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베낀 명화에 관하여

비 내리는 공작 도시_내가 베낀 명화에 관하여_오랑

2024.06.20 | 조회 8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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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내가 베낀 명화_공작도시 동冬, 1983.
내가 베낀 명화_공작도시 동冬, 1983.

모두가 시간을 쫓는 아침나절이었다네 지상으로 백화점을 세운 도시의 지하도 찬 바닥에 수그린 고개 움츠린 한 사람을 만났다네 늙은 사내는 발치에 펼친 청색 보자기 위에 흙 뿌리가 드러난 쪽파 뭉치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네 그는 쪽파를 팔러 나온 사람, 그날은 그의 첫 장삿날이었다네 흙을 매만지고 돌을 골라냈을 단단한 손은 다소곳이 접힌 마른 무릎 안쪽에 감추었다네 꼼짝 않고 웅크린 몸 표정 없던 얼굴이 흐릿하게 웃었다네 희디흰 쪽파 뿌리를 눈으로 어루만지며 웃고 있었다네 아무도 모른다네

지하도를 걷다 쪽파를 팔러 나온 한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날 내내 희디흰 뿌리 쪽파 다발과 그의 웅크린 왜소한 몸이 깊게 잔상으로 남았다. 그때의 나는 어쩐지 조금 슬펐다.

그날 내게 남겨진 짙은 잔상을 옮겨놓은 것만 같은 작품을 언젠가 만났다. 셔터가 내려간 상점 앞에 아이를 안은 여자가 발치에 뭔가를 펼쳐놓고 나앉아 있다. 거리는 이미 어스름이 깔리고 가로등 아래로 내리치는 노란 불빛이 셔터 위에 사선으로 빛을 그리고 있는 저녁녘. 어둠이 짙어지는 거리를 떠나지 못하는 아이 안은 여자, 그 여자 앞을 지나치는 한 젊은 남자는 빈 호주머니에 시린 손을 찔러 넣고 걷고 있다. 그의 시선은 차가운 길바닥. 여자에게 돈이 될 만한 것들은 젊은 남자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잡다한 물건일 뿐. 그들에게는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인다.

손상기_공작도시 동冬, 1983.
손상기_공작도시 동冬, 1983.

<공작도시 동冬, 1983>을 그린 손상기(1949.11.14.~1988.2.11) 화가

한국의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프랑스, 1864.11.24.~1901.9.9.>으로 불린다. 어릴 적 앓았던 구루병이 척추만곡으로 이어져 평생 신체적 장애를 안고 살았다.

크레용과 수채를 사용한 작품
크레용과 수채를 사용한 작품

육중한 철재에 몸을 담고 목적 없는 여행길에 허탈한 심정으로 가고 있는 인간고-. 그러나! 내겐 크레용 펜과 스케치북이 있어 외롭거나 슬프지 않다. -1975. 5. 28. 일기

신체적 고통과 가난, 그 치열한 삶에서도 1500점에 달하는 드로잉과 유화 작품을 남겼다. 여수에서 태어난 그는 1979년 서울에 상경해 주로 도시 하층민의 서글픈 삶의 모습을 그렸다.

서글픔은 때론 아름다운 문장으로 태어난다.

비를 기다렸어요

길 건너 야간학교의

체육 수업을 훔쳐보며

내리지 않는 비로 서 있었어요

- 허연, <공작 도시-손상기의 그림에서>의 일부.

비를 기다리는 이 아이의 마음을 조심스레 더듬어보며 내리지 않는 비로 서 있었어요라는 아름다운 구절에 가슴이 아린다.

오늘 낮부터 밤까지 많은 비가 예상되니 하천 산책로, 해안가 저지대 등 위험지역 접근 자제와 빗길 안전사고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종종 들리는 동네 카페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었다. 안전문자가 온 것은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이내 쏟아지고 나서야 알았다. 길가에 선 벚나무 이파리들이 비바람에 마구 흔들리고 아스팔트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바퀴가 세차게 빗방울을 튀기는 광경을 카페 전면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았다. 여름이 시작되었는데, 갑자기 비가 막 쏟아지고 나는 어쩐지 추위를 느꼈다. 축축한 비가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내겐 우산이 없구나.’

안타깝게도 나는 그의 작품을 직접 본 적이 없다. 나의 미술 선생님이 손상기라는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면 아직 그 존재를 모른 채였을 것이다. 그의 이름을 검색하고 관련된 이미지들이 나를 따라붙었다. 거칠고 차갑고 칙칙한 그의 그림들은 단숨에 나를 사로잡았다. 우산 없이 무방비 상태로 비를 만난 것처럼.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누군가에게 여기로 와달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쏟아지는 빗속으로 달려들어 뛰어가야 할까. 언제 그칠지 모르는 비를 마냥 바라보았다. 나는 예상하지 못한 비 때문에 난감했다.

비로 서 있는기분은 뭘까? 비 내리는 여름날 내가 느끼는 추위와는 어떻게 다를까? 그의 축축함을 나는 모른다. 짧은 생애 동안 얼마나 외롭고 추웠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손상기의 서늘하고 거친 칙칙하기까지 한 그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따듯한 내면을 보여준다. 자신을 자라지 않는 나무라고 했지만 그는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꿋꿋하게 자라 꽃을 피워냈다. 여전히 시들지 않는 꽃으로 차갑고도 아름다운 예술의 세계를 보여준다.

시들지 않는 꽃, 1985.
시들지 않는 꽃, 1985.

1985년에 그린 작품인 <시들지 않는 꽃>은 고통에 휩싸인 육체와 타오르는 예술혼을 지닌 손상기 화가 자신을 표현한 것만 같다.

나의 화병에는 꽃을 꽂지 않는다.

고로 내 그림 중에 꽃 그림으로 보이는 것은

그렇게 보일 뿐이지 꽃이 아니다.

얽혀 살고 있는 우리 동네 우리 이웃

아니면 내가 본 나의 가족의 모습이다.

때로는 나의 얼굴도(꽃은 시들기에 싫다.)- 손상기의 작가 노트 중에서

계단을 오른 후의 쾌감 친구는 없지만 축배를 들고 싶다.’ 그는 개인전을 잘 마친 후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한 계단 한 계단 마음을 다잡아 예술의 삶을 걸어온 그는 결국 축배를 들지 못했다.

19852,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을 때 폐울혈성 심부전증 진단을 받았다. 평생 크고 작은 병에 시달린 탓에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지만 점점 쇠약해지는 자신을 느끼며 죽음을 예감했을 것이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그는 1986년에 <공작도시 영원한 퇴원>을 그렸다. 하얀 시트 위에 드러누운 지팡이, 비 내리듯 거칠게 표현한 병실 안, 병실을 떠나지 못하는 영혼처럼 허공에 떠있는 링거 라벨 등이 슬픈 죽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공작도시_영원한 퇴원, 1986.
공작도시_영원한 퇴원, 1986.
돌담 양지바른 곳에는 으레 땟국 흐르는 촌동들이 누가 시킨 양 벽에 등을 대고 쭈욱 서 있기 마련이다. 추우니까 수영도 못하고 산에 소를 먹이러 가지도 않고 방학이니 학교도 안 가고, 빛바랜 도회의 구호물자 옷(중고), 까까머리, 훌쩍여 대는 콧물, 점심은 늘 푹 삶은 고구마 그것도 큰 것은 팔고 아주 작은 것을... 팽이치기를 자유롭게 할 순 없었다. 나에게 팽이를 깎아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그 어린 날의 나는 늘 서글픈 눈이 되어 있었다. 집 앞 배나무에서 첫새벽부터 울던 그 예뻤던 새. 어릴 적 보랏빛으로 태양을 자주 그렸다. 그때 나의 눈에 보였던 태양은 푸른색이 섞여 있는 빛나는 보랏빛이었다. ‘영원한 퇴원’ 태양은 아직도 보라색으로 보이고 있지만, 어릴 적 부르던 노래는 어디 있을까. - 손상기의 일기 중에서
가족, 1984.
가족, 1984.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왜소한 몸의 화가 자신과 그의 무릎에 다정하게 팔을 올린 아름다운 아내의 모습, 앞쪽 아래에는 갓난아이로 보이는 아기가 흐릿하게 표현되어 있다. 어두운 색감으로 그려진 <가족>은 어쩐지 애잔하다.

, 육신 어디가 아픈 들 이같이 고통스러우랴. , 무엇에 아무리 열심히 신경을 써서 몰두한들 이처럼 진하게 찢어지랴. 이 내 아내를 빨리 품으로 돌아오게 해 주소서. 기다림의 하루가 일몰을 지나 정적으로 꽉 찬 밤에. 나는 준이 생각으로 연결되면서 울어버렸다.’

그가 사랑했던 첫 아내 준은 아이 하나를 낳고 그를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누런 종이 위에 짙은 푸른색을 칠하고 그 위를 나이프 끝으로 푸른색을 긁어내듯 그린 이 작품은 글로 쓴 심정을 그대로 표현해 냈다. 엄마와 아내를 기다리는 아이와 아빠의 안타까움을 무슨 말로 달랠 수 있겠는가. 깊은 슬픔과 고통은 그 누구도 달래줄 수 없는 것이다. 그는 1988211일 서른아홉 해의 짧은 생을 보내고 두 번째 부인과 두 딸아이 곁을 떠났다.

화가가 그린 그림들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기도 하는데,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나는 여름날 종일 내리는 세찬 장대비처럼 겉옷을 찾게 만드는 축축하게 스미는 서늘한 추위를 느낀다. 겨울에 느끼는 싸늘한 추위와는 분명히 다른.

카페 바깥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노트북을 닫고 가방을 끌어안고 밖으로 나왔다. 우산이 없었지만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는 언제나 얇은 겉옷이 있었다. 곧 도착할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흐릿하게 웃었다. 비를 그토록 기다린 여름날이었다.

동화속 삽화 같은 드로잉
동화속 삽화 같은 드로잉

여름 빗속에서 잠자리 한 마리 내게 날아들었다.(내 마음속 환상이다.)

내 마음속에 환상이 사는 이상 나는 어떤 비극에도 지치지 않고 이 세상을 살고 싶다(1979. 7. 1. 일기 중에서)’던 손상기 화가의 모습이 분명했다.


참고도서

<손상기의 삶과 예술-빛나는 별을 보아야 한다>. 시문난적.

<자라지 않는 나무- 손상기의 글과 그림>. 샘터화랑.


내 안으로 들어온 명화를 보고 느끼고 베껴 그리며 생각한 것으로, 시와 짧은 단상들이다.

. 오랑

추웠던 어느 저녁, 누군가 내민 재킷의 온기를 기억하며 따스한 일들에 대해 생각한다. 내 안의 온도를 높이려고 읽고 쓰고, 그림을 그리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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