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에서 가장 무섭고 파괴적인 존재는 바오밥나무다. 바오밥나무 씨앗들은 우주를 떠돌다가 행성들에 뿌리를 내리고, 이윽고 거대하게 몸집을 부풀려 행성들을 집어 삼켜 버린다. 일종의 행성 파괴자인 셈이다. '어린왕자'는 매일 자신의 행성을 돌보면서, 이 바오밥나무의 싹이 자라지 않나 감시한다. 바오밥나무가 자라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결국 행성을 파괴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왕자' 속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별에서 살고 있다. 아마 우리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우주, 각자의 세계, 각자의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 그런데 그 자기만의 별을 채우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끝도 없이 불려나가는 자산에 대한 생각으로 자기 별을 가득 채우고, 누군가는 권력이나 명예를 위한 것들로 자기 별을 가득 채운다.어린왕자는 자기 별에 핀 장미 한 송이를 돌본다. 시간을 들여 그 장미를 돌보고, 그러면서 장미와 다투다가 마음이 상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그 장미를 사랑하게 된다. 어린왕자는 자기의 시간을 들여 그 누군가와 사랑하는 일로 별을 채운다. 반면, 다른 어른들은 주로 돈, 권력, 일, 술 같은 것에 빠져 있고, 그것들을 가장 중요한 것이라 여긴다.
바오밥나무는 사실상 그런 어른들을 상징하기도 한다. 어른이 되어가며 자기 안에 비대해진 관념 같은 것이 곧 바오밥나무인 셈이다. 더 이상 눈앞의 사랑에 시간도 못 쓰게 하고, 더 큰 것, 더 높은 곳, 더 대단한 것만을 바라면서 점점 그런 것들에 사로잡히는 일이야말로, 자기 행성에 바오밥나무를 자라게 하는 일과 같다. 바오밥나무가 행성을 차지해버리고 나면, 이제 그 행성의 주인은 손 쓸 도리 없이 그런 괴물같은 관념의 노예가 된 어른이 될 것이다. 더 이상 행성을 돌볼 방법도 잃어버린 채 말이다.
그러나 어린왕자는 거대해진 내면의 관념에 사로잡히는 게 아니라, 자기 앞에 주어진 세계를, 존재를 거대하게 바라볼 줄 안다. 눈앞에 있는 장미 한 송이에 모든 마음과 시간을 쏟아, 바로 그 한 송이가 내 인생에 대체불가능할 정도로 소중한 존재가 되게 '만드는 방법'을 안다. 삶이란, 비대해진 내면의 관념에 사로잡혀 사는 게 아니라, 내게 주어진 존재를 거대하게 느끼며 사는 일이라는 걸, 어린왕자는 알고 있다.
아이랑 한참 축구를 하고 벤치에 앉아 있으면, 가끔 내 머리 위로 뻗은 나무가 무척이나 거대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갯벌에 뛰어 들어 한참을 바위를 뒤집고 땅을 파고 놀다 보면, 이 바다가 끝도 없이 느껴지는데, 막상 돌아와 보면 내가 정말 작은 해변 한 구석에서 놀았다는 걸 알게 된다. 아내랑 걷는 동네의 작은 근린 공원이 때로는 우거진 숲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 나는 잠시나마 바오밥나무를 잘라버린 행성을 가진 존재처럼 느껴진다. 나의 행성이 깨끗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다.
살아간다는 건 필연적으로 언젠가 죽음, 이별, 허무를 맞이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지금까지 모든 인류가 그랬듯이 나도 그냥 다 놓고 떠나고, 죽고,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나의 현실에 집착하며 사로잡힐 때가 있다. 결국 바오밥나무도 행성을 파괴해버린 다음에는 우주의 먼지로 사라질 것인데 말이다. 그러니까 차라리, 나는 내 별에 심은 꽃 한 송이를 사랑하는 데 시간과 마음을 바쳐야 한다. 내 별에 깃든 이 존재들과 작은 삶을 함께 하고,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이 별이 파괴되지 않게 가꾸다가, 떠날 때가 되면 다 두고 함께 떠나면 되는 것이다.
* '선한 이야기 읽기' 글쓴이 - 정지우
작가 겸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분야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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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밀착된 마음'을 연재 중이었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해당 코너를 당분간 쉬면서 다양한 '선한 이야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로 임시 변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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