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가 있다면, '시간'이 아닐까 싶다. <어린 왕자>에는 크게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온다. 하나는 타인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는 종류의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의 시간을 써서 자기에게 중요한 것을 만드는 사람이다. 전자는 여러 별들에 사는 ‘어른들’이다. 그들은 타인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권력이나 돈 같은 것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며 산다.
반면, 후자의 사람이 바로 ‘어린 왕자’다. 어린 왕자는 여우와 장미와의 관계를 통해 시간을 써서 소중한 것을 얻는 방법을 배운다. 그 끝에 나오는 대사가 바로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바로 그 시간 때문이야.”이다.
자기의 시간을 쓰지 않고 중요한 것을 얻는 방법은 없다. 달리 말하면, 온 세상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소리치는 것들이라도, 내 시간을 쓰지 않은 것은 하등 중요한 것이 아니다. 또 다르게 말하면, 우리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오직 우리의 시간을 쓴 것 뿐이다. 시간은 곧 우리의 존재나 다름 없다. 인간은 시간적 존재, 시간의 존재이다.
그 이유는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순수한 것이 시간이고, 사실상 그것이 유일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유한한 시간을 부여받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매일 줄어든다. 인간이 매일 죽음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는 것만큼 확실한 진리도 드물 것이다. 우리는 이 유한한 시간을 어딘가에 써야만 하고, 그것이 곧 삶이 된다. 사실상 그것이 삶의 '전부'이기도 하다.
어떤 삶은 타인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들을 좇느라 평생의 시간을 다 쓴다. 타인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명예, 직위, 명품, 아파트, 각종 상품이나 경험 같은 것들을 평생 쫓아다니며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쓰는 인생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인생은 그런 것들로부터 '적당히' 등을 돌린 채, 자기가 시간을 쓸 대상을 결정한다. 이를테면, <어린 왕자>에서처럼 들에서 만난 여우나 어느 날 내 화분에 떨어진 장미 씨앗의 싹 같은 것에 말이다.
살아갈수록 '시간을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많이 느낀다. 이를테면, 인간관계도 그냥 나랑 잘 맞는 사람이 따로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중한 사람이 되려면, 나와 MBTI가 잘 맞거나 하는 것보다는 그냥 그 사람에게 시간을 써야 한다. 한 번 만나서 비싼 소고기 사주는 게 아니라, 여러 번 만나면서 시간을 써야 한다. 그러면 서로는 서로에게 중요한 사람이 된다.
사랑이야말로 시간 없이는 성립이 불가능하다. 아이를 사랑하는 건 내 DNA이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만큼 아이에게 시간과 정성을 써서라고 느낀다. 만약,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처럼, 설령 병원에서 뒤바뀐 아이라 할지라도 내가 시간을 쏟으면 나는 당연히 그 아이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연인 간의 사랑도 다르지 않다. 연인관계는 함께 보낸 시간 만큼 깊어진다. 관계라는 형틀에 시간이라는 재료를 부어넣는 방식으로만, 우리는 소중한 관계라는 걸 만들 수 있다. 삶은 오직 시간, 시간을 써야만 얻을 수 있다. 내 시간을 써야만 내 삶이 될 수 있다.
하나의 삶이란, 그렇게 내가 시간을 쓴 것들로 규정되는 것이지, 달리 규정되는 게 아니다. 나는 내가 시간을 쓴 것 그 자체일 뿐이다. 사랑하는 데 시간을 쓴 사람은 사랑하는 삶을 산 것이고, 돈을 버는 데 시간을 쓴 사람은 돈을 버는 삶을 산 것이다. 시간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한정된 시간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그 재료를 써서, 삶을 짓는다. 그것이 삶의 본질이고, 그밖의 방식들은 무언가 왜곡된 것이다. 삶은 다른 식으로 살 방법은 없다는 것, 그것이 내가 <어린 왕자>에서 얻는 첫 번째 성찰이다. 우리는 그저 시간을 쓴 것이 내가 되는 방식으로만 진정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 '선한 이야기 읽기' 글쓴이 - 정지우
작가 겸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분야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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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밀착된 마음'을 연재 중이었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해당 코너를 당분간 쉬면서 다양한 '선한 이야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로 임시 변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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