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일곱,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 집안의 둘째딸로 태어난 지은이라는 사람이 적어도 7가지가넘는 ‘업(業)’이라는 것을 넘어가는 과정 속 시간, 비용 두려움이라는 존재와 싸우며 부캐(부캐릭터)를 얻어간 순간의 이야기들.
문제 앞에서 불안이 올라올 때면 나오는 습관이 있다. A혹은 B를 선택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 속에서 허우적 대다 그곳을 빠져나오려 오히려 더 복잡한 정보의 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거나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한참동안 답을 찾아 헤맸고, ‘문제를 해결하는 10가지 방법’같은
제목을 만나면 스크롤을 한없이 내리며 읽었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 앞의 문제가 해결된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 자리에서 맴맴 돌고 있는 것, 그 뿐이었다.
다음 패턴은 전화를 거는 순서로 이어진다. 나보다 먼저 인생을 살아간 이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수화기 너머 여러 명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남의 생각이 마치 나의 생각인 것처럼 메아리로 포장되어 나를 감싸버렸다. ‘이제 곧 끝이 날 거야’ 착각의 시간이 이어질 뿐 문제는 그대로였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초조함과 불안을 달랬을 뿐 해결이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불안의 실체를 알지 못한 채 문제의 테두리에서 상황이 해결되기만을 한없이 기다렸다. 누군가 열쇠를 쥐여 주면 이 상황이 끝나버릴까? 모범답안은 애초에 없었고, 뒤죽박죽 꼬여버린 채 시간만 흘려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했던 말 한마디가 귀에 꽂혀 버렸다.
“네가 진짜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
문제의 본질을 파고 든 적이 있어?”
순간 입술이 얼어버렸다. 입을 떼면 핑계를 쏟아낼 것만 같았다. 그렇게 문제 앞에서 겉핥기만 하던 나를 마주해 버렸다.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꼬인 상황을 또렷이 바라보고 깊게 파내려 갈 용기가 없던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라는 물음표가 머릿속에 하나씩 그려졌다. 또다시 정보의 바다에 빠져 ‘본질을 살펴보는 법’이라는 단어를 검색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지만 이번만은 한 박자 늦게 시작하고 싶었다. 그렇게 검색 대신 글을 써내려갔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찾아 가는 대신 마음속에 가득 찬 나의 목소리를 손으로 쏟아냈다.
‘왜 나는 그런 행동을 했을까? 왜 그때 이런 마음이 들었지? 왜? 왜? 왜?” Why로 시작되는 문장을 끊임없이 만들고 문장에 대한 답변을 하나씩 달아 보았다. 가끔은 1인칭 시점 대신 3인칭 시점으로 물어보기도 했다. “너는 왜 그렇게 했어?” 한발 떨어져 나를 바라볼 때는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뒤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해결은 못해도 문제 중심을 향해 딱 한발을 떼지 못하는 이유라도 정확하게 알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어떤 결정을 해도 또다시 쳇바퀴를 돌 것만 같았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해결 못한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물론 답이 빨리 나오지 않아 답답하기도 때로는 두렵기도 하다. 어쩌면 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저만치 떨어진 타인이 되어 문제의 중심을 향해 조금씩 발을 떼려는 사람을 응원하는 중이다. 그렇게 문제가 온전히 이해되는 순간을 기다린다.
* 지은이: 서른 일곱의 호기심쟁이 입니다. ‘직업(業)’을 넘어가는 과정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 그리고 두려움이라는 존재와 싸운 기억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은 ‘스타트업 코파운더(co-founder), 상담심리사, 학생’을 병행하며, 순간의 감정을 글로 풀어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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