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눈을 비비며 네스프레소 커피머신의 버튼을 누르는 것이 내게는 습관이었다. 어쩌다 늦잠을 자서, 캡슐이 떨어져서, 설거지해둔 컵이 없어서 커피를 마실 수 없는 날이 되면 마음 한구석에서 짜증이 솟구쳤다. 어쩌다 커피 한 잔도 못 마시는 신세가 되었냐며 푸념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커피 한 잔 못 마시고 바로 업무에 돌입한 날은 어쩐지 실수가 잦은 것 같았고, 그럴 때면 이건 모두 커피를 마시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커피를 마시지 않은 날의 나는 뭔가 초조함에 가득 차 있었다. 피곤함의 농도가 짙어질수록 캡슐의 개수는 늘어갔지만, 늘어난 캡슐 개수만큼의 평온함이 내게 찾아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느 날처럼 일어나자마자 아침 명상과 8분짜리 스트레칭을 하고 샤워를 했다. 서둘러 옷을 입고 부엌에 들어가 습관처럼 커피 캡슐을 꺼내다가 잠시 멈췄다. 부엌 창문으로 들어오는 그 날의 햇살이 유난히 상큼하게 느껴졌다. 몸과 머리가 이미 맑아진 느낌이었다. 갑자기 이런 의문이 들었다. “지금 꼭 커피를 마셔야 할까?” 당장 커피가 '필요'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 손에 든 캡슐은 도로 집어넣었다. 혹시라도 커피가 꼭 필요해질 때를 대비해 커피 스틱 하나를 가방에 챙기고 출근길에 나섰다.
사무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이메일을 확인하고, 할 일 리스트에 있던 일, 새로 끼어 들어온 일들을 처리하면서 나의 몸과 마음을 살펴봤다. 그날 퇴근할 때까지 나에게 '커피가 필요한 순간'은 찾아오지 않았다. 사무실을 나서면서 하루를 떠올려봤다. 신기하게도 그날 내가 보낸 이메일에는 오타가 없었고, 머리가 아프지도 않았으며, 졸음이 쏟아지지도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커피 없이도 하루를 잘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한 것 같아서 뿌듯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이후 커피를 완전히 끊은 것은 아니다. 내가 그날 확인한 것은 나와 커피의 관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커피가 오늘 나에게 필요한가?"라는 질문과 커피가 없어도 괜찮은 그 날의 경험을 통해 아침의 커피 한잔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존재에서, ‘있으면 행복한’ 존재가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커피를 마시는 것이 하루를 버텨나가기 위한 생존 수단이 아니라 즐거운 의식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커피의 향을 사랑하고, 커피를 내리는 동안 심호흡을 하는 것을 즐기며, 내려진 커피의 크레마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누구에게나 하나쯤 어린아이의 공갈 젖꼭지처럼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것이 존재할 것이다.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된 날, 한 번쯤 ‘없으면 안 될’ 존재 없이 살 수 있는지를 시험해보면 좋겠다. 우리의 하루를 채우고 있는 많은 것 중 일부는 ‘없어도 살만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생각한다. 이 깨달음의 순간이 중요한 이유는 습관적으로 내 삶을 채우고 있는 것들이 정말 필요한 것이었는지 되돌아볼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없으면 큰일 날 것 같은’ 것 없이 사는 하루의 경험을 통해 나는 습관처럼 들이켜던 커피의 진짜 맛과 향을 다시 발견했다. 우리에게 ‘없으면 안 되는 것’보다 ‘있어서 행복한 것’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
작가 소개 - 진아(眞我)
진짜 나를 찾기 위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사람. 마음챙김을 통해 지금, 여기, 우리가 주는 힘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브런치: https://brunch.co.kr/@nowhereus
*
<세상의 모든 문화>에서는 보내주시는 글을 검토 후 [주말기고]글로 발행해드립니다. 관심있는 분들께서는 메일로 원고와 작가 소개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