게 냉담해진 분위기를 무마하려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담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 모두 마음 편하기보다 불편해지기 위해 상담에 뛰어든 터였다. 한참의 침묵이 이어졌다.
H가 내게 던진 말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내내 덕담 비슷한 훈훈한 이야기를 나누던 한 사람으로서 H에게 비난받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대화에 끼지 못하는 H가 외롭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고, 저런 집단원은 리더가 어떻게 이끌어갈까, 잘 이끌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평소 같으면 뭉텅이로 느끼고 지나갔을 감정들이 마음에 집중하는 상담 시간에서는 하나하나 생생하게 만져졌다. 그 후로 대화에 집중하기 어려워졌다. H의 안색을 살피느라 다른 이의 말들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도 내내 H가 생각나 마음 놓고 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다음 세션이 시작되었다. 한창 K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K는 울음 가득한 목소리로 어린 시절에 겪은 상처에 대해 나누었다. 모두가 공감과 위로의 말을 보태는데 나는 K의 눈물이 도통 와닿지 않았다. 평소 누군가의 고통에 자동적으로 빠져들고 마는 나인데, 그 순간은 그렇게 무미건조할 수 없었다. 위로의 말을 건네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여전히 표정이 어두운 H에게 눈길이 갔다.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으면 몸이 신호를 보낸다. 배에 힘이 들어가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H가 괜찮은지 걱정이 된다’고 말을 꺼냈다. 하지만 H의 마음을 듣게 될 거라는 내 기대와 달리, 오히려 내 마음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리더는 물었다. “지금 이 흐름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미 지나간 그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뭘까요?”
H가 괜찮지 않아 보여서, H가 자기 마음을 다 털어놓지 않아서, 그가 지금 힘들텐데 관심을 받고 있지 못해서... 마음속에서 H를 걸고넘어지는 목소리가 올라왔다. 하지만 그토록 강렬한 감정라면, 그것은 상대가 아니라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그 감정은 ‘지금 현재에 집중하라’는 집단상담의 철칙을 깨게 만들 정도로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거기에 가려져 바로 앞에서 울고 있는 K의 감정에 닿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제서야 마음 밑바닥을 더듬었다.
하나는 죄책감이었다. 나를 종종 따라다니는, ‘힘든 사람을 잘 살피고 챙겨야한다’는 강박이 그러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돌아와 나를 들쑤시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H를 투과해 나를 보고 있었다. 어린 시절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외로움에 고통스러워하던 내가 겹쳐졌던 것이다. 그 때의 내 감정이 고스란히 같은 무게로 H에게 얹어졌다. H가 실제로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도, 또 그만큼 고통스럽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다. 결국 과거의 내 감정이었다. 마음을 거슬러 올라가 단단하게 박혀있던 아픔을 헤아릴수록 그토록 괴롭던 H에 대한 감정이 점차 희미해져갔다.
일상에서도 나는 상대의 감정에 나의 과거를 투사하고 때때로 찾아오는 죄책감에 괴로웠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무거운 감정에 끌려 다니면서도 마음을 어지럽힌 누군가에게서 그 원인을 찾고 있었을지 모른다. 상담은 상대에게 내려두었던 닻을 내게로 옮겨오게 만든다. 상황이 주는 무게 이상으로 마음이 힘들다면, 그만큼 ‘내’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과거의 경험, 욕구, 삶의 원칙 같은 것들이 건드려졌다는 의미다. 그것을 살피고 돌볼 때에야 비로소 고통스러운 감정에서 해방될 수 있다.
나흘의 시간 동안 H에게도 그리고 다른 모두에게도 각자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골고루 찾아왔다. 혼자서는 보이지 않았던 엉킨 마음이 이 공간에서 생생해졌고, 그래서 풀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집단이라는 ‘관계’의 힘이었다. 스무 명 모두가 서로의 상담자가 돼주었던 셈이다. 줌 화면을 끄고 나온 지금, 내 곁에 있는 누군가도 내게 괴로움을 주는 동시에 고통의 뿌리에 닿는 길을 알려주는 상담자가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내 안에서 건드려지는 무언가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고통을 딛고 깊이 내려간 만큼 마음 가벼워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놓지 않는다면 말이다.
* 매달 5일 '어느 심리학자의 고백'
* 글쓴이_기린
여전히 마음 공부가 가장 어려운 심리학자입니다. 캄캄한 마음 속을 헤맬 때 심리학이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심리학을 통과하며 성장한 이야기,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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