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제 비행기 그만 타고 싶다.” 닳아서 손잡이가 끊어진 가방을 앞좌석 아래에 쑤셔 넣으며 한숨이 새어 나왔다. 원래의 나라면 이륙 직전 이 시간에 가장 흥분해있었을 것이다. 공항, 비행기, 여행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몹시 설레고 즐거운 나머지 부러 공항까지 와서 점심만 먹고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비행은 달랐다. 비행 전 이민가방 여섯 개에 옷이며 한국 식재료를 꾸려 넣는 일이 힘들어서였는지, 두 번의 경유지에서 환승 시간이 턱 없이 짧아 마음을 졸여야 해서였는지 모르겠다. 그 지친 마음은, 잠비아에 돌아온 뒤에도 도무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자주 장을 보러 가는 농산물 시장이 있다. 아침 일찍 가면 중국인이 운영하는 상점에서 두부를 살 수 있다. 두부를 사 온 날이면 아이들은 ‘와~’ 하고 탄성을 지르며 두부 부침, 순두부찌개 같은 평소 먹고 싶었던 두부 요리를 읊어댔다. 시장에 올 때마다 의례처럼 모퉁이의 두부 가게까지 가서 두부가 남아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이날도 그랬다. 시장에 나온 김에 두부 가게로 갔다. 하지만 그동안 두부를 구할 수 있다는 기쁨에 가려져 있던, 두부를 담은 통이 보였다. 두부 몇 모가 둥둥 떠 있는 양동이 둘레를 따라 때가 거무죽죽하게 엉겨 붙어 있었다. 과연 두부를 만든 손이 깨끗했는지, 더운 날씨 속에서 이곳까지 신선하게 왔는지 영원히 알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두부가 남아있는 것을 보고도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마음이 변했군.’ 시장을 나오면서 내게 말했다. ‘향수병인가.’ 그렇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보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한 마음이 컸다. 내가 사랑했던 일도, 산책도, 점심 약속 같은 것도 모두 귀찮게 느껴졌다. 예전 같으면 옆 동네 친한 이웃에게 먼저 연락해서 만나자고 했을 텐데 그도 하지 않았다. 괜히 울적해져서는 ‘왜 이렇게 마음이 무겁지’하고 뱉으면 영문 모를 눈물이 따라 흘렀다. 당황스러웠다.
다행스럽게도 밥을 차려내고 설거지를 하고 싱크대를 닦는 사이에는 울적한 마음이 찾아들 새가 없다. 회사 일로 동료와 긴 회의를 하다 보면 잠시나마 무거운 감정의 이불에서 빠져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일상의 여백으로 건너오면 또다시 마음은 묻는 거 같았다. ‘이 감정 어쩔 거야?’ 부유하듯 떠다니는 감정에 등 돌리기를 잠시 멈추고, 그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있었다.
분명한 답안이 나와 있는 사지선다형의 문제는 아니었다. 피곤한 몸에 있는 것 같고, 험난했던 비행 스케줄에 있는 것 같다. 그 모든 것에 슬픔에 기여한 것은 맞을 것이다. 하지만 애써 균형을 잡고 있던 감정의 돌탑을 와르르 무너뜨리게 만든 어떤 묵직한 것이 있을 것이다. 청진기를 대고 가장 잡음이 나는 곳을 찾는 것처럼, 가장 강렬하게 ‘여기가 아프다’고 말하는 외치는 곳을 더듬더듬 살펴봐야 한다. 혼자 일기를 써보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도 꽤 도움이 된다.
며칠을 더 미루다 친구에게 겨우 이야기를 꺼냈다. 얽힌 마음을 조금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두 바늘을 쥐고 뜨개질을 하듯 친구가 만들어놓은 코에 하나씩 발을 들이밀어 보았다. 친구의 ‘이런 마음인가?’와 같은 조심스러운 추측,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경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나도 같이 들어가 마음을 담가보았다. 그러다가 딱, 코가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리움. 친구가 그리움에 힘겨웠던 경험을 들려줄 때 가장 안도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서야 떠올랐다. 이번 한국행에서는 유난히 친구들과 있는 시간이 좋았었다. 이들의 표정을 보고 온기를 느끼며 이야기한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이었던가. 잃어버렸던 감각을 뒤늦게 되찾은 것처럼 설렜었다.
친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언어로 보냈던 밀도 있는 시간을 나는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리움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너였구나’, 하고 주목해 주자 가리고 있던 부연 베일을 벗고 걸어 나왔다. 그 아늑한 친밀감을 당분간 갖지 못한다는 것에 마음이 묶여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슬픔’이 찾아왔던 것이었다. 울적한 마음을 어떻게든 밀어내려 했던 나에게 슬픔은 ‘여기 중요한 마음이 있어, 봐봐.’ 하고 끈덕지게, 그리고 친절히 비춰주고 있었다.
보통 슬픈 감정이 들면 당황한 마음부터 든다. ‘불쾌’한 감각을 주기 때문이다. 통증과 같은 불쾌한 감각을 좋아하기는 힘들다. 더구나 종종 자책과 후회, 원망 같은 감정과 섞여 나오기 쉽기 때문에 더더욱 마주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슬픔을 받아들이기로 용기를 낸다면, 슬픔이 들려주는 불편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전해 들을 수 있다.
슬픔의 이유를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그려준 영화가 있다. <인사이드 아웃> 주인공 라일리의 머릿속에는 핵심 감정인 기쁨, 슬픔, 소심, 까칠, 버럭이가 있다. 기쁨이가 보기에 슬픔이는 라일리의 행복을 방해만 하는 천덕꾸러기다. 슬픔이는 라일리를 울려버리고, 기억 구슬에 손을 대어 행복했던 기억조차 슬픈 기억으로 변해버리게 만든다.
라일리에게 가장 소중한 기억은 ‘옛 동네에서의 기억’이다. 기쁨이는 이를 슬픔이에게서 지켜내려 애쓴다. 그럴수록 라일리는 점점 자기 자신에게서, 그리고 타인들로부터 고립되어 갈 뿐이다. 슬픔이가 다시 돌아와 그 기억 구슬을 슬프게 물들이자, 그제야 라일리는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눈물을 터뜨린다. 밀어내고 싶었던 슬픔을 핵심 감정으로 초대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선명하게 보게 된다.
슬프다는 것은 상실을 아파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소중한 무언가를 더 이상 갖지 못하게 되었거나 잃어버렸을 때 슬픈 마음이 든다. 상실감을 모른 체하고 지나간다면 계속 발목을 잡는다. ‘나 여기에 있어, 좀 봐줘’ 하고 마음을 흔들어댄다. 이러한 감정을 누르다 보면 기쁨을 주었던 감정까지 시들해져 무기력하게 가라앉아 버린다. 슬픔을 밀어내자 라일리가 기쁨, 분노, 불안과 같은 어떠한 감정과도 접촉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회복의 여정은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 감정이 가리키는 것을 바라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슬픔을 초대하는 것은 그렇게 회복으로 가는 길 위에 있다. 벗어나려 애쓰기보다 슬픔이 ‘너에게 지금 이토록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있어’라고 친절하게 일러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만 혼자 감당하기 힘든 슬픔은 심리상담사와 같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저녁에 식탁에 둘러앉는데 밥상을 차리던 남편이 문득 말했다. “나중이 되면 이 순간이 너무 그리울 거 같지 않아? 우리 가족이 저녁마다 같이 모여서 맛있는 걸 해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이때가.” “응? 갑자기?” 큰아이가 싱거운 소리라며 피식 웃었다. 미처 깊게 생각해 보지 못한 미래였다. ‘아이들이 떠난 뒤 더 이상 네 식구가 모여앉을 수 없을 때가 분명히 올 테지.’ 상상만으로도 아득한 그날이 곧 오기라도 한 것처럼 눈가가 시큰해졌다. 지금 식탁에 둘러앉은 이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기억 구슬로 만들어지고 있는 참이었다. 이 추억 역시 언젠가는 더 이상 가질 수 없음을 슬퍼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늘 슬픔의 가능성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순간이란 반드시 유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순간이 더욱 찬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은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도 상실에 대한 슬픔도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다. 그 끝에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자리 잡고 있다.
나에게 연결감이란 것이 이토록 중요하다는 사실이,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친구의 격려에 용기가 조금씩 나는 것 같았다. 잠비아에 돌아온 뒤로 보지 못했던 이웃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 글쓴이_이지안
여전히 마음 공부가 가장 어려운 심리학자입니다. <나를 돌보는 다정한 시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를 공저로 출간하였고, 심리학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며 상담을 합니다.
캄캄한 마음 속을 헤맬 때 심리학이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심리학을 통과하며 성장한 이야기,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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