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이 좋은 교사_슬기로운 고딩생활_은호랑이

2022.05.06 | 조회 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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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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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남편은 출근하는 내 모습을 낯설어 하곤 한다. 주5일 출근하는 내가 매일 다른 옷을 입고 가는 것도 신기한데 매일 같이 다른 스타일에 “선생님 맞어?”라고 묻기까지 한다. 그러면 나는 “나 원래 옷 이렇게 잘 입고 다녔었거든!”이라고 조금은 어이가 없고, 또 이상하게도 조금은 속이 상한다는 말투로 맞받아쳤다.

나는 사실 한때 옷과 신발, 가방과 같이 보여지는 것들에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일주일 치의 완벽한 출근룩을 위해 약속이 없는 저녁마다 틈틈이, 신중히, 또 과감히 옷을 매치해보는 일은 교사가 된 후 내가 가진 거의 유일한 취미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방 안에 놓인 전신 거울 앞에서 그 아웃핏에 완벽히 어울리는 신발을 신고 가방까지 든 채로 사진을 남기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항상 방은 벗어놓은 옷가지들에 정신없는 상태였고, 너무 피곤한 날들은 그러한 옷과 신발에 뒤섞여 잠이 든 날도 많았다.

그랬던 나를 남편은 이제야 새로이 바라본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결혼을 하고 남편을 따라 내려와 지냈던 2년의 부산 생활은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어딘지 모르게 내 자신이 짠한 구석이 있다. 쉼 없었던 학생 신분, 그리고 졸업 후 바로 시작된 교사 생활로 길들여진 내게 낯선 곳에서의 임신 기간이란 마치 팔다리가 없는 둥근 점이 된 채 모서리에 몰려 있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혼자서 할 수 있었던 것들에는 생각보다 많은 제약이 따랐고, 이런 ‘생산적이지’ 못한 기간을 버텨야 하는 나의 시간들이 무가치하고 하찮하여 어쩔줄 몰랐었다.

그래서인지 그런 자신에게 돈을 쓰는 것을 쉽게 허용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러한 침체기를 지나 한 입 ‘앙’하고 물면 새콤달콤한 복숭아향이 진동할 것만 같은 아이를 만났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다. 엄마의 옷이란 어떤 ‘존재적 가치’가 있는지를 말이다.

그 몇 년의 시간을 겪으면서 확실히 난 변해 있었다. 아이가 있는 ‘나’라는 사람을 다른 사람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가 신경 쓰였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나에게 무심해졌으며, 나를 소홀히 대하게 되었다. 대부분은 그렇게 소위 말하는 ‘애엄마’가 되어버리고 만다. 남들이 보게 되는 나의 타이틀에 스스로 납득해 버리고 그 시선에 지게 되는 순간 말이다.

나는 결혼 후 2년하고도 6개월을 휴직자의 신분으로 아이를 돌보았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세 번째 학교에 발령을 받아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아직 안면을 익힌 교사도 열 명 내외이고 아이들은 나에 대해 아직 그 어떤 정보도 모르는 듯하다. 이미 정해져 버린 타이틀을 걷어내고, 보이는 모습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나쁘지 않다. 아니 묘하게 기분이 좋다.

나를 꾸미는 즐거움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트렌드에 맞는 와이드팬츠에 크롭 기장의 상의는 기본이다. 마냥 걸리쉬한 여성스러움은 금물이다. 크지 않은 키를 보완하기 위해 중성적이고 편안한 일명 ‘꾸안꾸’룩을 입을 때에도 상의를 붙게 입거나, 다리를 드러내는 것이 요즘 나의 최애룩이다. 조금의 ‘힙함’을 가미하기 위해 악세서리 취향도 바뀌었는데, 예전에는 실버와 골드가 섞인 것을 촌스럽다고들 했지만 요즘은 오히려 믹스매치하는 것이 더 힙하다고들 한다. 통이 조금은 넓은 미들 부츠에 청바지나 트레이닝 팬츠를 꾸겨 넣는 것도 이번에 새롭게 시도해본 룩이었는데 학교에서도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이것은 자랑이 확실한데, “선생님은 남자친구 있으세요?”라는 질문을 듣기도 했다. 이 질문의 전제는 일단, 나는 아이가 없을뿐더러 결혼조차 하지 않은 ‘아가씨’라는 말이 아닌가. 고등학생들은 몸만 컸지 아직 너무 어리고 순수한 구석이 있어 이렇게 보는 눈이 솔직하다(라고 쓰고 싶다).

한 달에 몇 번이고 문 앞에 놓인 나의 택배 상자들을 보며 남편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지 알 수 없다. 아니 매일 아침마다 누가봐도 ‘교사 같지는 않은’ 내 모습을 보며 기가 찬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사람들이 생각하는 교사같은 교사 모습과 끊임없이 싸워나갈 것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남들의 시선에 지는 것이니까. 나는 언제고 그것과 싸워 이겨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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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소개 - 은호랑이

서울 현직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고딩들과 소통한지 10년이 넘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언제나 accessible한 존재이고자 노력합니다.

페이스북 - http://facebook.com/eunho.kim.7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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