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되는, 분위기를 사랑해
교사 생활 10년이 넘었어도 3월 2일 아침만큼은 젖은 머리카락이 하루 종일 마르지 않는 느낌이다. 긴 겨울잠과도 같았던 나의 겨울 방학을 종결하고, 스스로 교실 문을 열고 걸어 들어가는 순간에는 젖은 머리카락이 얼어버린 것 아니냐는 착각이 들게 할 만큼 어딘가 서늘해진 느낌이 든다. 나는 사계절 중 봄을 가장 싫어한다. 그 이유는 봄이 항상 아직 한참을 더 웅크리고 싶어 하는 나의 몸을 두드리며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내가 교실 문을 열고 얼굴을 불쑥 내미는 순간. 긴장된 아이들의 눈빛이 나에게 일제히 쏟아진다. 나는 언제나처럼 휘청하지만, 이제는 금세 자세를 바로잡을 수는 있는 교사가 되었다.
나는 서울시 중구에 소재한 한 남고에서 7년을 근무하다가 - 중간에 파견과 휴직으로 3년을 보냈지만 - 올해 꽤나 멀리 떨어진 남녀공학 학교에 발령을 받게 되었다. 보통 교사들은 특성화 학교 두 곳을 포함해 총 여덟 개의 학교를 다음 발령받을 학교의 후보지로 써서 제출할 수 있다. 사람들은 고등학교 교사가 중학교에서도 근무할 수 있는지도 자주 묻곤 하는데, 처음부터 고등학교로 발령받은 경우 특별히 중학교 발령을 신청하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고등학교로 발령을 받게 된다.
집에서 멀지 않은 특성화 고등학교를 1순위에 써서 제출했건만, 역시나 저경력 교사가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는지 제일 후순위에 적은 학교로 발령이 나버렸다. 시작이 두려운, 적응이 어려운 나는 당분간 ‘어리바리 모드’로 지내게 될 것이 너무도 당연했다. 역시나 첫날부터 나는 주차하다 차를 긁어버려 “찐초보”라고 써붙인 나의 명예를 드높였다.
운명적이게도, 3월 2일 1교시에 내가 나의 몸을 부지런히 끌고 가야할 곳은 1학년 1반 교실이었다. 이보다 더 ‘시작’다운 시작이 또 있을까 싶은 마음에 피식 웃어도 봤지만 긴장감은 여전했다. 그러나 아주 다행인 사실 한 가지는, 나는 여전히 교실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배가 고파진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무지개 그 이상이다. 스물 여덟명이 앉아있는 교실에서 아이들이 뿜어내는 빛깔, 에너지는 분명 일곱 빛깔 그 이상이 분명하니 말이다. 아이들은 제각기 자기에게 가장 편안한 방식으로 나에게 수 차례 ‘시그널’을 보내온다. 글로, 말로, 눈빛으로, 표정으로, 삐딱한 다리 모양으로, 반복적인 손동작으로 나에게 많은 말을 걸어온다. 그 수많은 ‘시그널’을 포착하는 것만으로 나는 정말이지 금세 허기가 지는 것이다. 그제야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와있음을 깨닫고 한결 느슨해진 마음으로 아이들의 신호들을 ‘잡아먹을’ 수 있게 된다.
운전 연수를 받을 때에도 나는 전방, 후방, 사이드미러, 멀리 혹은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챙겨봐야한다는 것만큼은 별로 어렵지가 않았다. 시선을 재빨리 이동하고, 시선 속 장면들을 읽어내고 기억하는 일 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탓이었다. 그런 나조차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과 50분씩 수업을 하고 있노라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수많은 정보들에 아찔해지곤 한다. 임용고사를 준비하면서 학생들에게 교사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에 관해 읽던 중, 교사는 언제나 학생들에게 ‘accessible’한 존재여야 한다는 글을 읽고 크게 공감한 적이 있었다. 눈에 띄게 성적이 좋은 학생이 꼭 아니어도, 평범하고 소극적인 학생들 그 누구에게도 ‘접근이 가능한, ‘이용하기 쉬운’ 교사야말로 내가 정말 필요로 했던 교사, 즉 나 같은 학생에게 딱 되어주고 싶던 교사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 생각 때문인지, 나는 교실을 아끼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애쓰는 편이다. 언제나 교실의 맨 뒷좌석 구석에서부터 교탁 코앞까지 몇 차례씩 돌아다니며 모두와 눈을 맞추려 노력한다. 교실로의 입장도 앞문이 아닌 뒷문을 주로 이용하는 것도 같은 마음에서다. 교실 모든 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저 선생님을 보고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아질 때까지를 기다리며 말이다.
우리도 한때는 모두 학생이었으므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선생님들은 보통 새학기 첫 시간에는 주로 교과목의 오리엔테이션을 준비한다. 나 역시 똑같은 오리엔테이션을 하루에 세 번에서 네 번을 반복했다. 선생님이 바로 얼굴도 안보고 데려간다는 그 유명한 셋째딸이라는, 약간은 진실에 가까워도 보이는, 조금은 가벼운 말들을 섞어가며 자기 소개도 마쳤다. 중구에서와 달리 남부교육청 산하 고등학교들은 학교 규모가 매우 큰 편인 까닭에 한 반에 스물 여덟명씩 꽉 채워진 교실이 아직은 꽤나 낯설었다. 대략 열 명 정도가 한 교실에 늘어났을 뿐인데 모두의 이름을 외우기가 마치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선생님은 오늘 첫 시간엔 세 명 이름 외우기가 한계일 것 같아.”라는 밑밥을 깔아두자 수업 종료종이 울리자마자 우르르 아이들이 교탁 주위로 몰려든다. 수업 시간엔 나에게 관심 없는 척 눈을 피하다가도 이렇게나 관심을 갈구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지는 않았지만 무척이나 귀엽고 또 반가웠다. 그렇게까지 나에게 다가와 수줍은 자기 고백을 한 아이들의 이름을 행여나 잊어버릴까 주말 밤인 오늘까지 ‘하늘이’의 얼굴을 몇 번이나 떠올렸다.
3월 2일이 시작되기 전날 밤에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목사님의 설교 영상을 보면서까지 잠을 쉽게 들 수 없었다. 주말이 끝나가는 이 무렵, 오늘 밤도 행여 목사님의 설교가 필요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남아있기도 하지만 다행히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마음과는 엄연히 달랐다. 내가 이름을 외운 아이들의 이름을 교실에서 직접 불러줘야 하니 말이다. 유난히 질문이 가득했던 한 교실에서 내가 했던 답변 중 마음에 들던 한 마디가 있어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 두었다. 그 말을 공유하며 이번 어리바리 교사의 새학년 첫 날의 기록을 마치려 한다.
“선생님은 교실에서 다 되는 거 좋아합니다. 다 되는 분위기를 사랑해요.” 나는 내가 그들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교사가 되어주었을 때, 그들은 나에게도 합당한 요구만을 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당당하게 대답해 줄 수 있었다. 그 말을 한 번 더 되뇌며, 아이들 모두가 자신이 바라는 대로 ‘모두 다 (정말 그렇게) 되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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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소개 - 은호랑이
서울 현직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고딩들과 소통한지 10년이 넘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언제나 accessible한 존재이고자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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