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를 할 때는 눈을 보면서 하는 것이 좋다. 단골이 아닌 경우에는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를 최대한 천천히명확한 발음으로 말한다. 바가 생각보다 두껍고, 제빙기 소리나 바 아래에 위치한 스피커 때문에 목소리가 잘 전달되지않는 편이다. 해서 그런 부분에 신경을 써야 한다. 아무리 바쁜 상황이라도 인사만은 차분하게 해야 한다. 단골인 경우에는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고, “평소에 드시는 것으로 드릴까요” 하고 물어보는 편이다.
아침 손님은 주로 아메리카노를 시키는 경우가 많다. 가격도 저렴하고, 비교적 빠른 서빙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그렇지 싶다. 주문으로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잔이 들어왔다면 처음 하는 일은 온수 피쳐에 남아 있는 물을 버리는 일이다. 버리는 이유는 온도의 일관성과 온수 피쳐에 있을 혹시 모를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잔량이 적다면 머신의 배수 트레이에 버리고, 잔량이 많다면 싱크대로 가지고 가서 버린다. 머신 트레이에 많은 양의 물을 버리면 역류하는 경우도 있고, 하단에 위치한 머신 부품에 데미지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과정을 물을 적정한 온도로 식힌다는 생각으로 차분히 진행한다. 빠르게 하는 것보다 제대로 만들고 실수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온수기 온도를 95도에 설정해놨기 때문에 커피를 만들고 서빙하는 과정에서 4도 정도는 떨어뜨려 주는 것이 손님 입장에서도 좋다. 따라서 서두를 필요는 없다. 피쳐에 물은 한잔보다 조금 여유 있게 받는다. 실수할 경우를 대비해서 혹은 물이 과도하게 식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물을 받았다면 서빙 나갈 쟁반을 준비한다.
쟁반은 손으로 앞뒤로 만져봐야 한다. 이물질은 눈으로 확인도 하지만 촉감으로 확인해야지 정확하다. 그래서 나는 손에상처가 크지 않다면 라텍스 장갑을 끼지 않는 편이다. 이물질을 제거할 때는 두 개의 행주가 필요하다. 젖은 행주로 한번닦고 마른행주로 남은 물기를 닦아 준다. 완벽한 쟁반 위에 깨끗한 잔 받침을 올린다. 올린 뒤에 워머 위에서 따뜻한 머그잔을 꺼낸다.
머그잔도 의식적으로 내부를 확인한다. 혹시 얼룩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싱크대로 넣는다. 입술이 닫는 부분도 빛에 비추어 확인한다. 종종 립스틱 자국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자국이 있는 것은 싱크대에 넣고 새로 잔을 꺼낸다. 잔이 준비되었으면 물을 붓는다.
그 뒤에는 추출할 그룹에 물 흘리기를 한다. 그룹 헤드 앞에 고여있는 식은 물을 제거해야지 커피 추출이 안정적으로 될수 있다. 처음 닿는 물의 온도가 중요하다. 물 흘리기를 하는 동안 추출할 필터를 린넨으로 깨끗하게 닦는다. 이때, 물기를 최대한 제거하고, 남아 있는 커피 가루는 타협하지 않고 완벽하게 제거한다. 물기가 묻는 포터 필터를 사용하면 증발한 수분으로 인해 토출구가 막히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남은 물기나 커피 가루가 추출 변수로 작용해서 맛의 일관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해서 타협은 금물이다. 최대한 깨끗하게 한 뒤에 그라인더에 포터 필터를 걸고 분쇄 원두를 받는다.
우리 카페에는 에스프레소 그라인더가 총 네 대 있다. 콜롬비아 디카페인, 케냐 싱글, 에티오피아 싱글, 하우스 블랜딩이다. 주로 인기가 있는 원두는 고소한 맛이 나는 하우스 블랜딩이다. 다른 원두보다 다섯 배 정도 많이 팔린다. 해서 해당 그라인더는 쉬지 않고 돌아가는 편인데 쉬이 고장이 났고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비싼 것으로 업그레이드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이십 그램을 가는데 십초 정도 걸리는 제품을 썼는데, 지금은 삼초 정도 걸리는 제품을 쓰고 있다. 그라인더날에 열이 나면 미분이 발생하는데 인기 있는 원두의 그라인더는 그것을 막아주기 위해서 냉각팬도 달린 제품이다.
갈리는 동안 깨끗한 샷 글라스를 머신 앞에 준비한다. 필터에 받았으면 그라인더에서 빼낼 때 원두가 손실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중간에 흘리게 되면, 원두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포터 필터의 원두량이 작아지게 되면, 상대적으로 내부에 형성되는 압력이 약해져서 추출하는 시간이 짧아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맛도 연하고, 계획된 향미를 벗어난다. 크레마의 색감도 흐려지게 된다.
갈려지는 원두를 받았으면 그것을 손으로 잘 모아서 소음을 주의하며 가볍게 바에 툭툭 친다. 치는 이유는 가루 사이에있는 공기층 제거하기 위해서다. 치고 난 뒤에는 디스트리뷰터가 최대한 밀착 될 때까지 눌러준다. 전 동작을 했다면 쉽게 눌러지지만, 전 동작을 생략하게 되면 힘으로 강하게 눌러야 한다. 해서 전 동작을 꼭 하는 것이 사람을 위해서 좋다.
커피 가루가 담긴 포터 필터는 최대한 부드럽게 장착해야 한다. 충격을 주면 다져진 커피 가루에 금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이 가면 그쪽으로만 물이 유입되어서 단단한 부분의 원두 가루는 무의미해진다. 아주 적은 양은 원두로 추출하는것과 비슷한 결과가 만들어진다. 체결은 살짝 걸어준다는 느낌으로 한다. 강하게 반복된 동작을 하면 손목에 좋지 않기때문이다. 체결했는데 뜨거운 물이 포터 필터 밖으로 새는 상황이 발생하면 체결 강도를 탓하기보다 부품을 교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했으면 거의 다했다. 준비된 샷 글라스를 포터 필터 아래에 두고 추출 버튼만 누르면 된다. 이제부터 기계가 하는 일이다. 누르면 뜸 들이기를 하고, 다져진 커피 가루를 고르게 적셔서 한잔의 에스프레소가 만들어진다. 우리 커피의정상적인 추출 시간은 25초 정도로 잡아 놓았다. 만약에 추출했는데 시간이 너무 짧다면 과감하게 버린다. 시간이 길어져도 마찬가지. 앞의 과정에서 실수가 없었는데 추출 시간이 짧으면 원두 입자를 가늘게 조절하고, 길면 반대로 입자를두껍게 조절한다.
샷 글라스에 받아진 에스프레소는 임의로 판단하지 않고, 뜨거운 물 위에 온전히 붓는다. 전 과정을 신뢰하고 일관성을믿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한잔의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완성된다. 이제 들고 나가면 된다. 가는 동안에 잔을 넘치게 되면안 되니 차분히 걸어야 한다. 내려놓을 때는 약간 머물다 오는 느낌으로 할 것. 감사하다고 꼭 말씀드릴 것, 여유가 된다면리필해드린 말도 전할 것. 이 정도를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주문받고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만들어져서 손님에게 서빙되는 시간은 이분 정도가 소요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 추출이 완료된 포터 필터를 제거하고, 커피 찌꺼기를 털어내야 한다. 이때 소음은 음악 소리의 비트를 넘지 않을 정도 젠틀하게 칠 것. 강하게 치면 손목에도 좋지 않고, 분위기도 해친다. 그리고, 그룹헤드 내부에 붙어 있는 커피 찌꺼기도 제거하기 위해서, 포터 필터가 분리된 채로 추출 버튼을 한 번 더 누르면 된다.
물이 흘러나오는 십초 동안 서빙 나간 테이블의 반응을 조용히 살핀다. 살피면서 샷 글라스를 린싱한다. 좋은 반응이다싶으면 그 순간을 새기고, 나쁜 반응이 있으면 다음을 기약한다. 과정에 최선을 다했다면 내 실책이라 여기지 않고 기계탓을 하는 것이 마음에 편하다. 카페에 여유가 된다면 커피가 반 정도 줄었을 시간이 되었을 때, 커피를 다시 더 내려주는것도 많이 쓰는 방법이다. 원두를 바꾸거나 진하기를 조절하면 모든 것이 일치하는 순간이 만들어진다. 결국 손님과 커피와 내가 마주하는 찰나가 숨어 있다. 그 순간의 의미가 이 모든 과정보다 중요하다. 그것을 지키는 것에 기쁨을 느끼게 되면 바리스타는 할만한 직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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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김해에서 작은 카페를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 이 년 동안 에세이를 연재했고, 지금도 틈이 있으면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무엇을 구매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작은 의미를 찾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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