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여기서는 뭔가를 계속 먹게 돼요.” 이곳에서 오래 지낸 한국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니. 그토록 먹고 싶었던 떡볶이, 초밥, 비빔면...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는 한국에 머물 때는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 하루에 두 끼만 먹는 날도 있었다. 그러다가 잠비아에만 돌아오면 허기가 졌다. 한 끼에 먹는 양이 늘어났고, 끼니 사이에도 어느 정도의 포만감을 보장하는 빵이나 바나나 같은 간식을 먹어야만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어느 초파리 실험이 있었다. 초파리는 원래 무리 지어 생활하는데, 어떤 초파리를 일주일간 홀로 고립시켜 뒀다. 그랬더니 그 가엾은 초파리는 무리 속에 있는 초파리보다 유의미하게 먹는 양이 늘고 잠도 줄어들었다. 다른 초파리들과 상호작용이 부족해지면서 생리적인 스트레스 반응이 증가하고, 그 결과로 식욕과 수면 패턴이 바뀐 것이다. 나도 초파리처럼 친밀했던 무리와 이만큼 떨어져 지내기 때문에 먹는 양이 느는 것일까. 정서적 허기와 신체적 허기를 구분하지 못하면서.
사회신경생리학자인 존 카치오포 교수는 우리가 외로울 때 먹을 것을 찾는 이유를 호르몬으로 설명한다. 음식을 먹을 때, 마치 타인과 스킨십을 하거나 친밀감을 느낄 때처럼 옥시토신이 분비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음식이 소화되면서 소화 기관의 내벽에 마사지를 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외로움이 달래진다는 착각을 한다고 설명한다.
이번 주만 해도 약속이 여럿 있고 얼마 전 새로운 친구도 사귀었는데도 왜 외로운 걸까. 외로움은 친밀한 관계를 상실하거나 충분하지 못했을 때 찾아오는 정서적인 외로움도 있지만, 사회에 소속되지 못하여 연결망이 없다고 느끼는 사회적 외로움도 있다.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거리낌 없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이들이 지척에 없다는 사실에 나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한밤중에 집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나는 누구에게 연락할 수 있을까? 그나마 가깝게 지내던 이들이 타국으로 모두 떠나버리고 나자, 이 의문은 실제적인 두려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는 타국에 사는 사람들의 어려움만은 아닌 것 같다. 한국에서도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람들은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근접할 만큼 적고, 국내 여러 조사에서 80%에 가까운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특히 경쟁적이고 성과 위주의 환경일수록 더욱 심각한 외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그 한가운데에 내가 아니면 누구도 내 삶을 돌봐주지도, 나의 아픔을 공감해 주지도 않을 거라는 불안이 있다. 타인과 연결되어 있지 못하다고 느끼게 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자주 외로움의 수렁에 갇히게 된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없을 때 우리는 우울과 무기력감에 빠지기 쉽다.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인 ‘소속 욕구’를 위배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소속감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외로움이 심해지고 삶의 만족도가 낮아지며, 학업이나 직무 수행 동기도 떨어진다고 말한다.
사회적 연결망에 속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결국 타인과의 접점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거나 가장 우선을 두는 관계가 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삶에 자연스러운 풍경처럼 내가 들어가 있을 수 있다면 우리는 연결되었다고 느낀다.
그래서 밀도가 다른 여러 커뮤니티에 속할 필요가 있다. 이곳저곳에 느슨하게 엮여 있다면 그 자체로 사회의 연결망 속에 이미 들어온 셈이며, 언젠가 새로운 우정을 발견하고 관계가 깊어지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낯설고 품이 드는 일이지만, 두 해째 걷기 모임에 나가는 것도 이러한 느슨한 연결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지난 모임에서는 어떻게 지내냐는 모임원의 질문에 ‘요즘 좀 기분이 가라앉았는데, 오늘 모임에서 좀 기운이 났어요.’라고 답했다. 그럴 땐 언제든지 연락하라며 어깨를 두드려준다. 좀 더 마음을 열고 관계에 들어와도 된다는 신호다.
나뿐 아니라 모두에게는 크고 작게 연결에 대한 갈망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도움을 줄 때 연결된다고 느낀다. ‘들어와도 괜찮다’는 신호를 보낸 사람의 관계망 안으로 한 발짝 들어가 보는 것도 괜찮다. 가끔 도움을 청하는 방식으로 혹은 마음을 터놓는 방식으로. 상대의 연결감도 그만큼 두터워질 것이다. 실제로 외로움을 줄이는 방법으로 거듭 검증된 것 중 하나는 누군가를 돕는 것이다. 외롭거나 도움이 필요한 타인은 언제든 주변에 있다. 이들을 도울 때 자신에 대한 긍정적 느낌뿐 아니라 유대감과 연결감이 함께 커질 수 있다.
최근 중고거래 어플이나 평생학습센터 등을 통해서 크고 작은 지역 공동체가 생겨나고 있다는 것은 희망적인 소식이다. 러닝크루, 테니스 모임, 뜨개 모임과 같이 관심사를 공유하는 모임에서 느슨하거나 깊게 연결될 수 있다. 구조적으로 소속감이 희미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한 시스템 역시 필요하다. 이주했거나 새 학교에 진학한 사람들, 어린 아가의 부모나 노인과 같이 관계망이 취약해질 수 있는 사람들, 장애나 취향을 근거로 배제의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사회에 소속된 일원으로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이고 세심한 지원이 이어지면 좋겠다. 그렇게 소외되는 사람 없이 굵고 가는 연결망이 보다 촘촘해지길 바라본다.
사소한 행동 하나로 내가 속한 곳이 나에게 더욱 의미 있는 곳이 될 수도 있다. 언젠가 동네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있는데 누군가가 들어와 점원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점원이 ‘오셨어요’라며 활짝 웃는 걸 보니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눠 본 모양이었다. 그는 계산대에 물건을 올리며 점원과 날씨에 대해 몇 마디 나눈 후에 떠났다. 순간 그 사람이 경험하는 슈퍼라는 공간은 내가 경험하는 곳과 많이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 주에 한두 번은 꼭 들르는 슈퍼이지만 점원과 형식적인 인사 외에 말을 나눠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게는 그저 ‘사람’이라는 등장인물은 쏙 빠진, 물건을 사기 위한 기능적인 공간이라면, 그에게는 서로를 아는 누군가가 있는, 자신이 느슨하게 ‘속해있는’ 공간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최근의 연구에서도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것만으로도 같은 공동체에 속한다는 소속감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연결을 바라는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다면, 내가 물리적으로 속한 곳이 정서적으로 소속된 공간으로 차츰 변해갈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Ascigil, E., Gunaydin, G., Selcuk, E., Sandstrom, G. M., & Aydin, E. (2023). Minimal Social Interactions and Life Satisfaction: The Role of Greeting, Thanking, and Conversing. Social Psychological and Personality Science.
Li, W., Wang, Z., Syed, S. et al. (2021). Chronic social isolation signals starvation and reduces sleep in Drosophila. Nature, 597, 239–244.
Sithaldeen, R., Phetlhu, O., Kokolo, B., & August, L. (2022). Student sense of belonging and its impacts on help seeking behaviour. South African Journal of Higher Education.
정한울 (2018). 한국리서치 월간리포트 여론속의 여론: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 인식 보고서. 한국리서치.; 트렌드모니터 (2023). 2023 외로움 관련 인식조사. 마크로밀엠브레인.
글쓴이_이지안
여전히 마음 공부가 가장 어려운 심리학자입니다. <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을 출간하였고, <나를 돌보는 다정한 시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를 공저하였습니다. 심리학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며 상담을 합니다.
캄캄한 마음 속을 헤맬 때 심리학이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심리학을 통과하며 성장한 이야기,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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