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끊고 잠시 고민을 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SNS 친구이자 고등학교 선생님이었고, 진로 특강에 대한 의뢰였다. 대상은 바리스타가 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었다. 학교가 카페와 다소 떨어진 것이 신경 쓰는 것보다는, 카페에서 자리를 비우기 위해서는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봄이 되면서 모든 문을 활짝 열고 영업하기 시작했고, 카페가 다시 바빠졌기 때문이다. 출근했을 때 피곤이 묻어나는 얼굴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비수기 시즌이라면 흔쾌히 가겠노라 이야기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을 해도 내가 가서 주절거리는 시간이 직원의 휴식을 뛰어넘는 가치를 가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몫의 일을 하지 않으면 그만큼의 피로가 직원들에게 전가될 것이 뻔했다. 일한 만큼 더 받는 수당이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만, 피로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떠올리게 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 일터에서 소진되는 느낌을 받고, 또 더 괜찮은 일터나 더 큰 목표를 떠올리게 된다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 좋은 일이다. 나에게는 서글픈 일이지만, 그들의 인생에서는 좋은 자극일 수도 있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든다.
카페 상호가 <좋아서 하는 카페>이기 때문에, 일이 좋아서 하는 것이 되길 바라며 오는 직원들이 제법 있다. 하지만, 일이라는 것이 단순한 노동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꼭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보다는 일터에서 보내는 동안, 집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가 나를 얼마큼 바라볼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너무 바쁘기만 하다면 많은 돈을 벌어도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소비밖에 없기 때문에 서글픈 일이다. 노동과 휴식의 파도 속에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조금씩 필요하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높낮이를 찾아가는 것이 큰돈을 벌지 못하는 보통 사람의 삶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몇 해 전에 창원에 있는 도서관에서 비슷한 강의에 초청되어서 한두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다. 그때는 한가한 시즌이었고, 무엇보다 학생들 앞에서 서서 무엇이든 말하고 싶었던 꿈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흔쾌히 강의를 수락했었다. 거기서 수능 점수에 맞춰서 사범대에 들어간 이야기, 교사의 꿈을 오래도록 버리지 못했던 이야기,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서 카페 이름 앞에 아내의 이름을 숨겼던 이야기를 했었다.
내가 어설프게 찾은 의미를 때로는 의연한 듯, 때로는 숨기지 못하고 장황하게 말했었다. 무심했던 눈빛이 조금은 반짝이는 듯한 눈빛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바리스타란 ‘바’른 마음을 가져야 하고, ‘리’부팅할 줄 알아야 하며, ‘스’스로 존경해야 하고,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고 말을 했었다. 그렇게 학생들에게 바리스타라는 직업관을심어주려고 노력했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괜한 소리를 하고 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왜냐하면, 어떤 책에서 읽은 것처럼 노동이란 어쩌면 밥과 비슷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꼭꼭 씹어서 잘 소화할 수 있고 내 욕망을 충족할 만큼의 돈이 된다면 그것이 어떤 일이든 상관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만, 교사라는 밥, 바리스타라는 밥, 연구원이라는 밥이 있을 뿐이다. 갑자기 연구원이 왜 나왔느냐면, 함께 일하는 윤영의 꿈이 제약 회사 연구원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꿈을 지난 주말에 들었다. 벚꽃이 만개한 어떤 날, 가게가 너무 바빠서 오랜만에 쉬는 날 출근했었다. 오랜 시간 동안 고생한 성민을 조퇴시키고, 흘러나오는 재즈에 몸을 맡기고 윤영과 두 시간 정도 일을 했었다. 비번인 날 일을 해서 아내와 두딸에게 조금은 미안했지만, 윤영의 꿈을 들었으므로 그것을 대신하기로 했다. 그녀는 연구원을 꿈꾸며, 주중에는 학교에다니고, 주말에는 카페에 나와서 일을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움직이면서 이 공간이 그녀에게 득이 될까, 실이 될까생각했었다. 함께 커피를 만들면서 그녀가 함께 보내고 있는 이 시간이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다시 주중이 되었고, 내 몫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벚꽃이 떨어지니 조금씩 손님이 줄어드는 것이 눈에 보였다. 매달려있는 꽃잎만큼 매출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런 흐름이 썩 자연스럽고 마음에 들었다. 오늘도 떨어진 꽃잎처럼 무심한 듯 표정의 손님들이 들어왔었다. 누군지 잘 모르거나 조금은 그 사정을 아는 사람들. 그들이 커피 몇 모금씩 나누어 마시며 풍경을 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시며 조금씩 눈에 빛이 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나는 보지 않는 척 그것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들은 밥을 먹고 소화하기 위해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삶을 소화하기 위해서 커피를 마시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부족하지만, 우리 카페를 찾는 것도 어쩌면 이곳의 풍경이 좋아서가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행위가 쉬는 것이기 때문이지 싶었다. 마시면 다시 뛸 수 있고 틈이 보이니까. 나를 돌아볼 수 있을까, 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시간을 들여서 그리고 돈을 들여서 이곳에 오는 그들의 삶이 조금씩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벚꽃은 시들어 낙화했지만, 각자가 각자의 것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싶었다. 더불어 나의 삶도 직원의 삶도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오늘도 무심히 흐르는 재즈를 들으며 커피를 내렸다. 떨어지는 꽃잎을 시간이라 여기며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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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김해에서 작은 카페를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 이 년 동안 에세이를 연재했고, 지금도 틈이 있으면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무엇을 구매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작은 의미를 찾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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