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어느 날,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내가 작가도 아니고, 딱히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이런 제안을 받게 되니 뭔지 모를 민망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내가 뭐라고 책을 써? 물론 편집자라고 책을 내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서점엔 날고 기는 출판편집자들이 쓴 좋은 에세이들이 차고 넘친다. 내가 가진 것만 해도 몇 권이다. 그런데 내가 무슨 말빨(?)로 여기에 한 권을 보탠단 말인가.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 마음이 동했던 건 사실이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마음이다. ‘내가 뭐라고 책을 써?’라는 마음 한편으로는, ‘그러니 누가 내준다고 할 때 한번 내볼까?’라는 마음이 자꾸 부딪친다. 나는 책이라는 것이 독자에게 가닿아 어떤 도움을 줘야 한다는 믿음과, 살아 생전 내 이름으로 책 같은 물건을 한번 내보고 싶은 자아실현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아아, 도대체 내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책이 될 물건인가 싶으면서도 말이다.
나를 이렇게 고뇌에 휩싸이게 만든 것은 출판평론가 S선생님이다. 선생님과는 내가 마지막 회사에서 만든 책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정지우)에 추천사를 써주신 인연으로 알게 되었는데, 그는 이후로 내 SNS를 팔로우하면서 재미있게 보고 계시다고 했다. 어느 날은 문득 연락을 하셔서 선생님과 우리 집의 중간 지점에서 만난 적이 있다. 아주 유쾌한 분이었는데, 무엇보다 나를 과대평가(?)하시는 것이 한편으론 부담스러우면서도 기분이 꽤 좋았다. 아아, SNS에서 떠들기를 잘했다. 나의 ‘있어빌리티’가 먹힌 건가….
선생님은 출판평론가로서 진지하게 내게 말씀하셨다. 출판계에는 스타 편집자가 많이 필요하다. 강의 나가보면 젊은 친구들이 출판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라도 롤모델로 삼을 만한 편집자 이름은 알더라. 그런 게 출판계에 얼마나 큰 자산이냐. 출판계에 그런 스타들이 많아야 한다. 그래야 젊은 친구들이 선뜻 출판계로 올 마음이 생기지. 그래야 출판계가 살아나지. 우리 같은 늙다리들이 아무리 떠들어봤자 누가 듣지도 않는다.
그러시면서 내게 SNS에서 글 쓰고 노는 것을 하던 대로 계속하라고 했다. 내가 책 만드는 얘기, 작가들과 노는 얘기, 출판 동네 얘기들을 풀어놓는 것이 재미있다고 했다. 뭐 다른 주문도 아니고, 하던 대로 SNS에서 놀라고 하시니, 그냥 놀았다. 그런데 덥석 출판사 한 곳을 섭외하시더니 출판사 대표님까지 나의 ‘있어빌리티’에 낚이도록 세뇌의 주사를 놓으셨다. 아아, 이거 이거, 대표님, 대표님? 제 책 내서 쫄딱 망하면 어쩌시려고요? 네? 같은 편집자이자 대표로서 정신 차리게 찬물이라도 한 바가지 부어드려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1년 후(바로 엊그제다), 나는 무려 내 이름이 찍힌 책 20부를 받아들게 된다. 출판사에서 보낸 저자 증정본이다.
편집자 경력 16년, 책을 100권을 넘게 만들었는데도 내가 쓴 책은 처음이다. 처음으로 ‘저자 경험’이란 것을 해보았고, 처음으로 ‘저자의 마음’이랄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게 책이 될까, 이 책을 누가 읽어줄까, 써놓고 욕을 먹지나 않을까… 실은 그런 걱정은 편집자보단 저자의 마음을 훨씬 더 깊이 잠식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제 알았다. 책을 낸다는 것이 이렇게 살 떨리는 일임을 편집자로서 책을 펴낼 때는 미처 몰랐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쓴 글은 아니지만, 책을 만드는 사람의 보이지 않는 작업이 조금이나마 눈에 띈다면 이 사소한 책은 소임을 다한 것이 아닌가 싶다. 책을 내게 되면서 얻은 게 있다면 이것이다. 나도 몰랐던 내 직업의 본질을 곱씹어볼 기회가 되었다. 책은 제품이지만 하나의 인격이기도 하다. 기계가 아니라 사람을, 저자의 마음을 움직여 글이라는 실을 뽑아내고 책이라는 상품으로 엮어낸다. 책을 만들면서 신기하게도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숱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저자를, 그다음엔 독자를, 그리고 나의 동료들을, 그리고 나 자신을. 편집자는 글을 다루는 사람이지만 결국엔 사람을 다루는 사람이라는 것이 편집자에 대한 나의 정의가 되었다. 이 책에 못다 한 말이 있다면 그 사람들에 대한 감사다. 《편집자의 사생활》이란 제목으로 책을 내게 되면서 〈세상의 모든 문화〉를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도 이 말을 전하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글쓴이 고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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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lady
집에서 보았던 책이네요^^ 글쓰기에는 문외한이라 가족이 사 둔 책을 들춰보지는 못했는데, 오랜 경력을 가지신 편집자의 글쓰기는 어떤지 궁금해지네요. 나의 이름 석자가 찍힌 책이 세상에 나온 것 자체가 의미가 클 것 같아요. 편집자란 '사람을 다루는 사람'이란 표현이 와 닿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화
펜레이디님, 댓글 감사합니다~ 이번에 책 내면서 큰 경험을 했네요. 책 내는 게 이렇게 무서운(!) 일인지 몰랐어요. 두 번은 못할 것 같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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