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오늘은 신년 기획으로 '세상의 모든 문화' 필진들이 꼽은 2023 신년 키워드를 보내드리고자 합니다.
2023 신년 키워드는 필진들의 개인적인 삶과 시대, 세상에 대한 성찰이 함께 녹아 들어갔습니다.
구독자분들께서도 필진들과 함께 신년 키워드를 고민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jiwoowriters@gmail.com으로 구독자님이 생각하시는 신년키워드와 그 이유를 1/25까지 보내주시면, 선정 및 취합하여 뉴스레터로 발송해드리고자 합니다. (보내주실 때는 본인에 대한 간단한 소개나 링크하고 싶은 계정, 블로그 등도 함께 보내주시면 함께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세상의 모든 문화 2023 키워드]
버티는 마음(정지우), 의존(수영), 당신은 얼마나 큰 사람인걸요(지은이), 안전한 다정함(김근영), 느슨하고 확실한 연대(고운), 우리 너머의 우리(황진영), happy to serve you(정인한), 용기(앨리), 질문을 멈추지 않음(기린), 무기력(지민웅), 다감해지고 싶어요(보배), 차츰 해나갈 결심(정연), 이웃(홍수정), 이제와 삶을 다르게 보게 하는 것(전이서), 흐르는 강물처럼(김소라)
1. 정지우의 키워드 - "버티는 마음"
금리인상과 물가상승 등 일종의 코로나 후유증을 사회적으로 겪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무엇에든 휩쓸려가기 보다는 자기 마음의 중심을 지키고, 삶을 돌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다. 지난 몇 년간 각종 재테크 열풍 속에서 "가만히 있으면 바보다."라는 구호가 온 세상을 휩쓸면서 격류같은 시절이 흘러갔다.
그러나 다가온 시대에는 내 삶에서 진짜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점검하면서, 버텨야 할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2002년이 "꿈은 이루어진다"의 시대였다면, 2023년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 중요한 시대다. 주위를 둘러보고 손을 잡고 이 시절을 이겨내자.
2. 수영의 키워드 - "의존"
혼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에 죄의식을 느꼈고 거기서 발생하는 불안 때문에 언제나 나 자신을 책망하게 되었다. 나의 취약함이 드러나서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니. 도움이 되는 사람은 못 될 망정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전세계적 감염병으로 고립과 질병을 제대로 경험해 본 현재, 또 다른 질문을 갖게 되었다. 비의존적이고 자율적이며 생산적인 인간은 존재하는가? 영원히 비의존적이고 자율적이며 생산적인 인간의 존재가 환상이고 허상에 불과하다면, 어린아이와 노인, 장애인, 이주민, 빈민이 가지게 되는 삶의 특징에 의존이라는 낙인을 찍고 구별했을 때 우리 사회가 갖는 이득은 무엇인가? 혹은 손해는 무엇인가? 어차피 취약함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라면, 우리 각자가 가진 취약함을 정직하게 드러내고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의존하기 시작할 때 어쩌면 삶이 더 나아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가진 취약함에 얼마만큼 정직하게 대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취약함이 당신의 취약함에 연결되었을 때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2023년 한 해 지켜보고 싶다는 욕심을 한번 가져본다.
3. 지은이의 키워드 - "당신은 얼마나 큰 사람인걸요."
외롭고, 힘들고, 지쳐버리는 순간은 당신의 시야가 갑자기 바늘구멍처럼 좁아질 것입니다. 그렇게 작은 바늘구멍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는 당신이 얼마나 단단하고 멋진 사람인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안 될거야, 너는 못해, 별로야” 당신의 마음 속이나 혹은 밖에서 들리는 이 목소리들은 힘이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마음 속에 이런 마음이 든다면, 잠깐만 멈추고 한발만 뒤로 걸어가 나를 바라보면 어떨까요. 잠도 푹 자고 밥 세끼도 잘 챙겨먹고, 땀 흘리고 운동도 해 보면서 다시 나를 바라보면, 당신 속에 깊게 잠들어 있던 토끼가 보일 거예요. 우리 어깨 힘만 조금 빼고 나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봅시다. 이 시간이 쌓이면 어느새인가 당신의 마음 속 깊게 잠들었던 토끼가 눈을 크게 뜨고 깡충깡충 뛰어다닐 거예요. 당신을 믿어 보세요.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신 더 멋진 사람일테니까요.
4. 김근영의 키워드 - "안전한 다정함”
타인의 삶에 개입하고 관여하는 관계주의에 지친 우리는 코로나가 시작되자, 어쩌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식당의 칸막이처럼 나의 영역을 지켜주는 경계가 생겨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2년이 넘는 시간동안 결국 우리는 타인과 함께 해야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 가까우면 뜨거워 녹아버리고, 멀어지면 차갑게 얼어버린다는 걸 알게 된 우리. 23년에는 서로를 지킬 수 있는 안전한 거리에서 함께 다정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자신을 존중해주고, 타인 역시 존중받아야 함을 아는 것에서 출발하면 좋을 것 같다. 상호존중을 기반으로 서로에게 다정할 때, 나약하고 미약한 우리 각자는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고 또 한 걸음 내딛을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5. 고운의 키워드 - “느슨하고 확실한 연대”
놀랍게도 조직에서 서열이 높으면 인격적으로도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맥락을 무시하기 쉽고 사실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것 같다. 어찌보면 오해할 준비가 되어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의 시류 속 작은 오해를 쌓아 큰 미움으로 묵히는 것이 생각보다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인 것처럼 느껴진다.
‘가르쳐준다’를 명목 삼아 함부로 판단하고 무례함을 휘두르는 폭력에 대항하는 방어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 이해해 주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그들이 건네는 격려와 응원 같은 것은 휘발되기 쉬워서 2023년도에는 감사하는 마음을 잘 간직해 두었다 베풀리라 다짐하려 한다. 불확실과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며 혼자 따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커지곤 하는데, 이럴 때일수록 서로의 사이를 느슨하게 연결해 두고 천천히 함께하려는 사회적 연대가 필요한 것 같다.
6. 황진영의 키워드 - "우리 너머의 우리"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을 묶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라는 이름 안에 묶여있는 사람들은 ‘우리’ 밖의 사람들을 ‘그들’이라 부르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때로 미워하고, 때로 배척합니다. 어쩌면 ‘우리’일 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나’와 ‘그들’이라는 눈으로 보면 놓칠 수 있는 사람들, ‘우리’ 일 수 있었던 사람들을 더 많이 발견하고 싶습니다.
7. 정인한의 키워드 - "happy to serve you"
어떤 날은 더 늦기 전에 이 카페를 접고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해야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오랜만에 겪어보는 일이라, 털어내는 것도 어려웠다. 그렇게 우중충한 걱정 속에 빠져 있는 어느 날에 단골손님으로부터 작은 머그잔을 선물 받았다. “We are happy to serve you”라고 새겨져 있는 컵이었다. 나는 그것으로 선반에 제일 높은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어깨가 움츠러들 때마다 고개를 들고 그 문구를 읽었다.
그것이 기적 같은 변화를 몰고 오지는 않았다. 다만, 그것은 기다렸던 은은한 빛이었고, 언제 식을지 모르지만 당장은 꽤 따뜻한 온기를 주는 한잔의 커피와도 같았다. 그것에 집중하면 이 시절을 무사히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조금씩 돋아났다. 근거 없는 희망은 또 다른 절망을 불러올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 손님은 오늘도 우리 카페에 들렀고, 그 문장은 선반위에 확고하게 새겨진 채 있으니, 그렇다면 이 삶을 이어가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Sever 하면서 오는 그 작은 행복을 이어가야지, 그 느낌을 이어가다 보면 표정도 다시 편안해지고, 삶도 그렇게 되겠지 싶었다.
8. 앨리의 키워드 - "용기"
벌써.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해처럼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찾아오는 시작도 있지만 새로운 일터, 새로운 관계, 새로운 도전에는 의지를 끄집어 내는 용기가 필요하곤 합니다. 새로운 공간과 환경에 나를 내어던질 용기, 어색함으로 가득찬 공기를 깨트릴 한 마디를 건낼 용기, 도전 가운데 나의 한계를 마주할 용기, 한계를 품은 지식고 경험일지라도 부족하다 여기지 않고 꺼내어낼 용기. 이 모든 과정에서 얼굴이 빨개질 만큼의 민망함을 견디어 내야하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을 참아 내는 시간도 있겠지요. 그럼에도 용기의 끝은 누군가의 용기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용기에 도전해 봅니다.
9. 기린의 키워드 - "질문을 멈추지 않음"
팬데믹의 지독한 상징과도 같았던 마스크를 곧 벗는다는 뉴스가 떠돈다. 기다렸다는 듯 여행상품이 쏟아지고 재택근무는 대면으로 바뀌고 대규모 모임이 재개된다. 이 희망적인 변화 앞에서 나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코로나로 모든 것이 멈춘 몇 해 동안 우리는 서서히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고 믿는다. 학교가 무엇일까, 직장이 어떤 의미일까, 관계가 무얼까. 정치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평소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별다른 관심이 없던 구조에 하나둘 물음표가 생겼다. 여러 제약과 통제 속에서도 사람들은 선택적으로 관계를 맺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줄이는 방향으로 적응해왔다.
다시 빼곡히 자리를 채우고 눈 앞의 흐름에 휩쓸리면서 이 질문이 희석되고 비본질의 홍수 속에 파묻힐까봐 나는 두려운 것이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방식이 내가 원하는 것을 담고 있는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나를 둘러싼 사회구조가 최선인지 회의하는 마음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고민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대안을 상상해보는 만큼 세상은 더욱 본질에 가까워질테니 말이다.
10. 지민웅의 키워드 - "무기력"
락은 죽었다. 새로운 세대는 가슴을 쾅쾅 치는 강렬한 비트 대신 편안한 플로우를 즐긴다. 분노는 피곤하고 저항은 귀찮다. 걱정거리는 많고 잠은 쏟아진다. 전쟁과 기근 이후 생존이라는 과업을 너무 빨리 극복한 한국 사회는, 그 과정에서 생긴 상처로 앓아누웠다.
일과 물질을 향한 부모의 강박에 소외된 아이들은 무기력하다. 무기력한 세대는 몸을 움직이거나 사람과 싸우지 않는다. 다만 손가락을 움직일 뿐이다.
답답하다고, 해결책을 제시한답시고 옆에서 시끄럽게 하기보다는,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이 시기가 지나간다는 사실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가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조용한 방이다.
11. 보배의 키워드 - "다감해지고 싶어요.(感,敢)"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건, 그리고 그것에 뒤따르는 생각, 감정. 이 모든 것에 감사할 때도 있지만 관찰하고 함께 느끼다 보면 속상하고 아플 때도 잦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많은 것을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고, 공감하고, 생각하고 싶다. 많은 것에 ‘감’사하고, 많은 것에 공‘감’하고 싶은 날들. 거기에 올해는 조금 더 용’감’해지면 어떨까. 언젠가는 나의 문장들이 꼭 필요한 곳에 닿게 되는 날이 있기를 소망한다.
12. 정연의 키워드 - "차츰 해나갈 결심"
내게 작년 최고의 로맨스 영화는 단연코 <헤어질 결심>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인간 사랑의 취약성을 극복할 유일한 방법은 바로 그 사랑의 순간을 동결하고 박제하는 것 뿐이라고 이 작품은 힘주어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헤어짐과 그만둠에도 결심이 필요한 것처럼, 무언가를 새로이 시도할 때도 그 시작은 '결심'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해나갈 결심'에는 한순간의 의지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습관의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단번에'가 아닌 '차츰'의 지혜가 필요하다. 작심삼일을 서른세 번 하면 백일이 되고 그 백일이 서너 번 되면 일 년을 채울 수 있다. 그렇게 올 한 해를 사부작사부작 뭉근하게 채워가고 싶다.
13. 홍수정의 키워드 - “이웃”
코로나 시대, 급격한 경기 변동과 문화 변화로 달라지는 세계를 쫓아가기에도 바쁜 시간을 우리는 견뎠다. 여전히 이 자리에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여겨야 하는 걸까. 지금의 급류는 누구에게나 조금씩 내상을 남겼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지러운 시기일수록 주변에 있는 누군가와의 마주침이 필요할 것이다. 자꾸만 멀미를 일으키는 우리의 손을 잡아줄 그 누군가와의 만남. 가족보다 멀고 연인보다 조금 차갑지만 오래도록 뭉근하게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어떤 무용하고 수상한 연대. '이웃'의 의미를 다시 새길 시점이다. 함께 하는 2023년이 되었으면 한다.
14. 전이서의 키워드 - ‘이제와 삶을 다르게 보게 하는 것’
'이제와 삶을 다르게 본다'는 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것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다. 건축은 삶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런데 돌아보면 꼭 좋은 건축이 아니어도 삶은 존재하고 그안에서 나름의 만족감도 얻으며 살아간다. 흔히 만나는 많은 유형의 건물들안에서 우리는 '내가 이러이러한 건축물 안에서 살고있구나' 라는 인지도 없이 지낸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 거대한 물체가 말이다.
그런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서 사는지가 별 상관없었던 사람도 '내집짓기'를 해보라 하면 그때부터 달라진다. 갑자기 건물이 건축으로 훅 다가오게 된다. 그리고 건축의 인식과 함께 딸려 오는 것이 '자신의 삶'이다. 그것도 '과거, 현재, 미래' 가 한꺼번에 온다. '내집짓기'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영위할 공간과 시간을 그리며, 미래를 실체를 만드는 일이다.
'좋은 건축'의 정의는 '이제와 삶을 다르게 보게 하는 것'이다.
15. 김소라의 키워드 - 흐르는 강물처럼
오래 전 보았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을 통해 낚시 줄을 던지는 모습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느꼈다. 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낚시 줄을 던지는 동작을 끊임없이 해야하듯이 삶도 반복의 연속이며 평범한 일상이 전부다.
사람마다 시기와 환경은 다르지만 각자 반복하는 행위안에서 살고 있는 것 아닐까. 낚시줄을 던지는 반복된 행위가 처음은 서툴지만 연습이 되고 밑거름이 되어 정교한 손기술이 생긴다. 그렇다고 매번 낚시줄을 던질 때마다 고기를 낚는 것은 아니다. 고기를 잡기 위해 낚싯줄을 던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아무 것도 건져올리지 못하는 순간이 많다.
그 어떤 것을 낚지 못하더라도 오늘 낚싯줄을 드리우는 것. 흐르는 강물을 따라 유유히 내 몸을 맡기는 것. 2023년은 유유히 나를 품어 안는 한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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