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새록새록

아이에게 진실을 말하세요_오늘도 새록새록_진솔

2023.09.15 | 조회 1.12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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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병아리 부화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_영화 <미나리> 장면 
병아리 부화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_영화 <미나리> 장면 

-저게 뭐예요?

-저거? 수놈들을... 저기서 폐기하는 거야.

-What is ‘폐기’?

-말이 좀 어렵지? 음...수놈은... 맛이 없어. 알도 못 낳고, 아무 쓸모 없어. 그러니까 우리는 꼭 쓸모가 있어야 되는 거야. 알았지?

 

영화 <미나리>의 아빠와 아들
영화 <미나리>의 아빠와 아들

 

영화 <미나리>의 아빠(스티븐 연)와 아홉 살 아들의 대화다. 이 장면을 보고 얼마 전 수업한 책 <야곱, 너는 특별해!>가 떠올랐다. 이 책도 ‘쓸모 있는 사람만 살아남는다’는 얘기를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야곱, 너는 특별해!≫ 표지
≪야곱, 너는 특별해!≫ 표지

 

야곱은 날지 못하는 새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기울어져 있던 야곱은 날지 못한다는 이유로 무리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놓인다. 무리의 우두머리들은 야곱을 절벽에서 떨어뜨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야곱을 절벽에서 떨어뜨리려는 순간, 다른 많은 새들이 야곱을 감싸기 시작했다. 야곱은 날지 못하지만 혼자 있는 어린 새들을 돌봐줬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해서 다른 새들을 기쁘게 해줬기 때문이다.

결국 야곱은 계속 무리 안에서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야곱이 날 수 없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야곱을 감싸는 새들_≪야곱, 너는 특별해!≫의 삽화
야곱을 감싸는 새들_≪야곱, 너는 특별해!≫의 삽화

 

아이들과 ‘다름’,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을 주제로 폭넓게 얘기를 나눴지만, 사실 이 책은 작가가 장애가 있는 아들을 위해 쓴 책이었다. 작가 자신이 야곱의 엄마였던 것이다. 야곱의 엄마는 야곱을 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 헤맸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작가가 자신의 실제 경험을 이야기로 만든 것 같았다.

그런데 작가가 아이에게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건 뭐였을까? 야곱은 날지 못했지만 다른 쓸모가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야곱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다른 새들이 야곱을 살리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새들이 야곱의 운명을 결정했다. 야곱은 주인공이지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이 책은 장애가 있어도 노력하고 장점을 살리면 사회에서 인정받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증 장애인을 포함하여 자신의 장점과 쓸모를 증명할 수 없는 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보편적인 진실을 말한다. 생각해보면 비장애인도, 우리 사회의 어느 누구도 ‘쓸모 있어야 살아남는다’는 사회적 요구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놀라운 점은 이 책이 동화책이라는 사실이다. 이토록 거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직시하게 만드는 동화책은 처음이었다.

불편한 얘기를 하는 건 어렵다. 특히 아이들에게 그렇다. 버트런드 러셀은 어른이 아이를 거친 현실과 접촉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무엇이든 예쁘게 치장해 보여주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아이가 어른이 되면 사라지기 마련인 속임수일 뿐이라고 했다.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서 불쾌한 진실을 차단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 자신이 솔직하게 말하는 데 괴로움을 느끼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 버트런드 러셀, ‘아이들은 현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1932. 10. 5)’, ≪런던 통신≫ 230쪽 -

버트런드 러셀의 ≪런던 통신≫ 표지
버트런드 러셀의 ≪런던 통신≫ 표지

착하고 평면적인 인물, 현실과 동떨어진 원만한 사건 전개 등 뽀얗고 보송보송하기만한 동화책이 지나치게 많다. 이런 책 속 세상에 있다가 현실 세계에 나온 아이는 이질감을 느끼며 혼란스러워할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내가 그랬다. 책 속 세상을 믿었는데 정작 세상을 겪어보니 그게 아닌 거다.

<미나리>의 아빠처럼, 이 동화책의 작가처럼 아이에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진실을 말해야 한다. 아이는 진실을 딛고 설 때 단단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우리의 역할은 진실을 알려주되 괜찮다고,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의 작가가 그렇게 했다. 작가는 아이에게 말했다. 쉽지 않을 거야. 다른 사람들이 너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어. 하지만 너의 인생은 야곱처럼 해피엔딩이 될 거야. 세상이 호락호락하진 않지만 야곱처럼 묵묵히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면 돼. 남들과 조금 다를 뿐 결국, 다 괜찮을 거야.

 

≪야곱, 너는 특별해!≫의 마지막 장면
≪야곱, 너는 특별해!≫의 마지막 장면

 

*≪야곱, 너는 특별해!≫의 자세한 줄거리와 아이들이 야곱에게 쓴 편지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kateinthecafe/76

 

*글쓴이 – 진솔

어린이들과 책 읽고 이야기 나누는 독서교실 선생님입니다. 초등 아이 키우는 엄마이기도 합니다.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에 ‘오늘도 새록새록’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진솔의 브런치 – https://brunch.co.kr/@kateinthe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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