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의 탈출, 새로운 방으로 들어서기
우리는 불가능하다고 느낄 때 기도한다. 사실, 그보다는 조그만 가능성이라도 보았을 때 기도한다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불가능적 가능성’이라는 주제를 보고 처음에는 역설적인 두 단어가 함께 있어 직관적인 이해가 어려웠다. 하지만 점차 미래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어쩌면 가능한 것들을 바라고 희망하며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가능적 가능성은 창조적이고 발전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말이다. 단순한 가능성보다 더욱 크게 버텨내는 힘을 가지고 마침내는 갇혀있는 틀을 부수고 가능성으로 나아간다. 코로나 상황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 속에서 고립을 탈출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연결을 꾀했던 세계가 그러한 것이다. ‘서울 국제 작가 축제’에 참석하기 힘든, 그저 글쓰기를 좋아하는 ‘지방러(지방-er)’로서 온라인으로 지구 반대편의 콜롬비아 작가의 가치관을 깊게 이해하게 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적 가능성의 발현이라 생각한다.
평소 다양한 생각과 문화들을 알아가는 것은 큰 즐거움이라 여행도 가고, 책도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이지만, 콜롬비아 문학은 읽은 적이 없었다. 이런 기회로 콜롬비아 작가의 문학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듣고, 깊은 공감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잘 모르는 콜롬비아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고 싶어서 퇴근 후 콜롬비아 핸드드립 커피를 파는 카페를 찾았다. 콜롬비아 커피를 마시며 새로운 문을 열 듯 <작가의 방: 불가능적 가능성> 인터뷰 안으로 들어섰다.
산티아고 감보아, 작가로서의 삶
인터뷰에는 콜롬비아 출신 산티아고 감보아 작가와 그의 대표작인 「밤 기도」 번역을 맡은 송병선 번역가, 그리고 사회자 허희 문학평론가가 참여했다. 온라인으로 참석한 산티아고 감보아 작가는 1965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태어났다. 소설을 쓰는 동시에 기자,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했다. 그는 ‘여행과 문학을 통해 세상을 이야기하는 작가’라고 불린다. 실제로 방콕, 테헤란 등 다양한 곳을 여행했고, 이런 자신의 삶으로 작품을 썼다. 인터뷰는 사회자가 질문을 하고 작가와 번역가가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카페에 진열된 다양한 디저트처럼 생각보다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나눈다.
처음에는 산티아고 감보아 작가가 자연스럽게 작가로 성장한 과정을 짚어본다. 인문학과 예술을 가르치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일상생활에서 책을 항상 가까이하며 미학과 사상을 접하던 감보아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이탈리아에 짧게 거주했던 일, 마드리드로 떠났던 첫 여행까지 작가로서 성장하게 된 배경을 꽤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는 도서관만큼이나 책이 많았던 집에서 글을 읽기 전부터 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에 살았다. 책 속의 삶을 경험하고서는 문학의 우주, 미학의 우주가 현실 세계보다 훨씬 깊고 아름답다고 느꼈으며 환상적인 문학의 세계를 벗어나지 않겠다 다짐했다. 어릴 때부터 문학을 마치 종교와 같이 경외하고 사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도 오랜 사유가 담긴 답변에서 문학에 대한 애정을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남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 「밤 기도」
이어 한국에 2019년도에 번역되어 출간된 감보아 작가의 「밤 기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릴 적 그는 좋아하던 작가들의 작품세계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상상해 적곤 했다. 필사에서 조금 벗어난 수준의 창작을 하던 그는, 독자로서 가장 읽고 싶은 그래서 본인만 쓸 수 있는 작품을 적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하여 가장 고전적인 주제인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하지만 이는 이성적인 사랑이 아닌 남매의 사랑이다. 이 지점에서 호기심이 생겼다. 나도 일상 중에 다양한 종류의 사랑을 느끼고 있지만, 그중 자매에게 느끼는 사랑이 유독 지속적이고 크고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밤 기도」라는 책을 찾아보았고, 이런 사랑의 이야기를 가장 쓰고 싶었던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밤 기도」는 누나의 방랑과 여행, 이를 쫓는 동생의 탐문 이야기이다. 즉, 미학적으로 그리고 문학적으로 보편적인 요소가 되는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싶어하는 열망’을 그린 작품이다. 단절과 이별을 일으키는 사회의 비극이 콜롬비아에 있었다고 한다. 사회의 폭력과 몰이해의 바다속에서 자식을 유기했다고 표현하며 인도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던 작가의 삶 속의 기억과 추억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다. 이는 인터뷰의 ‘불가능적 가능성’이라는 주제와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흘러가는 대로 살면 여러 종류의 풍파에 휩쓸리고는 한다. 특히 사회 전반적으로 닥친 재난과 위험 속에서는 어둠 속의 빛처럼 불가능적 가능성의 에너지를 믿어야 한다. 빛보다 빠른 것은 그림자이다. 가만히 있다가는 그림자 속에 잠기기 쉽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에너지로 그림자를 밝히며 본질을 잃지 않고 그 너머를 꿈꾸고 희망하면서 인생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지키고 찾아낼 수 있다. 신들도 잠이 든 것 같은 깊은 밤 중에 하는 기도처럼 말이다.
외모부터 가치관까지 참 많이 비슷한 동생과 나는 서로의 소중함이 느껴질 때면, 우리가 자매가 아닌 다른 인연으로 만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고 이야기한다. 부모, 친구, 연인이 아닌 자매로 만난 우리는 서로의 어린 시절부터 추억이 쌓여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끈끈히 묶여있고, 삶의 속도도 비슷하다. 이성 간의 사랑이 질투와 시기, 쾌락 등으로 변질되기 쉬운 시대에 남매간의 사랑은 잔잔하지만 보편적인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화가, 고흐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이 테오였던 것처럼, 이 세상의 마지막까지 서로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나에게는 동생이라고 느낀다. 감보아는 그런 각별한 관계의 소중함을 알고, 콜롬비아의 역사 속에서 풀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번역의 힘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의 큰 흐름인 ‘불가능적 가능성’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여기서 ‘불가능적 가능성’은 언어와 문화의 벽을 허무는 번역의 힘을 이야기한다. 지정학적 한계와 언어, 문화의 특수성이 가지고 있는 소통의 불가능을 번역가는 가능하게 만든다. 그래서 산티아고 감보아는 번역가를 자신이 읽은 내용을 재창조하는 위대한 작가이자 훌륭한 독자라고 표현한다. 번역가는 사회, 문화, 심리적으로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쓰인 작품을 자신의 문화로 옮겨 놓는다. 심지어 심미적으로 동떨어진 맥락에서 쓰인 작품을 재창조한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일로 바꾸는 데에는 강한 상상력과 단단한 내면의 힘이 필요하다.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마블의 데드풀이라는 작품을 번역한 황석희 번역가의 고충을 본 적이 있다. 미국 특유의 유머 감각과 언어유희를 한국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창조적인 일인가 생각하다 보니 내가 다 머리가 아팠던 것 같다. 직역과 의역을 넘나드는 센스를 발휘하는 번역가들은 그들만의 예술적인 작업을 한다. 번역가의 이런 작업이 일종의 재창작이라 ‘번역문학’이라고 칭해지기도 한다. 산티아고 감보아 작가는 지구 반대편에서도 작가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해준 송병선 번역가에게 감사를 표한다. 번역가가 없었다면, 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언어를 익히지 않는 한 작품은 지역적으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문화는 번역가를 통해 진정한 보편성을 가지게 되었다.
작가의 검은 상자 속 돌, 문학적 재능
인심 좋은 카페 주인이 서비스로 준 레몬 마들렌을 뒤늦게 발견한 것처럼 ‘서울 국제 작가 축제’의 생각지도 않은 값진 선물이 하나 더 있었다. 축제 참가 작가들이 적은 에세이였는데, 산티아고 감보아 작가의 에세이도 있었다.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 너머 이야기였다. 인터뷰에서는 말하지 않았던, 작가의 사명에 대한 철학을 알 수 있었다. ‘문학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이미 글쓰기를 하는 것’이라는 그의 문장에 따르면 작가는 생각이라는 원석을 발굴하여 다듬는 보석 세공사이다. 바로 부서지고 사라져버리는 반짝이는 생각들을 붙들어 두는 잉크와 종이는 작가를 최초의 작가로 실존하게 한다.
그는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문학을 깊이 있게 알 필요가 없고, 재능이 필요하다고 한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 재능이라는 돌이 보관된 검은 상자가 있다고 상상하고 열어본다. 상자 백 개 중, 혹은 천 개 중 하나에 이 재능이라는 돌이 들어있다. 재능은 이처럼 불공평하고 대부분에게는 없을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상자를 열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산티아고 감보아 작가는 대부분 재능이 없으니 포기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빛나는 돌을 가진 경우에 사용하지 않으면 소모되는 것이기에 불확실성을 안고 있는 이 상자를 열어 확인할 용기도 필요하다 말하는 것 같았다. 인터뷰와 에세이를 통해 불가능적 가능성의 문을 열고 소설가와 번역가의 세계를 다녀왔다. 이런 여정은 나와 주변 지인들 안에 존재하는 검은 상자를 함께 찾아 살짝 열어보고 싶어지는 창조적인 탐험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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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서울국제작가축제 뉴스레터는 한국문학번역원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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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고운
매달 15일 세상의 모든 문화 뉴스레터에서 <교실 안의 코끼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 조그만 교실 사회에서도 여러 번 넘어지고 일어서며 성장한다. 그런데 유독 자꾸만 같은 곳에서 넘어져 상처가 되는데, 그곳에 엄청 커다란 코끼리가 멀뚱히 서 있다. 교실 속 코끼리를 아이들과 함께 바라보고 이해하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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