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얻는 것이 참 많다. 보통의 금요일, 나는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오후 5시 넘어 집에 도착한다. 그 시간에 아이는 늘 무언가 만들고 있다. 6학년 들어 학기 초부터 발명 수업을 꾸준히 듣고 있다. 원래는 정해진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 하지만 학교 측이 공사 중이라 부득이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었다. 이런 일은 일하는 엄마에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면 먼 곳에 있는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픽업 해오는 일 때문에 선발이 되고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현관문을 열 땐 비밀번호를 숨죽여 누른다. 거실에서 온라인 수업하던 아이에게 방해가 될까 봐 최대한 조용히 집안에 들어선다. 아이는 보통 저녁 식사 시간을 살짝 지나 6시 30이 되어야 수업이 끝난다. 2시간 동안 배고픈 것도 참고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에 집중하는 셈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짠하면서도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무언가 복잡한 구조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 한 곳이라도 틀어지면 움직이지 않는 어떤 것. 어긋난 곳이 있었는지 조각을 하나씩 빼고 다시 구조를 세우기 시작했다. 온 힘을 다해 뼈다귀 형태를 한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상반기 마지막 수업이 끝날 즈음 완성한 그게 무엇인지 궁금하던 차였다. 아이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엄마, 테오 얀센 알고 있어?"
"아니, 그 사람이 누군데?"
마치 훈데르트바서를 아느냐 묻던 일곱 살 때 같았다. 테오 얀센은 물리학을 전공한 키네틱 아티스트라고 했다. 키네틱 아티스트라면 아트스페이스 광교 전시 '그것은 무엇을 밝히나'때 만났던 이안 번즈가 떠올랐다. 아이는 과학과 예술, 공학이 결합 된 그야말로 융합 수업을 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선풍기 앞에 세웠다. 바람에 의해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아이의 결과물. 다리가 여럿 달린 지네 같기도 하고 옆으로 가는 꽃게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쩐지 징그러운 괴물 같이 보이기도 했다. 스물스물 움직이는 벌레의 엑스레이 버전 같이 보이기도 했다.
아이가 만들어낸 뼈다귀 괴물은 바람 없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선풍기를 틀면 여러 개의 얇은 다리를 옆으로 옮겨가며 거실 테이블 위를 느릿느릿 지나다녔다. 뭔가 신기한 호기심이 발동하면서도 그 생김새 때문인지 지네처럼 느껴졌다. 징그럽고 섬뜩한 기분도 들었다. 이렇게 복잡한 구조를 만들고 바람에 의해 움직이게 한 사람, 테오 얀센이 궁금해졌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았을까."
수업하며 테오 얀센이 궁금해진 아이가 자료를 찾아본 모양이다. 그는 현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린단다. 아이가 찾아서 보여 준 화면엔 거대한 뼈다귀가 있었다. 마치 온전한 공룡 화석 같이 보이기도 했다. 내게는 실제가 아닌 컴퓨터 조작이 만들어낸 가상의 무엇 같았다.
그것은 바람이 조종하는 거대 뼈다귀 괴물. 테오 얀센의 키네틱 아트(kinetic art) 작품이었다. 신기한 건 아이가 그걸 만들기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선가 그 작품을 봤었다. 사막에서 어떤 뼈다귀 괴물이 혼자 걷고 있길래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이겠거니 속으로 생각하며 넘긴 적이 있었다. 아이가 내게 그걸 알려줄 줄이야. 무의식의 세계가 우연처럼 겹쳤다.
아이 일곱 살 때 내가 처음 알게 된 훈데르트바서처럼 아이 열세 살, 나는 키네틱 아티스트 테오 얀센을 새롭게 알게 됐다. "유한아, 이거 어디에서 팔까? 엄마도 아이들과 융합 수업으로 해보고 싶은데?" 아이는 꼬맹이 시절부터 레고를 가지고 놀았다. 초등 2학년 때는 성인용 거대 빅벤을 만드느라 일주일을 꼬박 그것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뼈다귀 괴물이 담겼던 박스 겉면엔 8세 이상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아이에게 듣자니 저학년은 피스를 쏟거나 하면 잃어버릴 수 있단다. 한 조각이라도 분실되면 움직임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고학년의 경우도 레고류의 놀이를 좋아하지 않을 경우, 수업 시간을 훌쩍 넘기거나 취향이 아니면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키네틱 아트는 내가 진행하는 창의융합예술 수업과도 잘 맞는 것 같았다. 꼭 한 번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학기엔 고학년만이라도 키네틱 아트 수업을 해보고 싶다. 아이 덕분에 훈데르트바서를 알게 돼서 환경과 미술 융합으로 독서연계 수업을 진행했었다.
아이는 늘 내게 새로움을 알려주는 존재다. 혼자서는 다 알 수 없는 이 세상을 아이와 함께 알아간다.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를 키우고 있는 것만 같다. 아이가 있어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장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따로 또 같이 힘껏 성장하는 중이다.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소중한 시간, 아이를 통해 알게 되는 선물 같은 세상 여행 이야기.
키네틱 아트(kinetic art)는 작품 속에 동세(動勢)를 표현하거나 옵 아트와 같이 시각적 변화를 나타는 것과는 달리 작품 자체가 움직이거나 움직이는 부분을 포함하는 예술작품을 뜻한다. 따라서 작품은 대개 조각의 형태를 띤다. 이러한 경향은 미래파나 다다의 예술운동에서 파생된 것이며, 최초의 작품은 마르셀 뒤샹이 1913년 자전거 바퀴와 색칠된 부엌 의자를 사용해 만든 '자전거 바퀴'이다.
테오 얀센(Theo Jansen)은 1948년 네덜란드 헤이그의 작은 마을 스헤베닝겐에서 태어났습다. Delft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화가의 길을 걷는다. 그는 벌레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컴퓨터로 단순한 가상의 생물체를 제작 하던 중,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기계 생물체를 구상하게 된다
->테오 얀센의 윈드 워커스 내용을 더 보고 싶다면 https://ko.marinabaysands.com/museum/theo-jansen.html
* 글쓴이 - 김상래 도슨트, 문화예술교육 강사. 학교와 도서관에서 창의융합예술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성인 대상으로 미술 인문학, 미술관 여행강의 및 강연을 한다. 궁극적으로 문화·예술로 가득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하루를 알차게 살아내고 있다.
저서로<실은, 엄마도 꿈이 있었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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