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Mindfulness) 명상이 내 삶에 들어온지도 꽤 여러 해가 흘렀다. 특강이나 워크숍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내게 묻는 공통적인 질문이 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호소에 가깝다. “명상을 하면 자꾸 잡생각이 나요.” 혹은 “명상을 하다가 잠들어버렸어요.” 이런 말을 들으면 내가 수강했던 첫 마음챙김 수업이 떠올라 자꾸 빙그레 웃게 된다.
마음챙김 기반의 스트레스 감소(Mindful-Based Stress Reduction: MBSR) 수업을 들을 때였다. 명상센터에서 일하면서 명상이 포함된 강연이나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해왔지만, 진행자로서 행사중 일어나는 갖가지 돌발상황을 처리하느라 바빠 실제로 센터에서 운영하는 명상 프로그램에서 내가 명상에 오롯이 집중하는 경험을 온전히 가져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각종 앱이나 유튜브 영상의 가이드 명상을 시도해 보기는 했지만 학생으로서 수업을 듣게 된 자리에서 처음으로 15분 짜리 바디스캔 명상을 해보았다. 교수가 안내하는대로 자리를 잡고 매트를 깔고 누우면서 긴장감이 나를 찾아왔다. 15분 동안 잠이 들면 어쩌지? 센터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도 이 수업을 같이 가르친다. 내가 여기서 잠든다면? 잠이 들어 코를 골기라도 한다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다. 15분 내내 무엇을 하든 긴장을 늦추면 안되겠다고 다짐하며 바닥에 매트를 깔았다.
수강생 모두가 매트를 펴고 눕자 교수가 명상 인도를 시작했다. 가이드가 귀에 들어오는 순간, 이번에는 의아함이 나를 찾아왔다. 청유형인 Let’s도, 명령형인 동사원형도 아닌 ‘-ing’로 문장이 시작되었다. “Beginning lying down.”이라니, 이건 또 뭐야,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그렇게 ‘-ing’로 시작되고, 두 개의 ‘-ing’가 연달아 나오는 문장들이 이어졌다..
여기 나오는 ‘-ing’가 동명사인지 현재 진행형인지 생각하다가, 이게 문법에 맞는건가, 내가 모르는 용법이 있기라도 한건가 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명상에 집중하고 싶은데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혼자서 앱을 이용해서 하는 명상이었다면 앱을 꺼버리거나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을텐데,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기엔 교실 안은 고요했고, 모두가 나 빼고 명상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답답했다.
겨우 남은 집중력을 짜내어 귀를 기울였다. 발끝의 느낌을 알아보는데서 시작한 신체탐색은 어느덧 골반까지 올라와 있었다. 리듬에 맞춰 숨을 들이쉬고 다시 내쉬고, 잘 따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골반에서 느껴지는 신체적인 감각에 집중하라는 말을 듣고보니 누운 자세의 골반이 비뚤어진것만 같고, 엉덩이와 허리에 뻐근한 통증이 느껴지는 듯했다. 옴짝달싹못하는 채로 가만히 몸의 감각에 집중했더니 발뒤꿈치가, 엉덩이가 눌리면서 저려오는듯했다.
문득 수강신청 후 받은 사전 설문지에 수업을 들으며 걱정되는 부분이 있냐는 질문이 있었던 게 기억났다. 누우면 허리에 통증이 올까 걱정이 된다는 내게 교수는 그런 느낌이 들면 다리를 쭉 펴고 눕지 말고 살짝 무릎을 세워 누워보라고 했다. 이 조언이 지금 생각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발 뒤꿈치를 엉덩이에 조금 가까이 가져갔다. 통증이 조금 가시는 듯했다.
허리 통증이 지나가자 이번엔 추위가 찾아왔다. 이 교실이 처음인 데다 에어컨이 나오는 바람구멍이 어깨 위에 있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 온갖 생각들이 꽉 차서 교수의 말을 듣는둥마는둥 하고 있는 와중 15분의 명상이 끝났다. 마치 얼음땡 놀이를 하다가 누가 '땡'이라고 외쳐준 것 같았다. 끝났다는 안도감이 커다란 평온감을 가져다 주었다. 15분 내내 나는 잠들지 않기 위해 긴장했고, 온몸은 쑤셨고, 추워서 떨었던지라 콧물이 나오려고 했다. 그리고, 아까 그 -ing는 뭐지? 잘못 들었다기엔 너무 반복되었는데? 머릿속이 복잡했다.
명상을 마친 후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한 용감한 학생이 ‘-ing’로 시작하는 가이드 문장에 대해 질문했다. 교수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대답했다. 우리 뇌는 명령형의 문장을 들으면 반발심이 들게 되어있다고, 이 반발감을 줄여주기 위해 현재 진행형으로 시작하거나, 간혹 청유형을 쓴다고 했다. 이어서 우리 뇌는 우리가 명상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다. 왜죠? 하는 질문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교수는 내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을 듣기라도 한 양 이렇게 말했다. 우리 뇌는 예산 통제자 같다고. 뇌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일, 그러니까 심장을 뛰게 한다거나, 체온을 유지한다거나, 혈액을 순환시킨다거나, 소화를 시킨다거나 하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일어나는 일들을 계속 처리해야 하니, 의식해서 하는 일은 최대한 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이번엔 교수가 우리에게 15분 동안 얼마나 집중한 것 같냐고 물었다. 선뜻 누구도 대답하지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그냥 학생도 아닌, 명상센터에서 일하는 내가 15분도 집중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때 교수는 센터에서 같이 일하는 나의 동료, 명상 지도자인 L을 쳐다봤다. L이 말했다. 단언컨대, 본인을 포함해서 이 방 안에 있는 누구도 15분 내내 집중할 수는 없었을 거라고. 틱낫한 그룹에서 7년 동안 명상의 대중화를 위한 활동에 함께했던 L의 말이기에 신뢰가 갔다. 교수가 말했다. 딴생각이 드는 게 정상이라고. 딴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것은 이 수업에서 얻을 수 있는 성과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나중에 조금 더 공부해보고는 알았다. 마음챙김 명상은 ‘알아차림’이라는 과정을 통해 무의식의 세계와 의식의 세계를 넘나드는 활동이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호흡을 의식의 영억으로 가져오고, 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들의 ‘진짜 의미’를 찾아 그 패턴을 스스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마음챙김에서 하는 일이다.
나도 무언가 질문을 하고 싶었다. 명상하다가 추워졌는데요, 정상인가요?라고 묻자 대뜸 잘했다고 칭찬을 했다. 기분이 좋았지만 명상을 잘하면 왜 몸이 추워지는지에 대한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교수는 명상하는 동안 몸과 마음이 평온해지면 심박수가 평소에 비해 낮아져서 체온이 갑자기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수업에서 하는 명상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으니 다음부터는 담요나 덮을 것을 옆에 준비하고 명상에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나중에 마음챙김에 대해 좀 더 공부해 보고는 알았다.
명상하며 드는 잡생각을 부르는 용어들이 있다. 멍키 마인드(monkey mind), 잡생각 폭죽 (mental firework), 그리고 한번 떠오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건 생각 기차(train of thoughts)라고 했다.
우리가 할 일은, 알아채고, 다시 돌아오는 것, 이것을 반복하는 것이 마음챙김 명상의 과정이라는 것이 명상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설명이다. 실제로 내가 진행하는 명상에서도 나 같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처음 명상을 길게 시도하는 분들께 종종 언급하고는 한다. 특히나 신체 탐색 (Body scan) 명상의 경우 가이드에서 지칭하는 부위에 특별히 차가움이 느껴진다는 분도, 의식이 머무르는 부위에서 열이 발생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분도 있었다. 어느쪽이든 내가 모르고 있던 부분을 ‘알아차리는’ 것이 마음챙김 명상에서 하는 일이다.
명상으로 지도하고 나서 나는 반드시 ‘오늘의 명상’이 어땠는지 묻는다. 집중이 잘 안 됐다고 부끄러운듯 고백하는 걸 들을 때면 괜히 웃음이 난다. 혼내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어떤 부분이 어려웠는지 말해보고 함께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오늘의 명상에서 느낀 불편함을 개선해보려는 노력, 그 준비가 다음 명상을 조금 더 나은 경험으로 만들어준다. 추위를 느꼈다면 담요를, 허리가 아플 것 같으면 무릎 아래 쿠션을, 누가 불쑥 들어올 것 같으면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려는 노력, 그것이 다음 명상에서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경험하고 나니 명상을 ‘제대로’ 하는 법을 ‘마스터’하는 것은 불가능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명상을 경험하고, 느끼고, 또 다음 날이 되면 그날의 명상을 경험하는 것, 그렇게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마음챙김의 기본원칙 중 하나인 초심 지키기 (beginner's mind)다.
* 매달 17일, 27일 ‘일상의 마음챙김’
글쓴이 - 진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뉴스와 시사 인터뷰를 맛깔나게 진행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미국 수도에 있는 한 국제기구에서 참여자들의 의미있는 경험을 비추기 위해 행사 진행을 돕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
<____>을 출간했습니다 라는 소식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 속 소망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한걸음씩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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