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블루 재스민>이 우디 앨런의 최고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재스민은 부유한 사업가 '할'과 결혼해 상류층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할은 상습적으로 바람을 피웠고 재스민은 그 사실을 알게 된다. 남편이 재스민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다른 여자와 재혼할 거라고 하자 재스민은 이성을 잃고 남편을 FBI에 신고한다. 불법적으로 돈을 벌어왔던 남편은 감옥에서 자살했고 무일푼이 된 재스민은 여동생 진저의 집에 얹혀살게 된다.
영화는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사상 최대의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로 2009년에 징역 150년을 선고 받았던 버나드 메이도프의 이야기다. 72조원의 사기를 저지른 버나드 메이도프는 선고 받을 당시 71세였고, 그는 작년에 84세를 일기로 감옥에서 죽었다. 우디 앨런은 버나드 메이도프의 아내인 루스 메이도프에 주목했다. 루스 메이도프는 남편의 사기 행각을 몰랐으며 남편에게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남편이 수감된 후 <블루 재스민>의 재스민처럼 여동생의 집에 머무른 적이 있다고 한다. 사건 이후 루스 메이도프는 단골 미용실과 꽃집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는데 뉴욕타임스는 이 사실을 보도하며 그녀의 삶이 망가졌고 그녀가 '천민'처럼 되어버렸다고 했다.
영화 속에서 재스민은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자 실성하여 충동적으로 남편을 FBI에 신고한다. 왜 그랬을까? 재스민은 자기 무덤을 팠다. 원래 앞뒤 안 재고 지르는 성격이어서 그랬을까?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기 전에 재스민은 남편이 바람피는 것을 눈치 챘다. 그리고 지인을 만나 그 사실을 확인했다. 재스민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는 말이다. 남편과 이혼해야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시간. 만약 남편이 이혼하자고 하면 이렇게 대응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시간.
하지만 재스민은 남편의 이혼 요구에 부르르 떨기만 했다. 분노했고 포효했고 냉정하지 못했다. 왜 냉정하지 못했던 걸까? 어차피 우디 앨런이 지어낸 이야긴데 뭘 그렇게 깊게 따지고 드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이 재스민이라는 여자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라고 생각한다.
재스민은, 할과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 호화로운 펜트하우스에서 계속 살 수 있었고 겨울이면 유럽으로 여행 가는 상류층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샤넬 트위드 자켓을 입고 루이비통 가방을 사고 로저비비에 구두를 신을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자세한 설명이 나오진 않지만 어린 시절 그녀는 여동생과 함께 입양되었다고 나오는데 집안 형편이 좋았을 것 같지는 않다. 그녀가 남편이 자신에게 제공하는 삶의 가치를 몰랐을 것 같지는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녀는 일순간 그것들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당신이 원한 거 못 가진 적 있어?” 할이 재스민에게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할은 재스민에게 잘했다. 이혼을 요구할 때도 자기가 재스민을 앞으로도 잘 보살피겠다고 했다. 하지만 재스민은 “당신은 아무데도 못 가.” 라며 남편에게 매달렸다. 남편의 돈만 사랑했던 여자라면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챙길 건 챙겨야겠다는 태도로 냉정하게 처신했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재스민이 남편의 부를 보고 결혼했다고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부는 사랑의 껍데기뿐만 아니라 종종 사랑의 실체도 살 수 있다.
공정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이다.
-버트런드 러셀, <사랑과 돈>, 1932. 12. 14-
버트런드 러셀은 <사랑과 돈>이라는 에세이에서 부가 종종 사랑의 실체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영국의 정치가 겸 소설가였던 벤저민 디즈레일리와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를 예로 든다. 야망 있는 가난한 청년이었던 디즈레일리는 자기보다 훨씬 연상인 부유한 미망인과 결혼했다. 사람들은 디즈레일리가 아내의 돈을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생각했지만 디즈레일리는 결혼 생활 내내 아내에게 진심으로 헌신했다고 한다. 아내는 디즈레일리가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을 줬고 이 도움에 대해 디즈레일리가 느낀 고마움이 애정으로 발전한 것이다.
무함마드도 낙타몰이꾼으로 일할 때 돈 많은 미망인과 결혼하게 됐고 예언자 사업 초창기에 미망인의 경제력은 큰 도움이 됐다. 러셀은 무함마드가 그녀에게만 헌신하진 않았지만 일부다처제의 한계 내에서 그녀를 진정으로 좋아했던 것만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남자가 가난하고 여자가 부유한 사례를 들었지만, 남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그 반대의 경우가 더 흔하다고 러셀은 덧붙였다. 사람들은 디즈레일리와 무함마드가 돈 때문에 결혼했고 그들이 배우자를 사랑했을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상대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은 사랑으로 발전하기 쉽다. 이기주의로 시작한 사랑이라고 해서 그 사랑이 진실하지 못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얄팍한 심리일 뿐이라고 러셀은 일갈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혼합물이다. 고마움이 몇 프로고 성애가 몇 프로고 딱 잘라 나눌 수 없다. 재스민이 할을 사랑했는지 안 했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성을 잃을 정도로 분노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재스민에게 남편의 불륜은 고마운 사람의 배신이었다.
무일푼이 된 재스민은 자신이 집을 얼마나 잘 꾸몄었는지를 떠올리며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한다. 디자이너가 되려면 학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강의를 듣기 시작하는데 결코 녹록지 않았다. 인테리어 감각이 있는 것과 학위를 따고 직업인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또다른 일이다.
동생네 집에 얹혀 사는 것이 눈치 보이기도하고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한 재스민은 치과 데스크 직원으로 취직한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일을 못한다. 재스민은 일을 해본 여자가 아니었다. 어쩌면 일머리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하루하루를 버겁게 보내던 중 병원 원장한테 성추행을 당하고 일을 그만두게 된다. 그 병원 원장 왈. 당신 같은 우아한 여자가 내 이상형이었어요!
일 머리 없는 재스민을 보면서 나는 이디스 워튼이 쓴 소설, <환희의 집>의 릴리 바트가 떠올랐다. 릴리 바트도 빼어난 외모의 여성으로, 상류 사회의 일원이었으나 부유한 남자와의 결혼에 실패하면서 사회적으로 추락한다. 릴리 바트는 자신이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자신이 모자 손질을 멋지게 잘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모자 만드는 곳에 취직을 한다. 그러난 두 달이 지나도록 모자 테두리에 반짝이를 잘 붙이지 못해서 야단을 맞는 등 자신이 모자 만드는 데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잘 만들어진 모자를 써서, 모자를 빛나게 해줄 사람이지 모자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것이다.
재스민과 릴리 바트를 '스스로 장식품이 되어야 하는 여자'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술적 훈련에는 적합하지 않고 어디 꽃스러운 데에 가서 꽃이 되는 여자랄까. 이들은 스스로 아름답기도 하고 아름다움을 생산해내는 능력이 있는데 부유함이라는 특정한 환경이 뒷받침 되어야 피어난다. 탁월한 감각으로 집안을 꾸미고 본능적으로 세련된 옷과 모자를 고르는, 그런 일들은 돈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블루 재스민>과 비슷한, 상류층 여성의 삶을 다룬 우디 앨런의 또다른 영화가 있다. <중년의 위기 (원제: 앨리스)>라는 영화다. <중년의 위기>에는 사업가 남편의 내조를 하며 부유한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여성, 앨리스가 나온다. 앨리스는 권태로운 자신의 삶에 회의감을 느끼며 자아를 되찾고 싶어한다. 그러던 중 예전에 자신이 테레사 수녀님을 존경했었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느 날 남편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남편과 이혼한 뒤 테레사 수녀의 본거지인 캘커타로 간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와 아이들과 작은 집에서 소박하게 살면서, 봉사하며 살아간다. 자발적으로 상류층의 삶을 포기하고 소박하지만 자신의 진정한 삶을 꾸려나간다는 이야기가 무척 인상 깊었다.
<중년의 위기>는 1990년에 나온 영화고, <블루 재스민>은 2013년에 나온 영화다. 나는 <블루 재스민>을 먼저 봤고 한참 뒤에 <중년의 위기>를 봤다. 우디 앨런의 결론은 왜 앨리스에서 재스민으로 바뀐 걸까? 나는 우디 앨런에게 묻고 싶었다.
그리고 최근에 <우디가 말하는 앨런>이라는 우디 앨런의 인터뷰집에서 놀라운 대답을 듣게 되었다. <중년의 위기>에 관한 인터뷰였다. 인터뷰어가, 앨리스는 부유하지만 권태로웠던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하자 우디 앨런은 이렇게 말했다.
맞아요. 그녀는 그 곳에 머물고 싶어하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변화하기를 원하죠. 그리고 이제 그녀는 변했고 그녀가 좀더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삶도 변하겠지요. 그리고 그 삶이 변할 때 한 순간에 가서 그녀는 매우 처량한 결말에 직면할 것이고 그녀는 '이봐, 이제 난 어떤 것이든 받아들이겠어. 난 남편에게 돌아가면 행복할 거야. 난 당신이 원하는 무엇이든지 하면서 행복할 거야. 이 최후의 변화가 난 싫어'라고 말할 겁니다.
-우디 앨런-
*매달 25일 '케이트의 영화 이야기'
*글쓴이 - 카페의 케이트
책을 읽고 영화를 봅니다. 책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독서교실을 운영하며 도서관, 복지관 등에서 초등논술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kateinthe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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