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당신은 바다입니다. 나도 당신에게 바다가 되겠습니다.

2024.02.10 | 조회 1.02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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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5년 전, 한창 분사 구문을 설명하고 있던 수업 중이었다. 교실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지진이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아래로 쑤욱 떨어진 기분이었고 다리에 힘이 풀려 칠판 옆에 놓인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때 휴대폰에 동생 이름이 떴다. 수업 중에는 전화를 받지 않지만, 먼저 전화하는 법이 없는 동생이 전화를 한 것은 ‘무슨 일’이 있는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누나야, 엄마가…”

그러고는 동생은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동생도 이미 사십 중반인데 한낮에 누나에게 전화를 해서 울고 있었다. 분명히 동생 근처에 살고 계신 엄마에게 심상찮은 일이 생긴 것이고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흐느낌으로만 이어지던 그 10초간 내 머릿속을 폭풍처럼 훑고 지나갔다. 나는 왜! 왜! 하고 소리쳤고 앞에 앉아 있던 학생들을 고려할 겨를이 없었다.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엄마가 살아만, 살아만 있게 해 주세요.’

십 년 같은 십 초동안 나는 엄마만 살아 계시면 어떤 상황도 감수하겠다고 빌었다. 기도가 아니라 빌었다.

“누나야, 엄마가 며칠 전에 압력솥이 터져서 크게 화상을 당했는데 우리가 알면 엄마 죽겠다고 하면서 이모한테 말 못 하게 하고 지금 입원 중이란다. 나도 지금에서야 알고 병원 가는 중이다. 얼굴에…팔에…3도란다.” 3도 화상은 피부가 화기에 녹아 내려서 엉덩이나 허벅지로부터 살을 떼어 붙이는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고 심지어 어떤 시술을 해도 완전히 회복이 어려울 수도 있는 아주 심각한 상태이다.

순간 홀로 우주를 떠도는 듯 정신과 몸이 허공으로 날아갔고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버렸다. 3도든 뭐든 살아계시다는 안도감이 눈물 속에 섞여있었다. 학생들에게 오늘 수업은 보강을 하겠다고 재차 양해를 구하고 바로 울산으로 달려갔다. 병원 로비에는 이모와 동생이 기다리고 있었고 엄마를 보고 놀라지 말라고 재차 당부를 했다. 화상을 입은 얼굴을 본 적이 없었는데 그 당사자가 엄마라니 기가 막혔지만 자식들 놀랄까 봐 살이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서 홀로 견디셨을 엄마를 생각하니 그 정도의 연기쯤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병실에 도착했지만 엄마를 찾을 수가 없었다. 유난히 하얀 피부가 돋보이던 우리 엄마는 어딜 가고 쵸콜릿색 딱지와 진물 범벅인 환자가, 목소리만 엄마인 환자가 내 이름을 불렀다. 비위도 약하고 늘 기운도 없는 내가 놀랄까 봐 엄마는 이 딱지가 다 벗겨지면 더 예쁜 엄마로 돌아올 거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뭘 더 예뻐지려고 그러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화상 당하지 않은 엄마의 나머지 한 쪽 손을 꼭 쥐고 덜덜 떨고 있었다.

진료를 온 의사선생님을 따라나가서 얼굴에 흉이 지지 않을 방법은 없는지를 묻고 얼마가 들든지간에 아프지 않게, 흉이 남지 않게 치료해 달라고 호소했다. 말들이 눈물속에 뭉개져서 띄엄띄엄 튀어나왔다. 의사선생님은 화투장 한 장 크기의 화상 밴드가 있는데 그걸 쓰면 그나마 흉이 덜 남지만 보험 적용도 안되고 치료비가 비싸서 엄마가 거부하고 있다고 하셨고 나는 백 장 천 장을 붙여서라도 낫게 해 달라고 사정했다.

요즘 엄마랑 목욕을 갈 때마다 엄마의 얼굴과 팔을 살핀다. 작은 화상 밴드 한 장에 8만 원이었고 매일 상처 전체에 붙이고 치료하느라 수 천만 원의 치료비가 들었지만 다행히 엄마의 고운 얼굴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팔 주변은 치료 시기를 놓쳐 흉이 많이 남았는데 그 흉이 얼굴에 남았으면 어쩔 뻔했나 생각하면 내 몸뚱이가 활활 타오르는 기분이 든다. 엄마는 나에게 태평양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너르고 너른 바다이다. 아빠가 열살 때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 동생과 나를 번듯하게 키우기위해 모든 것을 내어 준 사람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설 용기있는 피를 물려 준 당사자이다. 이 지구상 통털어 한 점 이해 욕망없이 나를 지지해 줄 단 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어른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크고 작은 파도가 되어 엄마라는 바다를 뒤흔들곤 했다. 스무살 이래로 떨어져 살았지만 집을 사거나 이혼을 고민하는 등의 삶의 큰 고민을 털어놓을때마다 엄마는 크고 따뜻한 손으로 나를 지켜주었다. 지진과 함께 엄마의 화상 소식을 들었던 날, 비로소 나도 엄마에게 작은 바다가 되었다.

 

 

*  글쓴이 - 구경희(영어 선생이자 진학 컨설턴트)

예술을 좋아하는 영어 선생이다. 인생 이야기를 즐겨 듣다가 글쓰기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한 아이를 키우며 자신까지 해방된 운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 웹진 mung 작가로 참여하여 공저 <전지적 언니 시점>을 쓰는데 참여했다. 페이스북에 짧거나 긴 글을 매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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