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는 글쓰기의 '효능'에 대해 보여주는 본보기와 같은 면이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주디가 '키다리 아저씨'라는 존재에게 쓰는 편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부모 없이 보육원에서 자란 주디는 어느 날 키다리 아저씨라는 존재의 후원을 받아 대학에 갈 수 있게 된다. 그 때, 키다리 아저씨는 주디에게 한 가지 조건을 내거는데, 자기에게 주기적으로 편지를 써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디는 수시로 키다리 아저씨에게 자기의 일상과 생각에 대해 편지를 보내고, 이 책 <키다리 아저씨>는 바로 그런 편지들로만 채워진 일종의 서간집이다.
그 내용은 단순히 친구들과 나누는 일상에서부터, 삶과 행복에 대한 생각 등 온갖 신변잡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내용들에는 특별한 일관성이랄 게 없다. 그저 그때그때 자기의 생각과 마음을 마음대로 써서 보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일하게 일관적인 것은 '독자'이다. 즉, '키다리 아저씨'라는 독자는 거의 답장도, 대답도 없이 계속 주디의 편지를 받아서 읽는 역할만 한다. 주디는 그 독자를 혼자 상상하면서 계속 글쓰기를 이어간다.
그런데 바로 그 글쓰기가 주디를 치유한다. 어떻게 보면, 주디를 성장시킨다. 주디는 "제가 얼마나 형편없는 아이인지 아시겠죠?"라고 하면서 자기의 치부를 표현하기디도 한다. "제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아시겠죠?" 그 순간, 주디의 그 완벽하지 않음이 그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받아들여진다. 주디의 성장은 혼자만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다. 그것은 그녀를 보아주는 '한 시선'에 의해 이루어진다. "제 공부가 날로 발전하고 있다는 걸 아시겠죠, 아저씨."
한 사람이 성장하는 데는 고독 이전에 타인의 시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그를 바라보며 '기다려줄' 시선이 있어야 한다. 대개 이런 역할은 부모가 하지만, <빨강머리 앤>에서처럼 양부모가 하기도 하고,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서처럼 이웃집 아저씨가 하기도 하며, <키다리 아저씨>에서는 편지를 받아주는 상상 속의 그 누군가가 하기도 한다. 나를 누군가가 보아주고,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준다고 믿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바로 그 '누군가라는 백지'에 나의 서사를 쓸 수 있게 된다.
달리 말하면, 우리의 성장은 우리를 보아준다고 믿는 그 누군가의 '환대'로 인해 이루어진다. 주디는 점점 세상이 자신에게 친절하다고 느끼게 된다. "실은 온 세상을 집처럼 느끼기 시작했답니다." 편지의 중간쯤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전한 주디는, 이후 "이 세상은 행복으로 가득하고 다녀 볼 곳들 천지예요. 가는 길목에서 마주치는 친절을 받아들일 의지만 있다면요."와 같이 세상의 친절에 대한 믿음을 키운다. 그 '세상의 친절'을 믿을 수 있는 가는 길목에 있는 존재가 '키다리 아저씨'였던 셈이다. 그의 시선이 주디를 세상에 열어 놓았다.
나는 글쓰기란, 늘 바로 그런 '열림'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라 믿어왔다. 글쓰기가 자기 폐쇄적인 방에서 벗어나 세상으로의 열림, 나를 환대하는 세상에 대한 믿음으로 이르기 위해서는 '단 한 사람'이면 된다. 그 한 사람이 보아줌으로써, 우리는 그 사람의 시선에 기대어 나의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된다. 신도, 심리 상담사도 100명일 필요는 없다. 글쓰기도, 우리에게는 단 하나의 백지만 있으면 된다. 내가 써서 보낸 편지가 유리병에 담겨 바다를 건너 반대편의 섬에 있는 한 사람에게 닿는다는 믿음이 있으면, 글은 계속 쓰게 된다.
글쓰기에는 타인이라는 생명이 있고, 그 타인과 이어짐이 곧 사람을 살려내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 믿어 왔다. <키다리 아저씨>는 다름 아닌 한 소녀가 글쓰기를 통해 세상으로 나서고, 행복의 비결을 발견하고, 세상의 친절을 알게 되면서 그 속에 자기를 세울 수 있는 힘을 얻는 여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글쓰기가 한 사람을 살리고 이끄는 일에 관해 알고 싶다면, 역시 <키다리 아저씨>를 읽으면 된다(그 다음에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그리고 <사랑을 지키는 법>을 읽어도 좋다).
* 이 글의 인용구는 한유주 역, 허밍버드 출판사의 <키다리 아저씨>에서 인용했다.
* '선한 이야기 읽기' 글쓴이 - 정지우
작가 겸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분야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며, '세상의 모든 문화' 뉴스레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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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진의 개인 사정으로 로에나 변호사의 글 대신 '선한 이야기 읽기' 코너가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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