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그들의 연예인이 되어_김재용

2023.04.01 | 조회 1.15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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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나는 사회복지사지만, 종종 연예인이 된다. 출근하다가, 또는 화장실이나 프로그램 실에 갈 때, 외근 나갈 때 등의 많은 순간에 지나가다 마주칠 때면 그들은 세상 해맑은 미소를 내게 보내며 악수를 청한다. "선생님, 악수! 악수!". 한 명이 악수하자고 달려들면 질세라 너도 나도 줄지어 악수를 요청한다. 처음에는 머쓱함과 동시에 당황하며 쭈뼛쭈뼛 손을 내밀었지만, 이제는 나도 악수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그 순간만큼은 부산국제영화제 레드 카펫을 거니는 연예인이 부럽지 않다. 이처럼 그들의 격한 환대 속에 있다 보면, 추측건대 그 누구라도 연예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일 것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은 종합사회복지관 1층에 있고, 복지관은 장애인주간보호센터를 위탁받아서 운영하고 있다. 장애인주간보호센터마다 이용자들의 장애 유형은 다양하지만, 같은 건물에 있는 센터의 이용자들은 대부분 발달장애를 갖고 있다. 그렇다. 나를 연예인으로 만들어주는 사람들은 발달장애인들이다. 그들 중 몇몇은 나를 보면 먼저 환하게 웃는다. 우리는 서로 인사 나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내가 특별히 잘해준 것도 없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지만, 그들은 언제나 나를 사회복지사 선생님으로서 존중해 준다. 나도 그들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같은 사람으로서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면밀하게 따져보면, 오로지 존중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복지관 화장실을 이용하다 보면 발달장애인이랑 같이 있을 때가 있는데, 처음에는 웃지 못할 망상도 했었다. '만약 내가 소변을 보는 도중에, 그들이 뒤에서 공격적 행동을 보인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공격에 맞대응하여 그를 제압해야 하는가, 최대한 멀리 도망간 뒤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가, 나는 사회복지사이므로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컨트롤해야 하는가. 소변을 보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끝없는 망상들을 펼치면서 온몸에 긴장을 풀지 않은 채 화장실에서 나왔다. 역시나 아무 일도 없었지만, 그들을 향한 두려움은 내 몸을 지배했다. 사실은 두려움이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내가 그들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발달장애인에 대해서 이미 부정적 인식, 즉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언컨대 이전의 경험을 통해 쌓인 부정적 인식이 아니었다. 그저 언제부터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었다.

직장을 옮기며 이 사무실로 출근하게 되면서 그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내 마음은 그들에게 열려있지 않았다. 닫혀 있었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정확할 것이다. 종종 연예인으로 활동하는 지금 현재도 활짝 열려있다고 말은 못 하지만, 서서히 열리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처음에는 나를 향한 그들의 환대와 관심이 부담스러웠고, 말과 행동이 예측 불가능하다 생각했고, 막연하게 무서웠고 두려웠다. 그렇다면 '내게 발달장애인은 언제부터 두려운 존재였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특정한 시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보기로 했다. '그들에게 왜 내가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을까?'. 현실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그들에게 도대체 왜 내가 두려움 같은 부정적 선입견을 가졌을지를 고민해 본다. 일타강사들은 질문에 답이 있다고 말한다. 답은 거기에 있었다. 나는 이제껏 그들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장애 인구는 5%, 전체 장애 인구는 10%로 추정된다. 다시 말해 내가 하루에 만나는 100명 중에 적어도 5명은 장애인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내 삶에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와 같은 시공간에 살고 있지만, 그들은 지역사회 곳곳에 숨어 살고 있다. 숨어 살고 있다는 표현이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활하는 일상에서 그들은 이상하리만치 눈에 띄지 않는다. 장담하건대, 일부러 찾아 나서지 않는다면 그들을 주변에서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발달장애는 '자폐성 장애와 지적 장애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운동이나 언어, 인지, 사회성 등의 발달에 장애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언어 사용이나 사회화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회성이 발달장애를 진단하는데 중요하다. 그들은 대체로 주간보호센터와 같은 이용시설로 등원하거나, 거주시설에서 생활하거나, 가족과 함께 하루를 보낸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영화관과 같은 문화시설, 내 소울 푸드 돼지국밥집과 같은 식당, 누구나 쉬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 그 어느 곳에서도 그들을 마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껏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가 그들의 사회성 부족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정답은 아닌듯하다. 나도 때로는 주위에서 '사회 부적응자'냐며 놀림받는 경우도 있다. 융통성 있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을 굳이 얼굴 붉히며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시공간을 공유하는데 제약이 없고, 숨어 살고 있지 않다. 위의 질문이 틀린 또 다른 이유는 사회성 발달 장애로 진단되지 않는 지체장애인에 대한 편견 또한 내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명제가 잘못되었다. 다시 질문한다.

'그들은 왜 내 세상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는 아닐까?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한 번쯤은 길에서라도 마주친 적이 있었을 텐데, 간단한 대화나 그 흔한 인사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과 이야기 나누고 인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길을 묻는다거나, 새로운 사람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내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와 대화가 즐거운 경험이라 생각하는 내게, 전무하다는 것은 이상함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소통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싶지 않을 때, 가장 쉬운 방법은 단절하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에 대해 관심이 없었으니,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을 리 없다. 그들과 소통하고 관계하는 것이 익숙지 않아서, 아마 나는 눈을 가리고 귀를 닫았던 것 같다. 다분히 의도적이지는 않았겠지만, 내 삶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차단했고 함께 지역사회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으로서 그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억지로 배제하고 관계를 단절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차별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게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극적 대응인 방치 또한 상대에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

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장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받아들였고, 이로 인해 그들을 향한 두려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관계하지 않고 단절해서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해서 또 관계하지 않았다.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했다. 먼저 내가 다가갔어야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들이 먼저 다가왔고, 나는 사회복지사로서 관계했다. '장애인 복지론'이나 '사회복지 실천 기술론'에 나왔던 것을 활용했다. 사회복지사는 그의 입장에서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선택지를 제안하고, 그들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고, 특별한 대상으로 여기지 않아 일방적인 관계 만들지 않는 것 등에 중점을 두고 관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그들과 마주치는 순간에 인사 말고 다른 대화를 나눌 때도 있다. 물론 모든 발달장애인과 인사 나누며 간단히 안부를 묻고 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장애의 정도나 유형, 대화할 당시 감정에 따라 대화 영역이 넓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날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현재 느끼는 감정, 오늘 센터 프로그램 일정과 같은 일상을 소통한다. 나는 더 이상 귀 닫고 눈을 가리지 않는다. 눈을 뜨고 제대로 마주하니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지 두렵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 상호작용의 대상으로서 말이다.

'나는 도대체 왜 그토록 쓸데없는 편견들을 갖고 있었지?'. 관계함과 동시에 편견이 점차 걷히면서 두려움과 공포 뒤에 숨겨져 있던 해맑은 웃음과 나를 대하는 진실한 마음, 스스로를 꾸밈없이 표현하는 행동들이 있었다. 쓸데없는 편견은 지레 겁먹고 관계하지 않았던 내게 숨어 있었다. 이제껏 이 치부를 들춰볼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비록 엄청난 유명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복지관 안에서 그들의 손을 잡고 함께 웃으며 연예인이 된다. 나아가 나와 그들은 온전히 같은 시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 글쓴이 - 김재용(움직이는 사람, 움직이게 하는 사람)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글 쓰기를 통해 더 큰 사회 변화를 꿈 꾸고 있습니다.

글 쓰는 곳 https://brunch.co.kr/@j-dragon91

인스타그램 : j_dragon91( https://instagram.com/j_dragon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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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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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enl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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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ver 1 year 전

    저 역시 나와 다른 사람을 저도 모르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일터에서 많은 고민하시는 재용님 같은 분들이 계셔서 그 분들도 더 행복해지시는 것 같습니다. 일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보람을 느끼는 것이 삶을 풍성하게 한다는 생각도 드네요. 연예인이자 선생님으로서의 재용님의 삶을 응원합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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