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경은 처음이었다. 긴장이 되어서 그런지 모든 동작이 어색했다. 두꺼운 투명 아크릴로 마감된 서늘한 감촉의 침대도낯설었고,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옆으로 누워서 팔다리를 정돈하는데, 그 모든 과정이 부자연스러웠다. 소독약 냄새가 나는 그 공간에서 곧 잠들 내 몸은 나와 무관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보다 신경이 쓰였던 것은 의사가 앉은 쪽에 있는 컴퓨터 화면이었다.
새로운 환자가 들어오는 동안 쇼핑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멀티 화면에는 손목시계 정보가 떠 있었다. 밴드는 메탈 소재였고, 은색 베젤 안쪽은 청아한 쪽빛이었다. 박혀있는 바늘이 많아 보였다. 가격은 할인해서 천오백 달러, 비싼 시계군하고 생각했었다. 선생님 시계는 나중에 고민하시고요, 저 처음인데 무섭거든요 잘 부탁드려요,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당연히 아무 말 못 하고 우물쭈물했다. 이름을 물어봤고 나는 대답했다. 몇 마디를 나눴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눈을 떠보니 회복실이었다.
점심은 간단하게 병원에서 제공하는 부드러운 음식을 먹었다. 간이 덜 된 미역국, 어떤 생선의 속 젓, 작은 꽈리 고추가 있는 멸치볶음으로 밥 한 공기를 뚝딱했다. 그렇게 하고 나서 커피를 파는 곳을 찾아 나섰다. 머릿속을 옮겨 다니는 가벼운두통이 느껴졌다. 구슬 정도 크기의 근육통 같은 통증이 머리 어느 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옮겨 다니는 것 같았다. 그 무시할 수 없는 결림이 미간에 있다가, 천천히 귀 뒤쪽으로 이동했다. 다시, 알 수 없는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아마도 카페인을 찾는 몸의 반응 같았다.
나는 아침마다 석 잔의 도피오를 마신다. 케냐, 예가체프, 하우스 블랜딩을 한 잔씩 마신다. 글라인더에 앞에 걸려있는 원두를 손님에게 제공하는 것은 안 될 말이고, 맛도 잡을 겸 글라인더를 조금씩 굵게 조절한다. 그 굵기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원두를 한 두 번 버려야 하는데, 그것을 내가 마신다. 빈 속이 아니라, 미숫가루로 속을 달랜 뒤에 커피를 밀어 넣는다. 넣으면, 목 뒤의 경동맥이 뛰는 것이 미세하게 느껴진다. 동시에 손끝이 따뜻해진다. 코끝에 무엇이든 올려서 균형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그 힘으로 홀로 오전 시간을 감당한다.
시간을 홀로 감당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 시간 전체가 내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버는 돈의 크기를떠나서 손님의 인사와 안부가 모조리 나의 몫처럼 여겨진다.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나의 책임이라고 느껴진다. 착각일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살아왔던 세월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 자체가 보상이 되어서 지금이 있다고 여겨질 때가 많다.
덕분에 나는 커피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고, 이제는 커피가 없으면 기분 조절이 어려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날도 연거푸 몇 잔의 진한 커피를 마신 뒤에야 보통의 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 커피가 있어서, 가족들과 평범한 주말을 보낼 수 있었다. 나에게 평범한 주말이란 이런 것이다. 아내는 집에 있고, 나는 두 딸과 야외활동을 하는 것이다.
주로 돈이 들지 않는 동네 놀이터를 간다. 아이들은 그날의 친구와 놀고, 나는 그것을 바라본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책을 읽는다. 읽다가 손이 시리면 음악을 듣는다. 그러다 발이 시리면 놀고 있는 아이들 옆에서 서성이다가 사진을 찍기도 하고 놀이터를 몇 바퀴 돌면서 몸을 녹인다. 몸이 녹으면 다시 앉은 자리로 돌아와 책을 읽는다. 그렇게 주말을 보낸다. 그렇게 아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아침에 즐기는 몇 잔의 커피 덕분이다. 그렇게 무사히 하루가 흐르고, 며칠도 거뜬히 흘렀다.
그리고 어느새 검사 결과가 도착했다. 사실 나는, 내 속 어딘가에 무언가 좋지 않은 것이 자라는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되던 때가 많았다. 어딘가에 풀리지 않는 피곤이 있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날은 그것을 찾아야 하고, 떼어내야 하고, 그곳에 생길 빈자리에 대한 염려를 지울 수가 없었다. 세상에 그런 병은 너무 많으니까. 뭔가 덜어내고 그 빈 곳이 채워질 때까지 지난한 아픔과 싸우는 사람들이 주위도 많으니까. 정말이지 감사하게도 그런 병은 없었다. 성인이라면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약간의 위염이 있었고, 특이한 것은 뼈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종합 병원으로 검사지를 들고 가니, 수치가 좋지 않아서 일 년 정도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보험적용도 되는 수치니 경제적인 부담은 없었다. 꾸준히 약을 먹고, 커피를 줄이고, 수면 시간을 확보하고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내원해서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으면 된다고 했다. 그날이 이후로 그러니까 그다음 아침부터 커피를 줄였다. 아침에 마시는 도피오 석 잔을 한잔으로 줄였다. 대신 그냥 갈아서 버리는 원두가 늘었다.
조금은 새 나라의 어린이처럼 살아가면 되지 싶었다. 일찍 자고, 조금 늦게 일어나고. 커피는 일탈하듯 마시고, 커피를 일탈하듯 마시는 바리스타는 조금 어색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커피를 몇 잔 마시지 못하고 일을 하니, 실수가 늘었고 말이 매끄럽게 나오지 않는 날이 늘었다. 어떤 손님은 우스갯소리로 왜 로봇처럼 말하느냐고, 코드를 빼고 싶다고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미안하고 웃겼다. 적은 카페인으로 작동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집에서는 무조건 내가 설거지를 한다는 마인드였고, 계속 그것을 지켰는데 요즘은 아내가 계속 설거지를 하려고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식탁 한편에서 고양이랑 사냥놀이를 해준다. 종소리를 따라서 고양이가 후다닥 뛰어다니고, 뒤에서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가 들린다. 그 장면이 어딘가 모르게 서글프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알게 모르게 고독한 마음으로 나를 밀어 넣는다. 그런 밤을 몇 번인가 보냈다.
겨울은 해가 뜨기 전에 알람이 울린다. 가끔 조용한 고민을 한다. 살짝 흔들린다. 그 끝에 똑딱똑딱 살아가야지 그런 다짐에 도달하는 것은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 덕분이다. 아내, 두 딸, 성민, 윤서, 그리고 초침처럼 성실히 작은 카페를 찾아오는 손님들, 시곗바늘처럼 때로는 교차해서 만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손님들, 각자도생하는 세상 속에서 어느덧 우리라는 베젤 속으로 들어온 소중한 사람들.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회복되고 위로받고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그것이 커피를 줄여야 하는 바리스타의 낙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문뜩 들었다. 어느 피곤한 새벽에, 어떤 지울 수없는 무게감이 나를 누르는 시간에, 오래된 카페 바닥을 바라보며 낡은 인덱스가 새겨진 다이얼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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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김해에서 작은 카페를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 이 년 동안 에세이를 연재했고, 지금도 틈이 있으면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무엇을 구매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작은 의미를 찾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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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아
내시경을 할때 수면마취없이 했어요.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열에 아홉이 수면을 신청한 사람들이어서 모두들 저를 이상한 눈빛으로 보는것같아 불편했던것 같아요. 나는 독한 사람인지 겁이 많은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그저 의식이 없는 내 몸속을 헤집고 다닐 물체가 주는 이물감이 싫었어요. 시체처럼 한켠에서 잠들어 있을 내가 상상이 돼 싫기도 했구요. 마침내 거사를 끝냈을때 살짝 우쭐하기도 했어요. 나 내시경 생으로 한 사람이야 하고. 자꾸 미루게 돼 꼭 사람많은 연말에 하게되는 건강검진, 큰 탈없이 잘 지나가서 다행입니다. 작은 삐걱거림은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것 같으니까 크게 걱정마시고 관리잘하시구요. 작은 카페의 초침 중 한 사람이 흔적을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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