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생적으로 싸움이 어려운 사람이다. 우선 화가 쉽게 나지 않는 편이고, 얼굴 붉힐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먼저 미안하단 말을 건네는 편이라 큰 싸움으로 갈 일이 잘 없다.
어쩌다 오해가 생겨 상대방이 나에게 버럭 화를 내거나 막말을 쏟아내도 같이 큰소리를 내며 상대를 할퀴는 일은 하지 않는다. 내 인격이 고상하고 성숙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 그런 언어 자체가 입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마구 쏘아댈 수 있지, 어쩌면 저렇게 한마디도 지지 않고 싸울 수 있는 건지 나에겐 그저 신기한 일이다. 험한 말을 들으면 눈물부터 나오는 내게 무례한 상대를 납작하게 눌러줄 비밀병기 같은 언어가 하나쯤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지만 그때뿐이다.
이 나이가 되도록 변변한 싸움의 기술을 장착하지 못한 걸 보니 앞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나를 공격하는이라 할지라도 살아 숨 쉬는 누군가를 향해 독하고 모진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려면 내 감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상태거나 정신 상태가 궤도를 이탈한 상황이어야 한다. 이 말이 얼마나 상대를 아프게 후벼 파는지, 얼마나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는 말인지 알면서 내뱉는다는 건, 내 안에 모든 악의 에너지를 끌어모아 전신이 이글거릴 만큼의 분노로 전환시킨 뒤 상대를 부숴버리겠다는 의지가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너무나 괴롭고 어려운 그 일을 나의 신체는 거부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쉽게 모드가 전환되지 않는다.
살다 보니 알고 지내던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오해나 싸움이 아닌, 일면식도 없는 이들에게서 받는 공격이나 싸움의 순간이 다가오기도 한다. 알고 지내던 관계에서 벌어진 싸움이란 대개 시간이 필요하거나, 만나서 풀 수 있는 정도의 소소한 감정싸움인 반면, 일면식도 없는 이로부터 듣는 무례한 말과 공격은 주로 자신의 가치관이나 관념이 훼손되었다고 느끼는 이들의 분노가 쏘아 올린 것들이다. 이런 싸움은 관계의 회복이나 진실의 확인을 목적으로 두기보다, 상처받은 자신의 분노를 되돌려주며 상대를 파괴하는 것에 목적을 두기에 소모적이고 위험하다.
눈에 드러나는 활동을 하고, 기울어진 부분에 대한 목소리를 내다보니 원치 않아도 누군가의 분노의 대상이 되는 경험을 한다. 자신이 믿어온 가치관과 지키고 싶은 삶이 부정되었다고 믿는 이들, 자신의 신념을 거스르는 상대를 끌어내리고 뭉개버리겠다며 싸움을 걸어오는 이들, 불특정 다수 앞에서 주관적 진실로 각색된 이야기로 선동하고, 그렇게 모은 많은 이들의 분노를 동력으로 상대를 도발하며 덤비라고 큰소리치는 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처음엔 뭣 모르고 진실을 바로잡겠다는 마음 하나로 진흙탕에 몸을 담근 적이 있었다. 이성적으로 대화하면 되겠지, 진심을 전달하면 풀리겠지 싶었던 내 순진한 생각은 보기 좋게 깨어졌다. 분노 모드를 장착한 이들과의 싸움은 진실이 밝혀지며 끝난 것이 아닌, 분노의 대상이 된 이가 쓰러진 후에야 잦아들었다. 사람들에겐 진실이 중요하지 않구나, 애초부터 상대를 파괴하는 것이 목적이구나 라는 사실을 배웠다. 이런 싸움은 시작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교훈만 남았다.
미움을 받는 일은 나이가 들어도 쉽지 않다. 대놓고 싸움을 걸어오는 이들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면 지혜가 필요하다. 변변한 싸움의 기술을 장착하지 못한 나는 늘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은 없을까, 누구도 다치지 않고 결론을 내는 방법은 없는 걸까 골몰하게 된다. 현장에서 여전히 목소리를 내야 하는 사람으로서, 이기는 싸움을 위해 내가 발견한 기술이라곤 분노로 걸어오는 싸움에 말려들지 않는 것, 묵묵히 내 실력을 더 쌓아가는 것, 나의 말과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 내 앞의 사람들과 더 깊이 사랑하며 에너지를 얻는 것, 그래도 억울하고 슬픈 날엔 소리 내어 우는 것 등이다.
사랑하며 살기에도 모자란 인생인데 오해와 미움이 틈을 비집고 들어오거나, 분노와 혐오가 내 삶에 침투할 때면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노골적으로 싸움을 걸어오는 이와 싸우지 않기로 마음먹더라도 일상의 평안을 유지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든다. 요즘처럼 분노가 기본적으로 장착된 사회에서는 아주 작은 일로도 그 방아쇠가 당겨지기도 하므로 매 순간 나 자신을 잘 돌아보려 한다.
나는 싸움이 안되는 사람이다. 싸움의 기술보다 삶의 기술, 사랑의 기술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잘 싸우기보다 성실히 살아내고 열심히 사랑하는 이로 나의 정체성을 가져가자고 마음먹은 사람이니 혹 내가 밉더라도 나와 싸울 생각은 마시라. 싸움의 기술과 의지가 1도 없는, 세상에서 제일 못 싸우는 사람이라고 미리 밝히는 바이다. 오늘도 평안하시길!
* 매달 13일, 23일 ‘마음 가드닝’
글쓴이 - 이설아
<가족의 탄생>,<가족의 온도>를 썼고 얼마 전 <모두의 입양>을 출간했습니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입양가족의 성장과 치유를 돕는 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 대표로 있으며, 가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손에 잡히는 디자인으로 만드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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