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과 사랑_사랑의 인문학_정지우

2021.04.27 | 조회 3.64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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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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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은 연애가 시작되는 초반에 사랑을 더 활활 타오르게 만드는 불쏘시개다. 그리고 연애 중반기에 접어들면 사랑의 성격은 달라진다. 화학작용이 변하기 때문이다.”

뇌과학서적인 <도파민형 인간>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보기에 따라서 크게 두 종류의 화학물질이 존재한다. 하나는 기대감 분자라고 할 수 있는, 즉 미래 지향적인 화학물질인 도파민이다. 다른 하나는 현재지향적 화학물질들로서 세로토닌, 옥시토신, 엔도르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 또한 이 두 종류의 화학물질의 지배를 받는다. 연애 초기에 서로는 서로에게 미래다. 상대는 아직 탐험하지 않은 모험지대이고, 계속 더 알고 싶고, 달려가고 싶은 기대감의 영역에 속해 있다. 그래서 사랑의 초기에 두 연인은 불타오르면서 서로를 향해 달려간다. 아무리 같이 있어도, 더 서로에게 접근하고 싶고, 서로를 더 알고 싶다. 함께 있어도 당신이 그립다. 도파민의 지배 아래에서, 당신은 나에게 끝없는 미래이고 기대감의 대상이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열망한다.

도판민은 인생에서 무언가 미래의 성취를 위한 몰입과 대개 깊은 관련을 맺는다. 법조인이 되기 위해 고시공부에 몰두하거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연습을 하거나, 사업에서 성공하거나 예술적으로 큰 성취를 거두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계획하는 일들을 떠받치는 것이 도파민이다. 도파민은 미래에 어떤 불확실한 기적 혹은 쾌감 같은 것이 주어지리라 믿으면서, 사람을 열정적인 몰입 상태에 빠져들게 하고, 끝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도파민에 사로잡힌 사람은 계속하여 미래를 상상하며 열정을 다바쳐 현재를 갈아넣고 욕망하는 인간의 전형으로 끊임없이 욕망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렇게 도파민이 활동할 때는 현재지향적 화학물질들이 대부분의 경우 활동을 멈춘다. 다시 말해, 기대감을 통해 받는 기쁨이 도파민이 하는 일이라면, 지금 현재에서 실질적인 감각과 감정 자체로부터 받는 기쁨이 현재지향적 화학물질들이 하는 일이다. 결국 우리가 미래를 지향하며 열정을 불태우고 욕망에 사로잡혀 있을 때, 우리를 현재에서 실질적인 감각들로부터 행복하게 만드는 기쁨들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미래의 성공만을 바라며 공부나 연습에 몰두하는 사람에게는, 지금 이 순간 나의 감각들로부터 전해져오는 현실의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도파민의 기쁨은 추상적인 성취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연애 초기의 불타는 듯한 열정은 대개 도파민의 작용이기 때문에, 이 열정은 이후 현재지향적인 화학물질들에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끝없이 그리운 당신, 내가 항상 달려가야 하는 미래, 무엇이든 더 주고, 더 다가가지 못해 안달인 상황은 언젠가 끝이 난다. 그 끝이 나는 순간이란 도파민이 더 이상 분비되지 않는 순간이다. 그때가 되면, 연인은 서로를 향한 접근의 열망혹은 다가감의 열정혹은 서로가 미래인 그리움자체에서 벗어나서, 서로를 현재인 상태로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가 현실로 존재하는 인간이자 감각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비로소 현재지향적인 화학물질들속에서 관계는 어우러지며 사랑이 정착된다.

만약 이런 새로운 관계에 적응하지 못한 채, 끝없이 도파민작용만을 바라게 되면, 둘 사이의 관계는 삐걱거릴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서로가 처음처럼 서로를 열망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마다, 사랑이 끝나간다며 좌절감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그런 도파민 작용을 다시 부추겨보고자 더 화려하고 이색적인 이벤트를 계속 준비하거나, 일부러 연락을 끊어서 안달나게 만들기도 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을 찾아다니게 될 수 있다. 계속 서로의 관계를 도파민 구조 속에 넣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영원히 이어질 수는 없다.

결국 연인은 어느 시점부터는, 서로를 현재이자 현실로서 인정해야 한다. 이적의 노래 <하늘을 달리다>처럼 마른 하늘을 달려서로에게 끝없이 달려가기 보다는, <다행이다>처럼 서로의 머리결을 만지고서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안도감과 은은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당신이라는 존재가 어떤 성취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여기 존재하는 오늘이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단계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을 상상하고, 이상화하고, 이상적인 사람이라 숭배하고, 그래서 열렬히 당신을 찾는 것은 도파민의 일이고, 그런 일은 끝난다. 반대로, 당신이 오늘의 일부이고, 현실의 한 조각이며, 나와 함께 이 감각적인 현재를 이루는 사람이라 느껴질 때, 비로소 도파민의 지배에서 벗어난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도파민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삶을 살 수는 없다.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이고, 무언가를 추구하도록 태어났다. 그러면 그때부터 두 사람은 함께 무언가를 지향하면 될 것이다. 내 안에 솟구치는 도파민이 향할 곳을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가면 될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살고 싶은 집에 대한 것이든, 두 사람이 함께 이루고 싶은 삶에 대한 것이든, 그들은 함께 상상하며, 그 어떤 상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화학물질을 이용하거나 속일 수 있다면, 사랑이 식었거나 권태라고 느꼈던 나날들이 오히려 진정하게 이어갈 수 있는, 오랜 사랑의 나날들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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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인문학' 글쓴이 - 정지우

작가 겸 문화평론가로 활동하며, <청춘인문학>,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등을 썼습니다.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쓰면서 더 잘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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