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조기축구회 나가는 아빠, 크로스핏 하는 딸

feat.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

2023.03.12 | 조회 1.48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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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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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바다가 나온다. 누군가에게는 관광지인 이곳이 나에게는 편한 동네라는 점이 맘에 든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바닷가를 풍경 삼아 달리기도 한다. 뛰기 전 15분은 몸에 열을 올리는 데 적당한 시간이다. 일부러 더 힘차게 팔을 움직이면서 달리기를 결심한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느낀다. 기분 좋은 걸음에는 평소에 하지 않던 생각도 종종 떠오른다. 하루는 아빠를 생각했다.

아빠는 유년 시절에 동네에서 축구와 공부 둘 다 잘하는 최고의 인기남이었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다섯 남매의 맏이로 온갖 기대를 독차지하며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어쩔 수없이 공부의 길을 택했다는 게 아빠의 라떼는 말이야이야기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당신 힘으로 세운 회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아직은 내가 초등학생일 때의 어느 주말엔가 아빠는 나를 데리고 동네 조기축구회를 찾아다녔다. 그보다 더 어린 시절에는 온 가족이 공원 한 바퀴를 뛰고 음료수를 사 먹던 기억도 난다. 어떤 날은 아빠가 나만 데리고 공원에 가 함께 뛰자고물론 나는 뛰지 않고 차에서 기다렸지만한 적도 있다. 사춘기가 와서 아빠랑 말하지 않는 시간이 늘어갈 즈음부턴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일요일 새벽, 부엌에서 미숫가루를 물에 타 흔들어 마시고 운동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집을 나서는 아빠의 소리만 듣곤 했다.

이십 대 후반에 독립한 후론 명절에만 부모님을 찾아간다. 딱히 사이가 좋지 않아서라기보다 살갑지 않는 무뚝뚝한 자식이라 그렇다. 그래도 같은 집에 살 때보다 더 가까워지고 더 재미난 얘기를 나눈다. 지인들에겐 확실히 가족은 자주 안 봐야 사이가 좋아지더라.’라며 너스레를 떨지만 서로의 삶을 바깥에서 들여다보는 지금의 관계가 좋다. 그 덕에 아빠와 운동이라는 취미 생활에 관해 얘기할 기회도 생긴다. 내가 먼저 꺼냈는지, 아빠가 먼저 물어봤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크로스핏이라는 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말하며 팔뚝에 힘을 줘 보였다. 크로스핏은 서너 가지 운동을 비교적 짧은 시간을 정해두고 최대한 빠르게, 또 무거운 강도로 시행하는 운동이다. 비록 몸은 힘들지만 체력은 빠르게 늘고 근력도 강해지는 게 가시적으로 보인다. 운동을 끝내고 가쁜 숨을 몰아 내쉴 때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그 어떤 운동도 3개월 넘기지 못했는데 크로스핏은 벌써 8년째 하는 중이다. 크로스핏으로 다져진 내 팔을 만져보던 아빠는 그래, 운동하는 거 맞네.”라고 말했다. 삼남매 중 유일하게 나만이 아빠의 운동하는 유전자를 물려받은 듯해 뿌듯했다.

나는 누가 뭐래도 운동 좋아하는 아빠 밑에서 자랐구나.’ 하는 사실에 아빠와 닮은 유전적 기질들도 덩달아 떠올랐다. 친척들은 아빠와 내가 붕어빵이라고 자주 말했다. 어릴 땐 인정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안다. 고집불통인 성격이나, 눈부터 웃어 버릇 덕에 눈가 주름이 자글거리는 것이나, 허리는 긴데 다리가 짧고 통뼈인 것까지 모두 아빠의 특성을 물려받았다. 엄마와 오빠는 마른 체형이다. 어릴 땐 나도 말랐지만 그건 어린이 한정 상품 같은 것이었다. 남동생도 굳이 말하자면 아빠 쪽이라 내가 부러워한 건 전적으로 오빠였다. 오빠는 예나지금이나 밤에 라면을 두 개씩 끓여먹고 자도 전혀 붓지 않고 언제나 마른 몸매를 유지한다. 지금이야 오빠도 체형 때문에 나름의 고충이 있다는 건 알지만 이른바 멸치 재질인 오빠가 한때 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나는 간혹 수영선수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어깨가 넓은 편이고 두꺼운 허벅지가 미의 기준이 되기 훨씬 전부터 남부럽지 않은 하체를 지녔다. 아빠도 어깨가 떡 벌어지고 전체적으로 다부진 체격이다. 다리가 좀 짧긴 하지만 근육으로 단단해진 다리를 보면 아빠가 얼마나 꾸준히 운동을 했는지 보인다. 축구를 오래 한만큼 신체 중 어디 한 군데 살찐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아빠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조기축구회도 나가지 못하고 운동량이 줄어들어 뱃살이 생겼고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나는 아빠의 그런 모습이 도무지 생경해서 처음으로 아빠가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아빠의 다이어트 소식은 내가 어쩔 수 없는 붕어빵 유전자를 지녔다는 동질감을 넘어 다이어트의 고충을 공유하는 유대감으로 번졌다.

일부러 주의하지 않으면 몸무게가 늘어나는 체형인 나로서는 딱히 주의할 필요가 없는 사람을 보면 괜히 나만 운이 나쁘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그런데 달리는 사람으로도 유명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살찌기 쉬운 체질로 태어났다는 게 도리어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체중이 불지 않으려면 열심히 운동하고 식사를 유의하고 절제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노력하지 않아도 살이 찌지 않는 사람과 달리 골치 아프지만, 따지고 보면 이 지속적인 노력이 결국 늙어서도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키 말마따나 의식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자연히 근육이 약해지고 뼈가 약해져 가는 것이다. 무엇이 공평한가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지 않으면 잘 알 수 없는 법이다(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 2009, 71).”

하루키가 살찌기 쉬운 체질에 관해 장기적인 관점을 제시해준 덕분에 나도 삶의 태도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본다. 그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서른세 살 무렵, 본격적으로 글을 쓰던 때였다.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생활로 바뀌어 줄어든 활동량 때문에 급격하게 살이 쪄서 어쩔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나도 이십 대 후반 독립과 동시에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다시금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먹는 족족 살이 쪘다. 만약 내가 오빠와 같은 멸치 재질이어서 살을 뺄 필요가 없었다면 굳이 운동에까지 관심을 가지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살찌는 체질이 나를 운동으로 이끈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동하는 아빠를 보고 자랐지만 운동을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을 정도로 운동은 내게 귀찮은 일이었다. 운동만큼이나 작심삼일의 대가는 없었는데, 스스로 어찌할 도리 없는 상황에 놓였다는 실질적인 감각이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어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운동의 시작은 몸무게가 더는 늘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을 목표로 한다면 스스로 행복하지 않을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금세 먹는 것의 유혹에 흔들리고 먹었을 때의 죄책감은 운동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지고 그러지 못한다면 자책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체중 감량보다는 체력 증진과 생활 활력에 더 힘을 실기로 했다. 크로스핏은 체력 증진과 생활 활력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는데, 몸무게는 드라마틱하게 변화시켜주진 않았다. 다만 사람들로부터 몸의 탄력이 늘었다 혹은 좋아졌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게다가 근육을 자극하고 근력을 키우자 운동을 더 잘하게 되고 잘하니까 더 재밌어졌다.

운동을 하면서 근육은 계속, 조금씩, 반복해서 더 강하게 무게를 증량하고 몸에 부하를 늘려가야만 성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행을 바랄 수 없다는 점에서 글쓰기와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의 근육은 무척 고지식한 성격의 소유자(위의 책, 113)”이다. 물론 아무리 고지식하게 노력해도 사람은 나이 들어감에 따라 근육량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가끔 언제까지 강력한 파워나 근력이 필요한 크로스핏을 할 수 있을까 상상해본다. 막연하게나마 할머니가 되어도 역기를 들어 올리고 철봉에 매달리고 싶다. 온라인에서 온몸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상체의 근력을 이용해 철봉에서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는 영상을 본 적 있다. 그걸 보며 노화가 아무리 몸의 기능을 떨어뜨려도 꾸준하게 반복해서 단련한다면 몸은 그 보답을 해줄 것이라 믿게 되었다.

꾸준함의 힘을 아는 사람들에겐 존경심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가령 매일 달리기를 하고 글을 쓰는 하루키, 쉬는 날에도 새벽 일찍 조기축구회에 나가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우리 아빠 같은 사람 말이다. 나는 회사 생활을 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사람들이 운동은커녕 취미 생활도 못 누리는 사례를 꽤 봤다. 웬만큼 부지런하지 않으면 일과 여가는 동시에 잡기 어렵다는 데 반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의 부모세대는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우리 아빠도 가정과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으로 부던히 일만 했다. 그런 아빠는 내게 있어 언제나 강한 사람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다부진 체격에서도 그랬고 일과 운동에 열심인 생활에서도 그랬다.

운동을 꾸준하게 하게 되어서 여러 모로 좋다. 몸의 기능을 단련하고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더욱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 그렇고, 함께 살 땐 관심 없던 아빠의 모습을 더 다각적으로 들여다보게 된 점도 미처 몰랐던 운동의 순기능이다. 계속해서 운동하는 사람이고 싶다. 일상에서 꾸준히 함께하는 대상에게그것이 무엇이든 간에반려라는 호칭을 부여한다. 그런 의미에서 크로스핏은 누가 뭐래도 내 반려운동이다. 여기에 달리기를 병행하면 더욱 몸이 좋아질 것 같은데, 생각만큼 달리는 일은 쉽지 않다. 아빠를 떠올리며 달리기를 했던 날로부터 거의 1년이 지났다. 날씨도 점점 풀려오니 조만간 운동화를 신고 바다를 향해 걸어가기로 맘먹는다.

 

 

* 글쓴이 - 이슬기

안녕하세요. 부산에서 1인출판사를 운영하며 글을 쓰는 이슬기입니다.

말보다 글로 표현하는 데 덜 서툴고, 내쫓김의 불안보다 얽매임의 불행이 더 크며, 기분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좀 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 꾸준히 글을 씁니다.

개인 일상 계정 : @picasophia ( https://www.instagram.com/picasoph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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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OD

    0
    almost 2 years 전

    저도 요즘 아빠와 함께 같은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어요. 부모님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하고 소통하는 일은, 유년시절 효도하지 못했던 부족을 채워나가는 느낌입니다. 부모님과 취미를 함께한다는 건 늘 즐거운 일인 것 같네요^^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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