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의 별을 파괴하는 괴물같은 존재_선한이야기 읽기_정지우

2023.08.09 | 조회 1.28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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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의 바오밥나무
'어린왕자'의 바오밥나무

 

'어린왕자'에서 가장 무섭고 파괴적인 존재는 바오밥나무다. 바오밥나무 씨앗들은 우주를 떠돌다가 행성들에 뿌리를 내리고, 이윽고 거대하게 몸집을 부풀려 행성들을 집어 삼켜 버린다. 일종의 행성 파괴자인 셈이다. '어린왕자'는 매일 자신의 행성을 돌보면서, 이 바오밥나무의 싹이 자라지 않나 감시한다. 바오밥나무가 자라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결국 행성을 파괴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왕자' 속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별에서 살고 있다. 아마 우리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우주, 각자의 세계, 각자의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 그런데 그 자기만의 별을 채우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끝도 없이 불려나가는 자산에 대한 생각으로 자기 별을 가득 채우고, 누군가는 권력이나 명예를 위한 것들로 자기 별을 가득 채운다.어린왕자는 자기 별에 핀 장미 한 송이를 돌본다. 시간을 들여 그 장미를 돌보고, 그러면서 장미와 다투다가 마음이 상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그 장미를 사랑하게 된다. 어린왕자는 자기의 시간을 들여 그 누군가와 사랑하는 일로 별을 채운다. 반면, 다른 어른들은 주로 돈, 권력, 일, 술 같은 것에 빠져 있고, 그것들을 가장 중요한 것이라 여긴다.

바오밥나무는 사실상 그런 어른들을 상징하기도 한다. 어른이 되어가며 자기 안에 비대해진 관념 같은 것이 곧 바오밥나무인 셈이다. 더 이상 눈앞의 사랑에 시간도 못 쓰게 하고, 더 큰 것, 더 높은 곳, 더 대단한 것만을 바라면서 점점 그런 것들에 사로잡히는 일이야말로, 자기 행성에 바오밥나무를 자라게 하는 일과 같다. 바오밥나무가 행성을 차지해버리고 나면, 이제 그 행성의 주인은 손 쓸 도리 없이 그런 괴물같은 관념의 노예가 된 어른이 될 것이다. 더 이상 행성을 돌볼 방법도 잃어버린 채 말이다.

그러나 어린왕자는 거대해진 내면의 관념에 사로잡히는 게 아니라, 자기 앞에 주어진 세계를, 존재를 거대하게 바라볼 줄 안다. 눈앞에 있는 장미 한 송이에 모든 마음과 시간을 쏟아, 바로 그 한 송이가 내 인생에 대체불가능할 정도로 소중한 존재가 되게 '만드는 방법'을 안다. 삶이란, 비대해진 내면의 관념에 사로잡혀 사는 게 아니라, 내게 주어진 존재를 거대하게 느끼며 사는 일이라는 걸, 어린왕자는 알고 있다.

아이랑 한참 축구를 하고 벤치에 앉아 있으면, 가끔 내 머리 위로 뻗은 나무가 무척이나 거대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갯벌에 뛰어 들어 한참을 바위를 뒤집고 땅을 파고 놀다 보면, 이 바다가 끝도 없이 느껴지는데, 막상 돌아와 보면 내가 정말 작은 해변 한 구석에서 놀았다는 걸 알게 된다. 아내랑 걷는 동네의 작은 근린 공원이 때로는 우거진 숲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 나는 잠시나마 바오밥나무를 잘라버린 행성을 가진 존재처럼 느껴진다. 나의 행성이 깨끗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다.

살아간다는 건 필연적으로 언젠가 죽음, 이별, 허무를 맞이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지금까지 모든 인류가 그랬듯이 나도 그냥 다 놓고 떠나고, 죽고,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나의 현실에 집착하며 사로잡힐 때가 있다. 결국 바오밥나무도 행성을 파괴해버린 다음에는 우주의 먼지로 사라질 것인데 말이다. 그러니까 차라리, 나는 내 별에 심은 꽃 한 송이를 사랑하는 데 시간과 마음을 바쳐야 한다. 내 별에 깃든 이 존재들과 작은 삶을 함께 하고,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이 별이 파괴되지 않게 가꾸다가, 떠날 때가 되면 다 두고 함께 떠나면 되는 것이다.

 

 

* '선한 이야기 읽기' 글쓴이 - 정지우

작가 겸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분야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페이스북 - https://facebook.com/writerjiwoo

인스타그램- https://instagram.com/jungjiwoowriter

 

* 원래 '밀착된 마음'을 연재 중이었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해당 코너를 당분간 쉬면서 다양한 '선한 이야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로 임시 변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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