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면 없어질 직업이라던데, 괜찮겠어요?”
몇 년 전 인하우스 통역사로 근무하게 된 어느 회사의 환영식 자리에서 인사를 하던 엘리가 받았던 질문이다.
“아..그런가요..?”
당황해 이상한 대답을 한 뒤 머리가 얼어붙어 엘리는 얼굴이 달아올라 귀까지 뜨거워졌다. 첫 출근을 한 직원의 (물론 정해진 계약직 직원이었지만) 환영회 자리에서 나올 만한 질문 인가? 다른 팀의 부장님이었다. 그날 밤 그녀는 한참을 폭풍 같은 고민속에 사로잡혀 있었다. 처음 들어 놀랄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AI 인공지능 시대로 접어 들면서 사라질 직업 군에 대한 뉴스에 꼭 한번씩 등장했었다. 허나 그렇게 직접적으로 누군가에게 들은 적은 없었다. 엘리는 흘려 들으며 애써 모른 척 해왔었다. 그런데 오늘은 정면으로 승부를 걸어오는 듯 했다. ‘이제 피하지 말고 마주서 보는게 어때’ 그런 어떤 지점이었다.
그 날의 사건이후 몇 년이 지났다. 엘리는 지금까지도 비슷한 뉴스 기사를 반복적으로 들으며 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AI 에게 일을 빼앗기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일이 사라질까 노심초사하지도 않는다. 업무환경도 6년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그날 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팬데믹으로 타격을 입긴 했지만) AI 통역은 일상 생활에서 여행 다닐 때 도움이 될 정도이고, 전문 통역이 필요한 현장에서는 구현이 되고 있지 않다. 물론, 기계번역은 놀랄 만큼 많이 발전해왔다. 대표적인 인공지능 기계번역 서비스는 구글(Google)의 ‘구글 번역’, 네이버(Naver)의 ‘파파고’가 있다.
인공지능 번역기가 상용화된 배경엔 ‘통계기반 번역(SMT, Statistical Machine Translation)3)’에서 ‘인공신경망 번역(Neural Machine Translation, NMT)’으로의 기술 발전이 존재한다. 우리의 뇌는 수많은 뉴런의 연결로 구성되어 있다. 뉴런은 여러 신호를 입력받고, 신호의 강도가 임계치를 넘으면 다시 다른 뉴런에 신호를 전달한다. 이 과정이 반복됨으로써 뇌에서 다양한 신호들이 처리된다. 인공신경망 기술은 이렇게 뇌를 작동시키는 뉴런의 신경망을 흉내 낸 학습 알고리즘4)이다. 이는 ‘뉴런의 신경망을 프로그래밍으로 구현할 수 있다면, 컴퓨터도 마치 인간의 뇌처럼 스스로 학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공학자들의 믿음으로부터 탄생했다.
딥러닝(Deep Learning) 기술은 기존 인공신경망 기술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새로운 인공신경망 기술의 한 종류이다. 딥러닝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번역기에 수많은 번역 데이터가 입력되면 번역기는 이를 스스로 학습한다. 그리고 기존에 저장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자연스럽다고 예측되는 번역 결과를 내놓는다. 인공신경망 번역은 기존의 통계기반 번역보다 정확도가 높고 문맥이 자연스럽다. (한국외국어 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제 103호 발췌)
메뉴얼이나 기계적인 문서는 비교적 정확하게 번역된다. 기존에 저장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확한 번역 결과가 도출되는 만큼 얼마나 ‘공개’될 수 있는 성격의 문서인가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게 된다. 매뉴얼의 경우 무언가를 안내하고 설명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니 공개되어 있고 그 만큼의 데이터가 쌓여 있어 정확도가 높다. 또한 설명적 기술로 감정이나 문맥을 크게 고려해야할 필요도 없다. 반면 기술상의 기밀이거나 특정한 보안이 필요한 문서는 기본 데이터로 축적될 수가 없다. 그만큼 정확한 기계번역을 기대하기도 힘들어진다.
엘리가 지금 근무하는 회사도 국가핵심산업 분류에 속한 기밀이라는 이유로 자체 독립적인 망에 번역을 하고 원문과 번역본 모두 외부로는 절대 유출할 수 없도록 기술적으로 원천 봉쇄 되어 있다. 보안 때문에 프린터도, 복사기도 없는, 종이가 없는 페이퍼리스(Paperless) 오피스 환경에 적응하느라 한참 애를 먹기도 했다.
그래서 기계번역에 대한 만족도가 다르기도 하다. 엘리는 얼마 전 의료계, 법조계에 종사하는 지인들과 네이버와 구글이 제공하는 번역 서비스 만족도가 어느 정도 인지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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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고 나서 수정할 부분이 있긴 한데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수준은 아닌 것 같아요. 간단한 내용 번역하기엔 번역기 괜찮아요. 물론 논문이나 저널은 전문 번역인에게 맡기지 만요” 아주 정확하지는 않아도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하다는 의견이었다. 문장이 대체로 간결하고 의학용어는 영어에 기반한 것들이 많아서인 부분도 있다.
반면 ,
“범죄관련 국의 특수한 내용과 범죄 기법 등이 담긴 문서를 번역해야 해서 전문 번역 맡기기 전에 번역기를 이용해서 내용을 미리 파악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번역의 질이 좋은 편은 아니에요.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해가 안되는 문장도 많구요. 범죄 관련 내용은 보통 내부적 기밀사안이라 데이터가 적어서 그런 듯해요.”
물론 이 두사람의 의견이 그 분야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 상징성을 지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분야에서 전문적이고 적확한 내용이 필요할 때는 전문 번역인에게 맡긴다는 전제를 지니고 있었다.
중요한 계약을 목전에 둔 회의나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재판 현장 등과 같이 전문 통번역이 필요한 현장에서 문장에서의 맥락, 화자나 필자의 숨소리 사이, 그리고 행간의 숨은 의도까지. 과연 AI가 할 수 있을까? 인간의 역할을 완벽히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함께 공존하며 효율을 높힐 수 있다. 엘리도 AI를 이용해 기억하기 힘든 단어를 찾는 시간을 줄이고 매뉴얼과 같은 문서의 빠른 번역이 필요할 때는 번역기를 돌리고 수정하여 이전에 비해 많은 양의 번역을 한다. 수 년전 환영회날 질문을 던졌던 그 부장님이 던졌던 질문을 또 받는다면 이렇게 대답을 할 것이다.
“없어지지 않을 거에요. AI의 서포트를 받으며 오히려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하며 존재할거에요.”
글쓴이 : ‘순수국내파 통역사로 먹고살기’를 썼습니다. 영어와 한국어로 세상과 세상, 언어와 언어사이의 소통을 도우며 살아가며, 세상과 사람에 도움이 되는 글을 쓰기도 소망해봅니다. 아이들과 학생들이 재미있게 영어를 익히도록 하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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