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자 직장인의 이모티콘 도전기

이모티콘 작가 활동을 쉬었다_비전공자 직장인의 이모티콘 도전기_선샤인

2024.06.21 | 조회 8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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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3개의 카카오 이모티콘을 출시하고 나는 어떻게 됐을까? 꾸준히 이모티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멋진 말을 전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2022년 6월에 “뽀여사” 이모티콘 제안을 승인받고 나서, 22년 연말까지 이모티콘 판매를 위한 그림 작업을 진행했다. (숙련된 이모티콘 작가는 판매를 위한 작업을 더 빨리 끝내기도 한다.) 22년 6월에 제안했던 이모티콘은 실제로 23년 봄에 출시되어 판매가 이루어 졌다. 이렇게 카카오 이모티콘 제작에서 판매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움직이는 이모티콘을 제안할 때는 3개의 움직이는 이미지 시안과 21개의 멈춰있는 이미지 시안을 제출하면 되지만, 실제 판매를 위해서는 24개 모두 움직이는 이모티콘 시안을 만들어야 하고, 기프트 이미지, 버튼 등 다른 작업들도 해야 한다.)

카카오 이모티콘 제안화면 (출처: 카카오 이모티콘 스튜디오)
카카오 이모티콘 제안화면 (출처: 카카오 이모티콘 스튜디오)

출시 작업을 하면서 7월 즈음에 새로운 이모티콘을 제안했지만 미승인을 받았다. 이번에는 미승인을 받고 큰 상실감을 느꼈다. 기존에 이모티콘을 출시했다고 해서 무조건 승인을 받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이모티콘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같은 캐릭터의 시리즈 이모티콘이라고 할지라도 매 번 새롭게 심사를 받아야 한다. 지금까지 승인을 받기 위해 20번 넘게 제안을 했고, 3번의 승인을 받긴 했지만, 다시 원점 상태인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정말 이 일을 좋아하지 않으면 꾸준히 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 번 미승인의 좌절을 극복해야 지속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뒤로 한동안, 나는 다시 그림과 멀어졌고, 새로운 제안을 하지 못했다. 마지막 제안이 2022년 7월이었으니 나는 근 2년간 새로운 이모티콘을 제안하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고 아예 이모티콘을 안 그린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 선보이고 싶은 이모티콘들이 있었다.

생각나는 대로 시간이 날 때마다 작업 중이었지만 완성을 못해서 제출을 못하고 있었다. 마음에 100% 들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것처럼 매일 신규 이모티콘들이 쏟아져 나온다. 내가 생각한 것과 비슷한 아이디어를 누군가 생각해 낼 수 있음으로, 아이디어가 있다면 빨리 만들어서 선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생산성을 갖고 빨리 만들어서 다양한 이모티콘을 출시하고 싶은 갈급한 마음이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이모티콘을 많이 그리고 싶은  마음이 분명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답답했다.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일도 꾸준히 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하지만, 어쩌면 그때 내 마음은 다른 것을 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방향성을 상실했던 나
방향성을 상실했던 나

그때 즈음, 나는 생산성이 떨어졌고, 삶의 방향성도 상실한 사람이었다. 내가 살아온 삶이 내가 원하는 인생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살아지는 대로 살아갔다. 생계를 이어가야 했으니 하루하루를 버티듯이 회사를 다녔다. 한동안 퇴근하면 원래 그랬던 것처럼 핸드폰을 보다가 야식을 먹다가 잠들었다. 나는 그렇게 겨우 버텨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사용해서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방법에 대한 강의 등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오고, 이직을 몇 번 해서 연봉을 많이 올린 이야기,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기기 위해 기업에서 요구하는 역량을 키우려고, 퇴근 후에 또 공부를 하는 부지런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시각각 접했다. 나는 그런 것들에 어지러움과 현기증을 느꼈다. “뭐라도 해야 되는데… 나만의 역량을 개발해서 도태되면 안 되는데..” 하는 불안감은 늘 엄습했지만, 나는 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찾기 전에 나를 좀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심리 검사와 심리 상담을 받았다.  내 선천적인 기질에 대한 검사, 성격 강점 검사, 잠재된 경향과 실제 일상에서 드러나는 경향, 잘못 발현될 수 있는 특징 등에 대해 검사해 봤다. 그런 검사들을 토대로 나는 무엇인가를 창의적으로 만드는 것이 적성에 맞고, 경쟁보다는 공감과 수용을 선호하며, 나름의 체계 속에서 성실한 삶을 쌓아 올릴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양한 심리 검사도 받고, 심리 상담도 신청했다. 개인적인 힘든 일들이 쌓여서, 내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상담을 받으면서 알게 된 것은 내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10년도 더 지난, 아주 오랜 과거의 몇 가지 트라우마 같은 사건들이 미해결 된 상태로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살면서 그 일들의 부정적인 기운이 내 인생을 나락으로 끌어당길까 봐 좋은 생각들을 하며 바쁘게 살려고 노력해 왔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 심연에서 그 일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담 선생님은 아픔을 복기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 기억을 되살려서 구체적으로 적어오라고 하셨다.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면 어떤 말을 했을 것이고 어떤 행동을 했을지도 적어보라고 하셨다. 오랫동안 회피형 인간이었던 나는 오래전에 그 사건들을 겪으며 고통스러웠던 내 마음의 소리를 듣지 않고 회피하는 방식으로 견뎠다. 하지만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그 모든 사건들을 다시 겪는다면, “용기를 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말했다. 상담 선생님은 그것이 해결방법이라고 했다. 앞으로는 삶에서 원하는 대로 용기를 내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감정이 해결되지 않으면, 과거에 상처를 준 사람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오랜 과거지만 여전히 고통을 주고 있는 사람을 대면하고 사과를 받고 미해결 된 감정이 해결된 상담 선생님의 경험도 전해주셨다. 나는 다시 그 사람들과 엮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내 감정의 힘든 부분을 인지한 것에서 상담을 마무리 지었다. 

상담을 받을 무렵, 글쓰기도 배웠다. 매주 올라오는 주제를 보면서 내 생각을 정리해 보게 되었다. 엉켜 있는 생각들을 하나씩 풀어나가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고민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나조차도 나를 잘 몰랐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글을 쓰고 작가님께 피드백을 받고, 함께 배우는 다른 작가님들께도 합평을 받으며 내가 쓴 이야기에 대해 이해와 공감을 받았다. 마음이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백지를 마주하고 내 이야기를 쓸 수 있을 때쯤, 다시 백지에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과 용기가 솟구쳤다.

나는 이모티콘 제작이라는 내가 좋아했던 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인기 있는 이모티콘 작가가 되면 좋겠지만, 그전에 내 꿈은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그림으로 오롯이 나타낼 수 있는 이모티콘 작가가 되는 것이었구나. 아직 그림 실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정말 표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아서 작업에 벽을 느꼈구나. 어쩌면 이런 시간은 내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구나. 다시 그림을 그려야 겠다.” 

내 마음이 무엇인가를 몰입하기에 최적의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약간의 스트레스와 과거에 안 좋은 기억도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일을 완벽한 상황에서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이모티콘으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분명히 있었다. 그렇게, 내가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차분히 체에 걸러서, 차근차근 다시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거듭하고 있었다.

 

 

 

* 코너명: 비전공자 직장인의 이모티콘 도전기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마음을 꺼냈습니다. 다시 그림을 조금씩 그리다가, 이모티콘 제작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비전공자 직장인이 3개의 카카오 이모티콘을 그리고 출시한 도전기를 씁니다.

 

* 글쓴이: 선샤인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귀여운 것들을 보면 행복해하는 직장인입니다. 이제는 글을 함께 써보려고 합니다. ‘나를 더 잘 알고 싶은 마음’과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글을 씁니다. 글이 글로 끝나지 않고 삶으로 이어질 때, 나만의 동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브런치 - https://brunch.co.kr/@sun3hine-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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