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적인 음악이 흐르는 북유럽풍의 스튜디오, 요가매트 위에 요가쿠션을 깔고 가부좌를 틀고 앉은 사람들,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가진 지도자의 안내에 따라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나누고는 평온해진 마음으로 문을 나선다.
이 뉴스레터는 이런 명상을 알리기 위해 쓰여지지 않았다. 내가 명상을 하는 장소는 다음과 같다. 침대 위, 커피머신 앞, 운전석, 마트 계산대, 사무실 의자, 벽난로 앞, 우리 동네 호수, 횡단보도 앞,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아침, 점심, 저녁 중 명상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언제일까? 정답은 ‘모두 다’ 이다. 단,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어야 한다.
명상센터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기 전까지 나에게 마음챙김(Mindfulness)은 신비에 가까운 영역이었다. 마음챙김이라는 단어를 들어는 봤지만, 그건 특정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산사에서 묵언수행을 하며 도를 닦는 수련의 과정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남편의 유학길을 따라 미국 동부의 작은 대학 도시에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찾다가 우연히 명상과학센터(Contemplative Sciences Center)라는 대학 내 부설기관에서 일하게 되었다.
명상과 요가 이외에도 마음챙김을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사이에는 당연히 간극이 있었다. 엄마로, 학생으로, 아내로 하루 하루를 바삐 살아내느라 마음을 챙길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당시엔 나도 ‘마음챙김’은 삶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센터 홈페이지에 다음 학기 마음챙김 과목들을 등록하던 중이었다. 과목코드, 교수명, 강의명을 차례차례 복사해서 붙이다가 수업 개요를 가만히 들여다 보게 되었다. 단발성 강연이 아니라, 점심시간에 이루어지는 50분짜리 요가 클래스가 아니라, 한 학기 동안 마음챙김의 기초를 배우며 ‘나의 삶’에 맞는 적용방법을 만들어본다는 수업 안내문의 문구에 눈길이 머물렀다. 수강신청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나는 마음챙김이 일어나는 현장을 꾸미는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에서 수강생의 입장이 되어보기로 했고, 이 수업은 내가 마음챙김 전달자로서의 꿈을 키우게 되는 첫 시작점이었다.
간혹 ‘마음챙김’을 만난 후 삶이 어떻게 달라졌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이너 피스의 마음으로 평온하게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듣는이도 그걸 기대할 수도 있지만, 실시간으로 우다다를 반복하는 마음 속 원숭이, 아니 원숭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되어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매일 명상을 하고, 마음챙김을 삶에서 실천한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열 살짜리 아들이 쓴 지렁이 글씨를 보며 한숨을 내쉬는, 알람이 울리면 조금 더 자려고 스누즈 버튼을 누르는, 변기 뚜껑이 모두 올려져 있는지 모르고 앉았다가 허공에 눈살을 찌푸리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는 스스로를 자주 발견하는 평범한 워킹맘이다. 그렇다고 내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얼마나 되는지, 몸이 하는 소리를 어떻게 듣는 건지, 명상을 하다가 왜 잠에 빠지게 되는 건지, 마음을 들여다보는데 왜 평온해지지 않고 불편해지는 건지를 알게 되었다. 애써 노력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을때 뭘 어떻게 해보면 좋을지를 알고, 나만의 하루를 괜찮게 사는 법을 하나씩 추가하며 살고 있다.
내 마음이 단단해지면서 ‘마음챙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생각보다 명상을 시도해 본 사람들이 많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실망감을 느끼고, 명상으로 인해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했던 고민과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그들에게 작은 깨달음의 순간을 선물하기 위해 온라인 명상그룹을 운영하고, 워크숍을 하고, 글도 쓴다.
글 연습을 시작하고 글쓰는 사람들이 쓰기에 대해 말한 책을 꽤나 읽었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글을 쓰는 동기를 1.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순전한 이기심, 2.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찾는 기쁨을 표현하고자 하는 미학적 열정, 3.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후세를 위해 보존하려는 역사적 충동, 4.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정치적 목적의 네 가지로 구분하고 그의 글쓰기 여정을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로 묘사했다.
그래서 나는 왜 쓰는가? 하고 질문해봤다. 앞으로 이 뉴스레터에 실릴 글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듯한 ‘그들의 마음챙김’을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기회로 만드는, 하루하루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 삼고 싶은 나의 오답노트 모음집이다. 읽고 나서 ‘마음챙김이 삶과 동떨어진, 종교인들이 하는 특별한 수행이 아니라 나의 하루를 의미있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은 사람들이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방법이구나.’ 이 정도의 생각 전환의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내 주위엔 왜 그렇게 빌런이 많냐고 한탄하던, 생각공장이 24시간 돌아가던, 몸과 마음 모두가 너무 예민해 감지되는 신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던, 후회가 취미이고 자책이 특기였던, 밤마다 낮에 있었던 일을 반복재생하며 붉어진 얼굴로 이불킥하던 내가 마음챙김을 만난 후 삶에 ‘괜찮은 것들’의 목록이 늘어가며 조금 더 솔직해지고, 조금 더 용감해진 이야기를 조심스레 풀어보려 한다.
‘마음챙김’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게 가장 와닿는 문구를 소개해 본다.
열린 마음과 호기심을 가지고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생각 공장은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이제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비워내려 애쓰지 않는다. 불쑥 나타나는 ‘과거의 부끄러운 나’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조금은 안다. 그 아이에게 웃으며 인사할 정도로는 내 마음이 단단해졌으니까. 나는 오늘도 ‘마음챙김’을 통해 내가 원하는 나에 한발씩 다가가는 하루를 산다.
* 매달 17일, 27일 ‘일상의 마음챙김’
글쓴이 - 진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뉴스와 시사 인터뷰를 맛깔나게 진행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미국 수도에 있는 한 국제기구에서 참여자들의 의미를 비추며 행사 진행을 돕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 진짜 나를 찾고 싶은 사람.
일상을 기록하는 조각 글을 쓰는 재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____>을 출간했습니다 라는 소식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 속 소망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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