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오랜 손님에게 이런 문자를 받기도 한다. 사장님 별일 없으시죠. 그러면 나는 뭐라고 답장을 보내야 할 지 몰라서 조금은 고민한다. 특별한 일이 없다고 보낸다면 삶이 그저 평탄하기만 해서 괜히 미안하고, 이런저런 나의 고민과 일상을 이야기하고자 하면 구차하고 변명같은 답장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별일 없지만, 뭔가 특별한 의미가 숨겨져 있을 시간이 지금도 흐르고 있는데 나는 과연 무엇이라 말하면 좋을까 하고 망설인다.
그런 문자를 받았던 어제, 카페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군인에게 경례를 받았다. 군복을 입은 청년 셋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석 잔 시켰고, 나는 아무 말 없이 한잔은 계산하지 않았다. 눈이 동그래져서 이유를 물었고, 군인에게 어떻게 다 받냐는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일병 계급장을 단 손님이 기습적으로 경례를 했다. 필승이라고 했다. 순간 놀래기도 했고, 웃음도 피식 나왔다. 나는 옛날 생각이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2002년도에 입대를 했고, 이제는 너무 까마득한 시절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시절에는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때 붙었던 습관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데, 덕분에 장사가 어느 정도 된다고 말했다. 그것은 복명복창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병장 계급장을 단 친구가 불이 켜진 듯 피식 웃었다. 군 생활이 쓸 곳 없는 것 같지만, 완전히 무용한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빨대와 음료를 가지고 나가면서 느슨한 표정의 병장이 경례했다. 약간은 삐딱한 그리고 세련된 자세의 경례였고, 발음은 ‘필’이었다.
그 말을 두 번이나 들어서일까. 나는 온종일 기분이 좋았다. 의자에 몇 번 무릎을 부딪치고, 오래 서 있었던 탓에 발등이조금 아팠지만, 그날은 그들의 말처럼 승리했던 날인 것 같다. 덕분에 특별한 날이 된 것이다. 완벽한 날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은 장사가 안되기도 했지만, 아무튼 마음속에 한 장의 사진 같은 선명한 이미지가 남게 되었으니 특별한 날이었다.
이번주 토요일에 사실, 조금 특별한 일이 있을 예정이다. 조용히 책이 나왔고, 판매량은 출판사에 미안할 정도로 저조하지만, 동네 책방에서 출판 기념회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가면 어떤 질문을 해올지 걱정이다. 책을 내고 기분이 어떤지 이런 것을 물어볼 것 같은데, 나는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까. 초조하다.
나는 조리 있게 말하는 것을 잘못하는 편이다. 일대일로 이야기하는 것은 괜찮은 편인데, 듣는 사람이 여러 명이 되면, 각개인의 서사가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을 즐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책이 나오고, 어떤 손님은 나에게 작가로 불러야 할지, 사장으로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나는 그냥인한 씨라고 불러라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나는 사장이라고 하기에는 또 장사치의 면모가 부족한 편이고, 작가라고 불리기에는 지우는 사람에게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을 쓰고 네 개정 도의 블루투스 키보드가 고장 났는데, 늘 먼저 고장나는 버튼은 지우기 버튼이었다. 열 문장을쓰고, 여덟 문장을 지우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꼭 필요하지 않은 글을 홀로 쓰는 편이고, 그것을 늦게 깨닫고 다시 지우는일이 많다.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더디게 쓰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쓴 글은 그렇게 짧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긴 글을 쓸 때는 늘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 쓰려고 하는 편이다. 저기가 언젠가 닿을 곳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자판 앞에서는 막막하고 그것은 마치 사방이 꽉 막힌 곳에서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런데 그렇게 사방이 꽉 막힌 곳에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나의 현재는 생각도 든다. 별일 없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나의 전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사실 별일이 없었다, 앞으로 펼쳐질 날들도 비슷하지 싶다. 아마도 별일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한다. 나는 특별한 경험을 기다리며 살고 싶지는 않다. 다만,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하루에 한 장 정도, 따뜻한 이미지 한 장이 있었으면 싶다. 어떤 섬에 가지 않아도, 화려한 호텔에 가지 않아도, 어떤 빛이 드리워진 근사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괜찮다. 딱 하루에 한 장의 이미지만 마음속에 남았으면 한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 그것을 잊지 않는것이 작고 짧은 승리가 아닐까. 각자의 소박한 필승을 바라며, 욕심을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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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김해에서 작은 카페를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 이 년 동안 에세이를 연재했고, 지금도 틈이 있으면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무엇을 구매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작은 의미를 찾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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