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홀로 카페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뭔가 조금씩 절박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지난밤에 거리를 밝히기 위한 가로등이 아직 채 꺼지지도 않았는데, 약간은 졸린 듯한 표정으로 띄엄띄엄 카페 들어오는 사람을 보면 뭐랄까, 동질감 같은 것을 느낀다. 그들도 나와 같이 뭔가 사연이있구나. 그래서 뭔가 지키려고 하고, 애를 쓰고, 카페에 잠시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들이 지키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것을 지우고 싶은지는 대략 짐작한다. 미세한 두통, 아직 남은 잠의 여운, 아주 조금씩 쌓여서 어느새 만성이 되어버린 피곤이 아닐까 한다. 그런 것들을 어느 정도 지우고 잠시나마 맑아진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야지 하는 듯한 공손한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조금은 기운이 난다. 손님이 많든 적든 이 일이 제법 할만한 일처럼 여겨진다.
그런 작은 자부심으로 아침 시간을 혼자 운영한 지가 어느새 십 년이 넘었다. 아침 시간을 혼자 감당하기 때문에 장사가 안되는 시즌도 넘어갈 수 있었고, 지금까지 그럭저럭 카페를 유지해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변수 때문에 힘이 들어서 잠시 가게를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은 없다. 그러나 장사를 하다 보면, 그런 일들이 생긴다. 뭐 대단한 일들은 아니다. 직원에게 줄 월급이 쌓이질 않거나, 그런 상황에서 뭔가 고장이 난다거나, 거기다 매출이 갑자기 떨어지거나 그러면 그런 생각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여기까지인가 싶은 것이다.
사실, 얼마 전에 에스프레소 머신에 큰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머신 아래에 누수가 발생했고, 점검받아보니 보일러 구멍이 난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핵심 부품이다 보니, 수리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제법 많이 들었었다. 머신 판매처에서 특별히 배려해줬지만, 예상하지 못한 지출이 제법 생겼다. 게다가 카페는 비수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크고 작은 시험이 있는 겨울철은 아무래도 손님이 줄어든다. 특히 저녁 시간이 극도로 조용해진다. 자녀들이 중요한 관문을 앞두고 있으니, 모임을 자제하는 분위기 같은 것이 있다. 어쩌면 보통 사람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기회이고, 절박한 관문이기 때문에 그렇지 싶다. 그런 분위기가 매해 감지 된다.
그래서 겨울철이 다가오면, 동네 카페들도 문을 일찍 닫는 경우가 많다. 열린 카페에도 사람이 다른계절과 다르게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다. 시험 결과가 나오고 어떤 희망과 좌절을 나눌 수 있는시간이 될 때까지는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우리 카페도 영업을 줄이기에는 뭔가 모양이 빠진다. 이 공간에 기어서 일상을 살아가는 직원에게도 미안하고, 매일같이 들러서 서로의 삶을 응원해주는 손님에게도 미안하다. 그래서 어찌하였든 지킨다. 처음 약속했던 시간을 지키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며칠 전에는 오래된 손님이 날씨를 묻듯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언제까지 카페를 운영하실 생각이세요?” 그 질문을 받고 오래도록 다른 손님이 오지 않았고, 고민할 틈도 많았지만 나는 명확한 답을내놓지는 못했다. 다만, 요즘 이런저런 상황이 좋지 못하다고 엄살을 피웠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현실적인 답을 입으로 내뱉어 구체화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 공간을 어쩌면 영원토록 지키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것이 가능한 시절까지는 어쨌든 견디고 싶다고 속으로중얼거렸다. 그러다 보면, 뭔가 희망적인 일이 생기고, 때로는 좌절할 일이 생기고 그런 사연을 나누면서 그런 말조차 나누기 힘들다면, 거리의 풍경을 보면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그렇게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산다면, 어느새 우리는 괜찮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하는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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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김해에서 10년째 ‘좋아서 하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낮에는 커피를 내리고, 밤에는 글을 쓴다. 2019년부터 2년 동안 <경남도민일보>에 에세이를 연재했고, 2021년에 『너를 만나서 알게 된 것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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