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늘 그렇듯, 그 날도 소파에 기대 누워서 인터넷 TV를 보고 있었다. 이리 저리 채널을 돌리며 뭐 재밌는 거 없나 하고 있는데, 남편이 지나가다 문득 '아, 혹시 인터넷 TV에서 뭔가 부가 서비스 결제 했어?'라고 물었다. '아니, 결제 한 거 없는데. 없을텐데?’ TV나 볼 따름이지 딱히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뭘 결제 하지는 않았지만, 내 기억력은 나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말끝에 ‘없을텐데’가 따라 붙었다. 그다지 큰 금액은 아니었던지 남편은 ‘그렇지? 청구서 부가 서비스 항목에 뭐가 있길래.’ 하고는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뭐가 결제 된 건지 궁금하긴 했지만, 요금 청구서에는 구체적인 항목이 기재되어 있지 않았고 금액도 만원 정도로 크지 않아, 통신사에서 알아서 잘 계산 했으려니 하고 다시 TV 시청 모드로 돌아갔다. 아마 그 날이 그렇게 심심한 주말이 아니었다면 그냥 그렇게 묻힐 일이었다. 한참을 심드렁하게 TV를 보다, TV 시청도 지겨워진 나는 통신사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요금을 캐기 시작했다. 발행된 청구서들을 하나씩 조회 하며 과거로 거슬로 올라가니 매달 부가서비스 항목에 만원이 약간 넘는 동일 금액이 청구 되어 있었다. ‘요금제 할인이나 의무 사용 항목 같은 걸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12개월 정도 조회를 하니 색다를 것도 없었고, 더 자세한 정보를 얻으려면 콜센터에 전화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홈페이지를 닫으려는 순간, 재작년 여름의 청구서부터 갑자기 부가서비스 결제 내역이 0원으로 찍힌 것을 발견했다. 즉, 재작년 6월까지는 부가서비스 결제가 없었다가, 7월에 만원 정도의 금액이 추가 되고 그 이후로는 쭉 같은 금액이 청구되고 있었다. ‘재작년 여름..? 혹시?’ 그래, 나였다. 재작년 어느 더웠던 여름날 인터넷 TV에서 결제 했던 노래방이 생각났다.
그 날은 어쩐지 노래를 부르고 싶어져서 생전 하지도 않는 TV 노래방을 켰다. 노래 한 곡을 부르고 나니 두 번째 곡 부터는 결제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하루 이용권이 몇 천원 정도이기에 부담없이 결제를 했고, 화면에 적힌 안내문에 따르면 노래방 요금은 인터넷 요금에 통합해서 청구 된다고 했다. 막상 노래는 삼십 분도 안 돼서 흥이 떨어졌다. ‘역시 노래는 노래방이지’ 노래방 프로그램을 끄며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노트북으로 뭔가를 하고 있다가 반쯤 흘려들으며, ‘그러게’ 하고 맞장구 쳤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 이후로는 노래방을 접속하지 않았고, 인터넷 TV 부가서비스 결제라면 그게 유일 했다. 혹시? 부랴부랴 TV 노래방을 켰다. 결제 항목 보기를 눌렀다. 소름이 돋았다. 30일 이용권이 떡하니 결제 되어 있었고 심지어 매달 자동 결제 옵션까지 체크 되어 있었다. ‘뭐야, 그 날 이후로 계속 결제 되고 있었던 거야?’
일 년 반을 사용하지도 않는 서비스 요금을 꼬박꼬박 냈다는 것도 아까웠지만, 그 보다는 나름 IT 업계 종사자가 결제 옵션 하나 꼼꼼히 살피지 않았다는 게 부끄러웠다. 내 기억에는 분명 일일 이용권을 산 것 같지만,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내 기억력을 나도 믿을 수가 없다. 노래 부르겠다고 신나서 제대로 확인도 않고 결제 버튼을 꾹 누른 건 흥에 겨운 내 손가락 이었겠지. 통신사에도 아쉬움이 생겼다. 최근 이 회사는 AI와 데이터를 활용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는 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그 기술력과 데이터를 활용하면 접속 기록 하나 없는 부가 서비스가 결제 되는 경우, 사용자에게 ‘사용하는 서비스가 맞는지?’ 한 번 쯤 확인 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간단히만 계산 해봐도 누적 십만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라, ‘혹시 환불 해줄 수 있는지 콜센터에 전화 해보면 안 돼?’ 했더니 남편은 귀찮기도 하고 이런 이야기 하기가 부끄러웠던지 ‘환불 안 해줄 것 같은데? 정 하고 싶으면 니가 해보던가’ 했다. 어쩐지 진상짓인 것 같아 나도 며칠 망설이다가,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나 해보자 하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다. 이전에도 애플에서 앱을 정기구독 했을 때 사용하지 않은 기간은 환불 받았던 기억이 있어서, 우리나라대표 기업이니 혹시 정책이 잘 갖춰져 있을지 모르잖아 하는 마음도 있었다.
마음을 졸였던 것 과는 달리 의외로 환불은 쉽게 되었다. 통신사에서 컨텐츠 제공 업체인 노래방 회사로 연결 시켜 주었고, 노래방 회사의 담당 엔지니어는 인터넷 TV의 노래방 사용 기록을 살펴 보더니 ‘그렇네요, 재작년 7월 이후에는 접속 기록이 아예 없으시네요’ 하고 확인 후 무려 18개월 분의 사용료를 환불 해주기로 결정 했다.
내 경우는 미사용 기간의 디지털 컨텐츠에 대해, 운 좋게도 간단한 절차로 전액 환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쉽지는 않다. 디지털 컨텐츠의 사용과 결제, 환불, 취소 등에 관한 상세 사항은 디지털 컨텐츠 제공회사가 만든 약관을 참고 해야 한다. 약관에서 정의되지 않는 사항이나 약관의 해석을 위해서는 ‘콘텐츠산업진흥법’,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콘텐츠 이용자보호지침’ 등 정부가 정한 법률이나 지침을 따르게 된다.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디지털 컨텐츠 계약은 체결일로부터 7일 이내에 청약 철회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결제 후 바로 컨텐츠를 빠르게 소비 하고 환불을 요구 하는 얌체 손님을 막기 위해, 다수의 회사들은 약관을 통해 디지털 컨텐츠 결제 후 7일 이내 그리고 미사용이라는 조건 하에 취소를 해주는 경우가 많다. 또, 음악이나 영화 같은 1회성 컨텐츠가 아니라 정기 구독 형태의 디지털 컨텐츠의 경우, 구독 기간 중간에 구독을 중지하면, 남은 사용 기간의 금액을 환불 해주는 회사도 있고 환불을 해주지 않는 곳도 있다. 이 역시 회사별 상세 조건은 약관을 참고 해야 한다.
디지털 컨텐츠의 금액은 그다지 크지는 않은 반면, 고객센터를 통해 상세 내용을 확인하고 환불 받는 것은 번거롭기 때문인지, 아직까지는 디지털 컨텐츠 결제나 취소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도, 문제를 해결 할 시도 자체를 지레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어차피 환불 안 해줄 것 같은데’, ‘에이, 그 정도 돈 내고 말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다. 또 나의 경우처럼, 돈이 나가는 줄도 모르고 매달 착실하게 요금을 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컨텐츠는 이제 시작 단계인 시장이다. 디지털 컨텐츠가 디지털 서비스로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가전이나 자동차 같은 기존의 제품에 디지털 서비스가 결합되면서 디지털 프로덕트로 발전하게 되면서, 앞으로 디지털 분야에서 사용자들의 지출 규모나 삶에서 차지하는 범위가 커질 것이다. 사용자들이 카드청구서 챙기듯 디지털 컨텐츠의 청구서를 꼼꼼하게 살피고, 문제가 생기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정부는 이를 보호하기 위한 법과 정책을 잘 준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음 뉴스레터에서는 디지털 프로덕트와 그 계약에 대해 이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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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서하연
카카오에서 데이터 비즈니스를 고민하고, 데이터 프로덕트를 만듭니다.
데이터, 인공지능과 함께 하는 미래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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